나의 남편은 천성이 착하고 순하다. 가끔 아이처럼 굴어서 나를 화나게 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순하고 올곧은 편이다. 아이 같은 면이 있어서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많이 노력하고 실제로도 잘 해낸다.
언젠가 SNS에도 썼었지만, 남편의 여러 장점 중, 무엇이든 노력하는 모습과 내게 늘 다정한 모습이 좋아서 결혼했다.
남편은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서 자라서인지 물질에 대한 결핍이 조금 있는 편이다. 하지만 그 결핍을 콤플렉스로 만들지 않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으로 내면을 채워 넣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자신에게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 분야는 아주 열심히 했다.
혈혈단신으로 마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부모님 등록금 부담 덜어드린다고 매 학기마다 장학금을 받았고, 심지어 7학기 졸업까지 해낸 멋진 나의 남편. (같은 처지라면 나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성취다.)
나는 결혼 전, 배우자를 고를 때 학벌을 본다고 누누이 말하고 다녔었는데 그건 좋은 학교가 사회적인 성공을 가져다준다는 통념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노력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고, 노력을 해본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노력해본 사람은 성취와 좌절을 알 것이고, 그건 어떤 부모도 아이에게 가르쳐줄 수 없는, 정말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지혜가 있는 배우자를 만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연애시절 신랑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 남자가 더더더 멋지게 느껴졌으니까.
남편은 이사 때마다 하는 얘기가 있다.
"나 처음에 마산에서 올라올 때는 작은 손가방 하나가 내 짐의 전부였는데, 00년 만에 이렇게 짐이 많아졌네."
단지 짐이 많아진 것이 아니라, 짐의 개수는 그가 지금껏 이룬 성취를 보여주는 것일 테지. 취업뿐만 아니라 조직 내에서 자리 잡고, 인정받고,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마침내 내 집을 장만하고.(빚이 아주 많지만) 그런 그의 성취를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게 나는 아주 기쁘다.
얼마 전, 남편에게 결혼 생활은 측은지심인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랑이나 의리보다는 내게는 상대를 가엽게 여기는 마음, 그것이 결혼인 것 같다고.
어찌 보면 평범했지만, 지금의 성취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했을 이십 대의 그가 가엽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돈도 많이 버는 아내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인데 결혼 후, 집에만 있는 아내를 만난 그가 가엽다.
평온하고 현모양처인 아내였으면 좋았을 테지만 매우 감정적이고 남편에게만큼은 너무 모진 아내와 함께 사는 그가 가엽다.
친구들의 돈 자랑에 실없는 농담으로 받아칠 그가 가엽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도 멀리 떨어져서 살고 있는 그가 가엽다.
누가 뭐래도 사랑스러운 나의 남편, 이동건. 나는 평생 당신을 존경하기도 하고, 측은히 여기기도 하며 그렇게 살아갈 거야. 그러니까 제발, 당신은 건강하게 내 옆에 오래오래 살아줘. 아버님처럼 어머님을 외롭게 하는 당신이면 나 정말 평생 당신을 미워할 것 같다.
사랑하는 내 편, 우리 이 마음 영원히 잊지 말자. 우리가 되어줘서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