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은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걷다.
조지아 카즈베기를 걷다.
볕 좋은 오후 1시, 카즈베기에 도착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만난 알렉스는 나와 같은 숙소여서 함께 숙소를 찾았다. 드넓은 들판에서 유유히 풀을 뜯고 있는 당나귀와 높은 음조로 지저귀는 산새들을 보니 카즈베기에 왔다는 게 퍽 실감이 났다. 카즈베기의 내리 꽂히는 햇빛 덕분에 몸이 지글지글 타 들어갔다. 걷다가 나무 그늘길이 나오면 모자를 벗었다 썼다를 반복했다. 숙소가 내 눈앞에 나타났고, 알렉스와 나는 동시에 외쳤다. "드디어 찾았다!"
카즈베기 산이 눈앞에 넓게 펼쳐진 전망 좋은 숙소였다. 리셉션에서 체크인을 하려고 하는데 직원은 안타까운 표정과 함께 내가 머물 침대가 없다고 말했다. 도미토리 내 침대가 예약 가능한 것을 확인한 건데, 서둘러 예약사이트를 다시 확인해봤다. 오늘 날짜로 검색을 했어야 했는데 엉뚱한 날짜로 숙소 검색을 했던 것이었다. 다른 숙소를 알아보고 찾아가야 하다니 무지하게 귀찮고 진절머리 나게 싫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내 표정을 본 직원은 말했다.
“마당에 텐트 자리는 있는데,
네가 괜찮으면 텐트에서 잘래?”
직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좋다고 말했다. 숙소 넓은 마당에 몇 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전망 좋고 누워서 별을 보다가 잠들 수 있는 텐트라니, 싫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도미토리 침대보다 30퍼센트 저렴한 금액으로 하루를 지낼 수 있다는 게 마음에 쏙 들었다. 어차피 방에서 자든, 텐트에서 자든 화장실이나 샤워실은 공용으로 사용하면 됐다. 가장 좋았던 건 혼자 텐트에서 편하게 누워서 코를 후벼도 아무도 모르는 독립된 공간이라는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푸릇푸릇한 조지아에서 언젠가 캠핑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예상보다 빠르게 그 꿈이 수월하게 실현됐다.
텐트에 짐을 풀고, 숙소 마당에 설치되어있는 해먹에 누워 살랑거리는 바람에 마음껏 흔들렸다. 볕은 적당히 비추고, 이어폰 사이로 흘러나오는 노래는 조금 더 여유를 부려도 된다고 속삭이는 듯했다. 숙소 게스트들의 속삭임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조화롭게 섞여 가까워지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다 깜박 선잠에 빠졌다.
저녁 시간이 되자 선선한 바람이 볼에 보드랍게 닿을 정도였다. 저녁을 먹고 텐트 안에 누웠다. 텐트 안에서 보는 카즈베기 풍경은 낭만적이었다. 텐트 밖으로 보이는 붉게 물들여진 노을은 점점 짙은 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물어가는 하늘을 안주 삼아 맥주를 들이켰다. 내가 음주를 즐기는 사람이었으면 저 풍경이 더 낭만적인 풍경으로 보이지 않을까 아쉬워하며 하늘이 어두워질 때까지 오랫동안 응시했다. 해가 떨어지자 마당 주변엔 따듯한 계열의 알록달록한 전구들과 모닥불이 켜졌다. 산에서는 밤이 일찍 찾아오고, 사람들은 불 앞으로 모여 각자의 언어로 대화를 이어나가기 마련이었다.
텐트 안에서 노래를 듣다가 잠이 들었다. 밤에는 쾌적한 온도에 잠이 솔솔 왔는데, 새벽에 카즈베기의 거센 바람에 그만 잠에서 깼다. 추워서 판초를 뒤집어쓴 채, 굼벵이처럼 몸을 동그랗게 웅크리고 있었다. 개그 프로그램이나 시트콤에서 연기자들이 추위에 떨 때 치아 부딪히며 딱딱 소리를 낼 때 왜 저런 과장된 연기를 할까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한 마찰음을 내며 벌벌 떨었다. 캠핑의 낭만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추위와 음울함이 한데 뒤섞여 끔뻑끔뻑 눈만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띠링’ 머리맡에 있던 휴대폰에서 페이스북 메신저 알림 소리가 났다.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쿠바 산티아고에서 만난 친구의 메시지였다. 그 당시 인스타그램 계정을 일시 정지해놓은 터라 무슨 일이 있나 걱정하는 친구의 메시지였다. 친구는 항상 나를 위한 기도를 한다고 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멀지 않다는 친구의 메시지에 내 마음이 찌르르르 아프기 시작했다. 메시지의 첫 줄부터 눈에 뽀얀 안개가 피기 시작했고, 마지막 문장을 다 읽어갈 때쯤엔 얇디얇은 텐트에 눈물이 후드득 떨어지고 있었다. 친구가 보이지 않은 곳에서 한기에 떨고 있는 나를 보고 있기라도 한 듯 다정한 메시지가 툭 전해졌다.
스페인어가 모국어인 사람과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대화는 짧고 단순하고 때론 엉성했다. 친구와 난 종종 번역 어플을 사용할 때도 있었고, 그로 인한 오역이 있기도 했다.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고 느끼기엔 부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정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그려져 진심으로 다가왔던 까닭이었다. 그날 새벽은 등뼈 사이로 전율이 일어날 만큼 추웠지만, 이 정도 추위라면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생겼다.
여행 중에 자주 울었다. 내가 세계여행을 떠나는 날 태연 한 엄마 말투에 숨겨진 불안한 마음이, 폭우가 쏟아지는 날 순례길을 걸어야 했던 근심하던 친구의 마음이, 내가 여행하고 있던 지역에 테러가 일어났을 때 안부를 묻는 친구가 날 걱정하는 마음이. 이런 마음을 마주할 때면 목울대가 찌릿해졌고 이내 나를 울게 했다.
가슴 벅차게 눈물을 뚝뚝 흘릴 때면 몸도 마음도 휘청거린다. 행여나 남들에게 우는 모습을 들킬까 봐 조용히 눈물을 훔칠 때도 있었고, 때론 날 위로하던 친구와 부둥켜안고 목놓아 울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울고 나면 다시 중심을 잡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싶어 진다. 그래서 눈물이 날 거 같을 때면 참지 않고 쏟아낸다. 눈물이 공기 중에 노출되면 마음이 한결 후련해진다는 것을 알기에. 쉽게 울음을 터트리지만 어렵지 않게 마음을 다시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난 한층 더 충만해지고 단단한 사람이 되곤 했다.
듣다.
Nat King Cole의 Unforgettable을 듣다.
*자주 읽고, 가끔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