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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 Jul 22. 2019

여행하면서 뭐가 가장 힘들었어?

의심과 믿음은 종이 한 장 차이

 긴 여행을 다녀온 나에게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여행 중에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었냐고. 수만 가지 좋은 이유가 있듯 힘든 이유 또한 무수히 많다. 베드 버그가 득실대는 침대에서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보내야 할 때, 인종이 다르단 이유만으로 인식이 편협한 사람에게 무시를 당할 때, 생필품을 쉽게 구하지 못해 대체품으로 몇 날 며칠을 버터야 할 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을까 가방을 매만지며 걱정할 때. 불편함을 감수하고 버텨내야 할 날들은 번번하게 찾아오곤 했다. 여행한다는 것은 기대감과 두려움이 일순간 교차되기 쉬운 환경에 나를 내던지는 일이었다. 그중 가장 힘든 것은 타인의 마음을 의심하는 일이었다. 낯선 나라의 찬 공기를 온전히 느낄 새도 없이 공항에 도착하고나서부터 의심 필터를 장착한다.  나를 상대로 사기를 치려는 사람인지, 진심으로 나를 도와주고 싶어 다가오는 사람인지 생김새로는 당최 구별해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쿠바 아바나 숙소 요반나에 있을 때 여행자들끼리 모여 앉아 조식을 먹으며 여행지에서의 만나는 사람들의  위험함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 여행자 A가 말했다. "제가 아르헨티나 산티아고 시내에서 숙소를 찾고 있는데, 10M 정도 떨어져서 날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뛰어와서 내 멱살을 잡더니 목걸이를 채갔어요." 여행자 Y가 말했다. "역시 여행지에서는 항상 조심해야 해요. 그 누구도 쉽게 믿었다간 여행은커녕 바로 귀국해야 할지도 모른다니까. 누구든 의심해보고 조심해서 나쁠 건 없어요." 여행자 A는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요. 저는 그 도둑이 제 목걸이를 낚아채면서  제 목에 상처가 나서 한동안 덩치 큰 남자를 보면 벌벌 떨었어요. 하지만 제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의심하는 태도는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Y가 말했다. "여행 중엔 우린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요. 특히 우린 눈에 띄는 외국인 여행자예요.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에게 물론 너무 고맙고요. 하지만 안전하게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가려면 의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A가 말했다. "여행을 안전하게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 물론 중요해요. 하지만 우리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을 의심하거나 우리에게 도움을 주려고 다가오는 사람을 무작정 나에게 사기 치려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우린 그들과 결코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어요. 그리고 진정한 여행을 하기 어려워지고요. 우리 낯선 타지에 와서 한국인들이랑만 놀기 위해 온 거 아니잖아요?  저는 여행하면서 많은 사기꾼을 만났지만, 열린 마음으로 그들을 진심으로 대하려고 노력해서 많은 친구들도 사귀었어요. 그만큼 여행도 다채로워졌어요. 제가 만났던 사람들을 믿지 않았다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요?" Y가 말했다. "A님 말씀처럼 현지인 친구들과 다채롭고 재밌는 경험 중요해요. 하지만 타지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외국인인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요. 내게 호의적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또한 매력적인 여행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제겐 마음 편하고 안전하게 여행을 하는 것 이상의 가치는 없어요." 끝이 날 것 같지 않던 긴 대화의 마무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여행을 하자는 다소 싱거운 결론을 내며 끝났다. 팽팽하게 이어진 대화처럼 많은 나를 포함한 여행자들은 여행자 A의 입장과 Y의 입장 사이를 시소 타듯 저울질한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을 무작정 믿기엔 큰 손해 볼 것 같고, 나 혼자 이 큰 도시를 쏘다니기엔 낭만적이지도 재밌지도 않아 보인다. 타인의 진실된 마음을 꿰뚫어 볼 기민함도, 내게 미소를 띠고 다가오는 사람을 덥석 믿을 순수함도 갖고 있지 않다. 한국에서나 지구 반대편 타국에서나 건강한 관계에 대한 고민은 지속되기 마련이었다.


 의심하는 일이 힘들다고 처음 느꼈던 곳은 쿠바였다. 쿠바는 여행하면서 가장 많은 현지인 친구를 사귀었던 곳이기도 하며, 그만큼 사기를 치려고 하는 사람도 많았던 곳이기도 했다. 누군가 쿠바는 어떤 곳이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쿠바는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곳이에요.
그리고 누구라도 사기를 당하기 쉬운 곳이에요.”

 그들은 친한 친구처럼 다가와 사기를 치기도 했고, 능청스러운 사기꾼처럼 다가와 친한 친구가 되기도 한 곳이었다. 첫 번째 쿠바 여행을 갔을 때, 말레콘에서 맥주를 함께 마시던 정은 언니는 쿠바를 ‘나쁜 남자’라고 비유했다. 쿠바는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매력적이고 어쩐지 자꾸 생각나는 곳이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다간 된통 당하기 쉬운 곳이었다.


 쿠바에서 가장 의심을 많이 할 때이기도 하고 심장이 쫄깃해지는 순간은 바로 암 환전할 때였다. 공식 환전소와 ATM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내가 여행했을 당시 미국 달러로 암 환전하는 게 가장 환율이 좋았다. 환전상 아저씨와 거래를 할 때 웬만한 첩보영화를 능가하는 긴장감이 감돈다. 보통 암 환전을 하는 곳은 공식 환전소 앞이었다. 환전소 근처에 도착하면 몇 명의 쿠바노들과 눈을 마주치게 되는데 그들은 나에게 슬며시 다가와 말한다. “유 원트 익스체인지 머니?(환전 원하니?) 하우 메니 달러 유 헤브?(달러 얼마나 가지고 있니?)” 백 달러를 환전할 거라고 말하면, 환전상은 계산기로 100달러에 상응하는 쿠바 화폐인 쿡(CUC)을 제시한다. 나쁘지 않은 환율이라면, “오케이”와 함께 고개를 힘껏 끄덕인다. 아니면 약간의 미간의 찌푸림과 함께 “노오. 손을 저으면 된다. 전자인 경우, 쿠바노와 나는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는 구석으로 간다. 환전상에게 먼저 돈을 받고 위조지폐인지 확인한다. “빌리브 미.” 말하며 친근한 웃음을 내보이는 환전상이 있는 반면, ‘쟤는 나를 항상 의심한다니까.’ 심드렁한 표정과 함께 약간의 한숨을 쉬며 먼 산을 보고 있는 분도 있다. 거래가 끝나기 전까진 쿠바노와 나 사이엔 미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지폐 상태와 위조 여부 확인이 끝나면, 내가 가지고 있던 달러를 내민다. 만족스러운 거래였다는 표정과 함께 악수를 하고 헤어진다. “씨유 레이터!”

    

 몇 번의 환전을 하며 친해진 B아저씨가 있었다. B는 나와 동행 오빠, 언니를 당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B는 집으로 가는 길에 쿠바의 역사부터 시작해 언제부터 환전 일을 시작했고, 가족은 몇 명인지 알려주었다. 특히 그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려줄 때 그의 표정과 말투에서 집에 대한 자부심을 느껴졌다. 그의 설명을 들으며 걷다 보니 점점 색다른 분위기의 후미진 골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나름 아바나 골목을 꿰뚫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보는 골목에 괜스레 두려움이 불쑥 튀어나온다. 친구들과 “설마 아저씨가 집에 도착하면 시가 강매하진 않겠지?” 혹은 “우리 어디로 팔려나가는 거 아니지?” 가볍게 농담했다. 친절한 B가 태세 전환을 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내적 리허설을 했다. 그의 집에 거의 도착할 때쯤 H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우리 집은 되게 좁아. 그리고 낡았어. 아마 너희가 보고 실망할 수도 있어.”라는 말을 반복하셨다. 아바나 시내에서 20분 정도 걸은 후에야 그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H가 집 구조를 설명할 때 상상했던 집보다 비좁고 허름했다. 10평 남짓한 집 크기에 침대 하나, TV, 부엌이 작은 원룸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화장실은 문은 없었고 대강 올린 벽돌로 변기가 겨우 가려져 있을 뿐이었다. 가족 셋이서 살기엔, 그리 넉넉하지 않은 아담한 집이었다. 아저씨가 직접 쌓아 올린 벽돌과 집안 곳곳 회색 시멘트를 바른 집에 아내와 아들과 셋이 살고 있었다. H의 가족과 인사를 하고 앉을자리를 내주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고 나서야 H의 아내는 냉장고에서 식재료를 꺼내 요리를 시작했다. 부부는 음식 가열되는 동안 쿠바 전통 춤인 살사를 알려주고, 비디오테이프로 마이클 잭슨 뮤직비디오와 자신이 좋아한다던 쿠바 음악도 들려주었다. 2시간가량 기다려서 먹은 음식은 맛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H는 자신의 집에 식탁이 없어서 불편하진 않은지 몇 번이나 물었다. 불편했던 건 단 하나. 계속 그들이 시가를 강매하지 않을까 불쑥 의심했던 내 마음이었다. 그가 우리를 집으로 초대했을 때도, 웰컴 드링크라고 준 모히또를 마실 때도, 음식이 완성되어 한입 먹으면서도, 친절하게 살사를 알려줬을 때도, 그의 아들과 장난을 치고 사진을 찍을 때도 ‘이 부부가 우리에게 시가 판매를 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떤 표정으로 어떻게 그를 대해야 할까?’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시간이 꽤 지났고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됐다. 그들과 흥겨운 인사를 몇 번 주고받았다. 마지막 인사인 듯 아저씨는 하이파이브를 하시며 “유 아 굳 프렌드!” 말씀하시며 너털한 웃음을 지으셨다.  쿠바 사람들은 헤어질 때 언제고 다시 볼 것처럼 인사한다. 다시 못 볼 사람이면서.

 

 아저씨를 뒤로 하고, 우리 셋은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한참을 숨죽이며 걸었다. H는 말했다. “아니었네. 우리한테 물건 팔까 봐 사실 조마조마했어.”라고 말했다. 우리 셋은 같은 지붕 아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환대를 고마워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의 호의를 의심했다. 비록 식사 테이블도 없는 작고 낡은 집에 우리를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던 순수한 그들의 마음을 의심했다. 허무하고 미안했다. 차라리 그가 시가를 판매하려고 했다면, “거봐~우리가 예상한 대로 그 사람은 순수하지 못한 의도로 우리에게 친절을 베푼 거야.”라고 말하며 웃고 넘어갔을 텐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는 B와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서였다. 헤어짐이 가장 슬플 때는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에 있던 상대방과 내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을 때다. 야속하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사람 마음은 언젠가 변한다는 말만이 위로가 될 뿐이다.


 그로부터 2년 후, 쿠바에 다시 가게 됐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H였다. 환전소 앞에서 나를 보면 “JO~” 외치며 손을 내밀던 B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지 궁금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배고픈 배를 달래며 환전소로 향했다. 환전소 앞에 도착하기 전에 걱정이 앞섰다. 아저씨가 나를 기억 못 하는 건 괜찮은데,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 컸다. 내 발걸음과 심장박동수는 점점 빨라졌다. 환전소가 보이자, 자연스레 입 꼬리가 조금씩 올라갔다. 길치인 내가 B가 계시던 환전소를 단번에 찾았다. 그런데 환전소 근처에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다. 2년 전에 아저씨가 계시던 환전소 앞에도, 환전소 옆 건물에도, 담배를 태우시던 거리에도 그 어디에도 계시지 않았다. 환전소 앞에 있는 환전상들에게 그의 사진을 보여줘도 아는 사람은 없었다. 활동하시는 장소를 옮기셨나. 근처 다른 환전소에 가보아도 계시지 않았다. 아저씨에게 그때 의심해서 미안하다는 말은 못 했겠지만, 고마웠다고. 아저씨 같은 사람 덕분에 쿠바에 다시 오고 싶었다고, 이렇게 다시 오게 됐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끝내 마지막 날까지 보지 못했다.


 빚을 진 기분이다. 그래서 아저씨가 자신의 이익을 더 챙기며 환전을 해줘도 고맙다고 속아주고 싶었는데, 아저씨는 쿠바 여행 마지막 날까지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다시 찾은 아바나의 아름다움은 그대론데, 3년 전에 쿠바에서 만난 사람들이 썰물 빠지듯이 빠져나간 기분이 들었다. 쿠바에서 많은 빚을 지고, 빛을 얻곤 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빛을 주는 사람이었고 빚을 내는 사람이었을까.


 누군가의 진실된 마음을 의심하고 싶지 않다. 동시에 불순하게 다가오는 이에게 마냥 속아주고 싶지도 않다.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오는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과 어쩐지 자꾸 끌리는 이에게 여과 없이 다정함을 주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 누군가를 믿고 의심하는 마음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하기에 여행 중에 미소를 띤 채 다가오는 사람을 여전히 의심하고 경계할 것이다. 어쩐지 마음 한구석에 미안한 마음을 가득 품은 채 그렇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득하게 믿어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않을까 낯선 아바나 골목 어귀를 헤매고 있을지 모르겠다.

꾸불꾸불 골목을 들어서니 나온 B의 집 / 웰컴 드링크
닭볶음탕 맛이 나던 음식. 밥과 팥을 곁들여 먹었다. 팥을 싫어하지만 음식들의 궁합이 좋아 꿀떡꿀떡 잘도 먹었다.
B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인 마이클잭슨 비디오 / 전직 살사 댄스 선생님이었다는 부부의 현란한 댄스교습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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