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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 Jul 06. 2019

릭샤왈라

너 릭샤를 타보고 싶다고 했지?

 sns에 바라나시에서 새해를 맞이하게 될 거라는 포스팅을 했다. 인도를 잘 아는 친구가 댓글로 바라나시 식당들을 추천해줬다. 그중 인도 프랜차이즈 식당이 눈에 띄어  검색을 해보니 숙소에서 약 3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사람 구경하며 천천히 걸어가려고 한 손엔 구글맵을 켜놓은 채 밖으로 나왔다. 시끄러운 경적이 울리는 릭샤가 물밀듯이 내 곁을 지나갔다. 열 걸음 걸을 때마다 한 번씩 릭샤왈라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릭샤왈라는 어딜 가냐는 말과 함께 손가락으로 승객 자리를 가리키며 타라고 채근했다. 그때마다 양팔을 교차해 X 표시를 하며 그들에게 완강한 목소리로 거절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족히 1시간은 걸리겠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바라나시에 가면 오토릭샤(auto-rickshaw) 말고 사이클 릭샤(Cycle-rickshaw)를 타보라는 성민이의 말이 생각났다. 그때 앞에서 나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던 사이클 릭샤왈라에게 다가갔다.

*사이클 릭샤(Cycle-rickshaw)
 :손님을 태울 수 있게 뒷좌석을 개량한 자전거. 자전거 뒤에 사람을 태울 수 있도록 안장과 가림막을 설치한 차.
 
*오토릭샤(auto-rickshaw) : 엔진을 장착한 3륜 차.

*릭샤왈라 : 릭샤꾼
인도, 바라나시

“Bangs restaurant 얼마에 가주실 수 있나요?”
 “50루피.”
 “50루피는 너무 비싸요. 30루피에 가주세요.”
 “오케이. 어서 뒤에 타.”
 가격협상을 하는 동안 오토 릭샤왈라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정신없이 본인들의 릭샤를 가리키며 내게 얼른 타라고 다그쳤다. 그들의 제안을 무시하고 재빨리 사이클 릭샤 뒷자리에 올랐다. 릭샤왈라는 식당의 위치를 잘 모르는 듯 보였으나, 일단 모객 하기 위해 날 태운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몇 차례 지나가던 청년들에게 길을 물었고, 못 미더운 표정을 짓고 있는 나에게 가지런한 미소를 띄었다. 그리고 말했다.

 노 프라블럼

인도 사람들이 말버릇처럼 내뱉는 ‘노 프라블럼’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들이 어떤 프라블럼을 감추고 있을지 마음이 쫄깃해지곤 했다. 릭샤왈라는 가느다란 다리로 페달을 밟으며 삐뚤빼뚤 내달렸다.


 사이클 릭샤를 처음 타서 잔뜩 신이 났다. 사방으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달라지는 주변을 둘러봤다. 양 옆으론 상점들이 즐비했고, 현지인과 외국인 관광객은 사이클 릭샤와 오토릭샤 사이를 요리저리 피하며 길을 뚫고 지나다니고 있었다. 도로 저편을 망연히 바라보기도 했고, 고함치는 길거리 장사꾼들에게 눈길을 뺏기기도 했다. 사이클 릭샤는 인도를 느리게 즐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다. 이상하게 인도에서는 빨리 가려고 하면 내속만 타들어갔고,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거나 포기하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곳이었다. 이 명제는 비단 인도에서뿐만 아니라 내 삶에 투과시키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전래동화 속 캐릭터로 비유하자면, 오토릭샤는 토끼였고 사이클 릭샤는 거북이었다. 오토릭샤는 매캐한 냄새와 시끄러운 엔진 소리를 내뿜으며 내 옆을 지나쳐갔고, 내가 탄 사이클 릭샤는 페달을 아무리 빨리 밟아도 속도가 더뎠다. 이 속도와 패턴대로라면 오토 릭샤왈라가 세 번째 승객을 태울 때, 사이클 릭샤왈라는 첫 번째 승객을 내려줄 터였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보조바퀴가 있어 페달에 힘을 보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힘들게 돈 버는 아저씨가 많은 승객을 태울 수 있는 방법을 상상했다. 릭샤 왈라가 힘에 부칠 때면, 그와 자리를 바꿔 쉬게 해주고 싶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릭샤왈라는 갑자기 멈춰 섰다.

 “잠깐 물 좀 마실게.”
 식수대에 가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한 손으로 흘러내린 물을 소매로 쓰윽 닦으며 릭샤에 다시 올라탔다. 그는 다시 세차게 페달을 밟았다. 아저씨는 숨을 헐떡대며 엉덩이를 올렸다 내렸다 반복하며 힘겹게 페달을 밟았다. 무더운 날씨가 아니어서 다행이지 조금이라도 더 뜨거웠다면 아저씨 등에 흘러내린 땀으로 넓디넓은 인도 지도를 만들었을 것이다. 나보다 키가 작고 왜소한 체격인 아저씨였는데, 점점 그의 어깨가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몇 백 미터 가다가 또 릭샤를 멈춰 세우고 숨을 고르며 말했다.
 “나 담배 좀.”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주머니 속에 있던 씹는담배를 입에 냅다 털어 넣었다. 릭샤에서 내려 그의 앞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요. 아저씨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그런데, 제가 릭샤를 타봐도 될까요? 저 자전거 잘 타요! 제 뒤에 타세요.
 "안 돼.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넌 내가 태우는 손님이야. 그래서 넌 그 자리에 앉아야 해. 그리고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너를 태우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다시 너의 자리로 가.”

”알겠어요.”
 그가 안 된다고 말할 줄 알았지만, 평소에 릭샤를 몰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던 내 마음을 곱게 접을 수밖에 없었다. 3km는 사이클 릭샤로 가기엔 꽤 멀었고, 사이클 릭샤의 속도는 천천히 사람 구경하는데 알맞았다. 지나다니는 사람과 릭샤가 점점 줄어들고, 큰 골목의 끝이 보일 때쯤이었다. 몇 백 미터 지나서 그는 또 페달 돌리기를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너 릭샤를 타보고 싶다고 했지?”
 “네! 저 자전거 잘 타요!”
 “자, 앉아봐.”
 “와! 진짜죠?”


 그는 릭샤 안장을 툭툭 치고 나서 흐르는 땀을 닦았고, 난 뒷자리에서 내려서 그의 자리에 착석했다. 안장 위치는 꽤 높아 사이클 선수처럼 엉덩이를 뒤로 추켜올렸다. 신이 났다.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해맑은 표정으로 릭샤 페달을 힘차게 내리밟았다. 즐거운 기색과 땅의 진동이 내 몸 전체로 퍼졌다. 햇살은 뜨거웠지만, 불어오는 바람이 꽤 시원해서 견딜만 했다. 아저씨는 뒤에서 “오. 너는 훌륭한 릭샤왈라야.” 말하며 껄껄 웃으셨다. 거리에 있던 서양인 무리는 나를 향해 엄지를 추켜올려 세우고 손뼉을 쳤다. 어떤 이는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는 듯 입을 크게 벌렸다. 마치 지방선거에 출마한 유력한 후보 1번이 된 듯, 그들의 박수갈채에 고개를 끄덕이며 온화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인도에 와서 가장 짜릿한 순간이자, 큰 일탈이었다. 마음 같아선 목적지까지 가녀린 아저씨를 태워 가고 싶었다.


 짜릿한 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된 게 부담스러웠는지, 관종력과 텐션이 올라간 내가 못 미더웠는지 영어로 말하던 아저씨가 힌디어로 다급하게 뭐라 말하며 손가락으로 자전거 브레이크를 가리켰다. 조금 더 오래 타고 싶어 처음에 못 알아들은 척했지만, 이제 멈춰야 할 때임을 받아들였다. 일반 자전거를 생각하고 양쪽 손을 움켜잡았는데, 찰찰찰 경쾌한 자전거 벨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아저씨는 다급하게 뒷좌석에서 부리나케 내려 자전거를 잡았다. 그는 불규칙한 호흡을 내쉬며 내게 말했다.
 “이제 너의 자리로 돌아가.”
 

 릭샤왈라 자리를 3분 만에 내놓았다. 3분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주 짧은 찰나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릭샤 페달을 밟을 때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각본의 주인공이 된 듯했다. 황무지 사막을 한참 떠돌다 오아시스를 발견하고 힘껏 내달린 기분이라고나 할까. 몸과 정신이 이완되어 홀가분해졌던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처음 인도에 당도했을 때 무수한 릭샤를 보며 언젠가 릭샤를 몰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인도 마지막 도시인 바라나시에서 타게 됐다. 몰아보고 싶었던 릭샤는 오토릭샤였지만, 꿈은 계속 생각하다 보면 완벽하게 꿈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비슷하게나마 꿈은 이루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인도에 다시 가서 오토릭샤를 몰아볼 수 있는 날을 꿈 꾼다.


 아저씨는 식당 앞에서 내려주셨다. 구글 지도가 가리키는 식당은 허름하다 못해 귀신이 나올 것만 같은 문을 통해 들어가야 했다. 구글 지도가 잘못 가리키는 게 아닐까 의심하며, 지나가는 행인에게 Bangs Restaurant가 어디냐고 몇 번이나 물어봤다. 끝내 돌아오는 대답은 저 문으로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가라는 말 뿐이었다. 2층을 올려다보니 구글 지도에서 봤던 이미지와 비슷했지만, 귀신의 집 같은 문을 열고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어두컴컴한 내부가 보이는 문을 들어가야 할지, 다시 숙소로 돌아가야 할지 고민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날 지켜보고 있던 사내가 2층으로 올라가면 내가 찾는 식당이 나온다고 말했다. 들어가지 못하고 안을 힐끗 쳐다보기만 하는 내게 다가와 같이 들어가 주겠다고 손을 내밀었다. 다른 차원의 고민이 다시 시작됐다. 저 사내를 믿어도 괜찮을지, 다른 목적이 있진 않을지에 대해. 다시 저릿한 긴장감이 전신을 감돌기 시작했다.

여기를 들어가라고? 말도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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