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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꾸까까 May 24. 2017

[루카] 자전거

2017년 5월 24일 회상

루카. LUCCA.

피렌체에서 기차 타고 두 시간 안에 도달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작은 마을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져 간다.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둬야지. 

원래 일정은 루카에서 하루 보내고 다음날 기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피사에 가서 유명한 사탑을 구경하고 피렌체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틀을 꼼짝없이 루카에 머물다 돌아오게 되었다.




Day 1


  루카 기차역에 내리면 사방에서 여기 시골입니다 하는 분위기가 폴폴 난다. 


  두리번두리번거리다가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총총 따라가면 세상에, 세상에. 이게 말로만 듣던 성벽인가 싶은 돌벽이 마을을 따라 둥글게 감싸고 있다. 

- 들어갈 수 있는 입구는 보이지 않는다. 

  루카 마을에 들어가는 일이 첫 번째겠다 싶어 성벽 옆의 잔디밭을 따라 걷는다. 가파르고 높고 매끄러운 돌 성벽에 손을 대고 걷다 보면 마치 미로처럼 구불구불하게 숨겨진 마을로 향하는 길에 이르게 된다.


  성벽 위로는 마을 전체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길이 둥글게 나있다. 보통 자전거를 빌려 한 바퀴 돌고, 골목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루카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세상에 신기하게도 한국인 두 분을 만났는데, 어쩌다 여기로 여행 오셨냐고 물으니 세상에 여기 사시는 분이라고 한다. 엄청 신기해서 아니 왜요?라고 물어버렸다. 아니 안될 것도 없지... 


  아무도 하루 묵지 않는 루카의 비앤비 개인실에 체크인하고나니 저녁이었다. 혼자 여행한 지 일주일밖에 안됐는데 밥을 혼자 먹기 너무너무 싫고 사람들이랑 막 말도 하고 싶고 우울했다. 그냥 터덕터덕하다가 술이나 먹자 이러면서 외딴 길에 덩그러니 있는 칵테일 바 같은 곳에 갔다. 


  가게 밖엔 손님들이 세 테이블 정도에 앉아있었고, 나는 또 혼자 테이블에 털썩 앉아 빈속에 진토닉 한 잔 시켜서 풀죽이 앉아있었다. 심지어 중국인도 없던 이 마을에 혼자 앉아있는 동양인은 옆 테이블의 이탈리아 아줌마 아저씨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분들은 왜 혼자 있냐며 자기 테이블로 날 앉혔고, 난 이탈리아어를 못했고, 그들은 영어를 못했고, 우리는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구글 번역기 만세. 바캉스? 예스! 꼬레 꼬레! 그들은 신기해하더라. 그들은 40년 동안 루카에서 벗어나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정말 어떻게 이탈리아에 살면서 벗어나 본 적이 없을까 싶다. 그냥 대구가 산에 둘러싸여 있듯 이들도 성벽에 둘러싸인 걸까? 밥도 안 먹고 술을 먹냐며 날 안타깝게 쳐다보던 아줌마 아저씨들은 내 술도 계산해주고 진짜 엄청 맛있는 피자도 사주고 조심히 가라며 숙소까지 배웅도 해주셨다.


기차역을 내려 뒤를 돌아 걷다 보면 성벽으로 둘러쌓인 마을이 보인다 @LUCCA
저 사이 길이 문이다 @LUCCA




Day 2


  다음날 루카. 아침으로 근처 카페에서 카페라테와 크로와상을 시켜 먹는다. 테라스에 앉은 마을 주민 두 명은 벌써 에스프레소 세 잔씩을 마셨다. 위벽에 구멍 안나나 싶다. 나는 오전에 자전거를 두세 시간 빌려 한 바퀴 돌고 피사로 넘어갈 계획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어떤 외국인 부부 사이에 껴서 성곽 위를 돌고 있자 뒤로 쳐진 아줌마가 소리친다.

  "Honey! It's not me behinde you~~~"

  내가 허허허 웃으니까 어머 영어를 알아듣네? 이러는 아줌마. 아줌마 아저씨를 제쳐 페달을 밟으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관광객 마을 사람들을 쭉 지나쳐갈 수 있다. 먼저 지나가라며 기다려주자 역시나 이탈리아 아저씨가 "un cafe?" 라며 들이댄다. 성벽을 내려와 큰 문으로 나가 마을 밖을 둥글게 돌다가 다른 문으로 다시 들어간다. 어떤 탑이 있네. 그럼 올라가 봐야지. 자전거를 건물 옆 밸브에 세워서 잠가놓고 올라간다. 바람을 쐬며 한참 있다 내려온다. 

  자전거가 사라졌다.




  당황해서 한참을 여기저기 둘러보고 상점에 들어가 자전거 보지 못했냐고 물어보지만 골목길에 CCTV가 있을 리는 만무하고 결국 자전거 렌탈샵으로 돌아가 사정을 설명했다. 아줌마는 너무 익숙한 듯 웃으시며, 아 그렇냐며 100유로만 주라고 하셨다. 경찰에 가서 경위서를 써서 보험 처리하면 괜찮다며. 경찰서에 가니 익숙한 듯 종이 하나를 내어주는 아저씨.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익숙한 것을 보니 한국 가서 보험처리받을 수 있겠다 싶었다. 기분이 약간 풀리고 경찰 아저씨랑 이야기하는 것조차 즐거운 혼자 여행자가 되었다. 경위서를 쓰고 피사는 이미 포기한 채 비앤비로 돌아와서 주인아저씨께 투덜투덜 하니, 그는 말한다. 

  "몰랐니? 루카는 피렌체 다음으로 이탈리아에서 자전거 도둑이 제일 많은 도시야."

  이 쪼그만 마을이??? 그쯤 되면 자전거 도둑이랑 렌탈샵 아줌마랑 경찰 아저씨들이 다 한패로 보이는 게 이상하지도 않다. 한국 와서 렌트 용품은 보험처리가 안된다는 말을 듣고 쌍콤하게 내 100유로가 날아갔다. 뭐 크게 아깝지는 않다. 그냥 이게 저 마을의 주 수익원이구나 싶다. 


  100유로를 카드로 긁어도 되냐고 물으니 "당연하지"라고 웃어주시던 아주머니.


  루카는 아름다운 도시다.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돌고 마을 중앙광장도 구경하기 이쁘고 깨끗하고 조용한 마을이다. 비록 피사는 못 갔지만 피사보다 훨씬 좋은 여행지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by 꾸꾸까까세계여행. 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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