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라 Apr 03. 2019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젊음은 한순간이니, 누릴 수 있는 순간들을 마음껏 즐기렴


걷다.

인도, 푸쉬카르를 걷다.


 인도 푸쉬카르에서 맛있다는 팔라펠을 먹고 새로 산 바지 봉지를 흔들며 호스텔로 돌아왔다. 두 달 가까이 있던 인도에서 며칠을 제외하고는 매일 저녁노을을 봤다. 인도에서는 저녁 시간에 딱히 할 게 없기도 했고, 높은 건물이 많지 않았던 탓에 해가 떨어지는 시간이면 가장 탁 트인 장소를 물색하게 됐다. 침대에 가방을 휙 던져놓고 스피커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서 이웃집 옥상에서 연날리기를 하고 있는 동네 아이들을 구경했다. 팽팽한 낚싯줄만큼 그들이 낚싯줄을 당기고 푸는 손놀림에서도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한쪽에는 해가 저물 준비를 하는지 꼬물꼬물 시동을 걸고 있다. 해가 지는 방향에는 낙타 축제 때 임시로 설치해 놓았던 회전관람차가 멀뚱히 서있다. 그 옆엔 나무에 묶여 있는 낙타 두 마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심심하지 않냐 는 눈빛을 주고받는 듯 서있다. 한때 여행자들이 끊이지 않았던 푸쉬카르가 관광객이 빠져버린 탓인지 조금은 가라앉고 황폐해서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성민이와 인선이가 옥상으로 올라왔다. 성민이가 짜이를 마시냐는 물음에 단숨에 마시겠다고 하고 뜨끈함을 목구멍으로 넘긴다. 짜이 특유의 단맛과 생강 뒷맛의 알싸함이 마치 인도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래서인지 인도에서 노을을 볼 때 짜이를 그리 마셨나. 유리잔에 담긴 뜨끈한 짜이를 마시며 노을을 배경 삼아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해가 불그스름해질 무렵이었다.      

인도 푸쉬카르 Moon light 호스텔 옥상에서 본 노을.  한 폭의 그림 같았던 이 풍경의 잔상이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성민이가 나지막이 말했다.

 "우리나라는 말을 참 잘 짓지 않았어? 황혼이라는 말은 참!"
 "그러게! 지금이 딱 황혼이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음 곡이 재생됐다.

                                                                                          

What if we run away

(우리가 오늘 도망쳐버린다면 어떨까)

What if we left today

(우리가 떠나버린다면 어떨까)


 Troye Sivan의 Youth이었다.

 “캬! 황혼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Youth가 나오나!!”

 “그니까. 황혼과 젊음이라니. 우린 젊음과 황혼 사이 어디쯤 있겠지?”

 “우린 아직 젊어!”

 그 후 말없이 노을을 보며 노래를 몇 곡 더 듣다가 성민이가 운을 뗐다.

 “호영아. 나 이적 노래 아무거나 하나 틀어주라. 지금 이 풍경 보면서 이적 노래를 들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아.”

음원사이트 검색창에 이적을 검색하고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를 재생했다.


그땐 아주 오랜 옛날이었지

난 작고 어리석은 아이였고
열병처럼 사랑에 취해 버리고
심술궂게 그 맘을 내팽개쳤지

내가 버린 건 어떠한 사랑인지
생애 한번 뜨거운 설렘인지
두 번 다시 또 오지 않는 건지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오랜 뒤에 나는 알게 되었지
난 작고 어리석었다는 것을


 노래가 끝나고 성민이는 방으로 내려갔다. 불타는 노을은 져버리고 어느새 서서히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카펫 위에 덩그러니 앉아 청춘에 대해 생각했다.

 고등학교 선생님도, 할머니도, 여행 중에 만나는 아빠 또래 아저씨도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지금 너희들은 한창 좋을 때란다. 젊음은 한순간이니, 누릴 수 있는 순간들을 마음껏 즐기렴."

 그들은 항상 한구석에 뜨거운 무언가를 품은 듯 아련한 말투로 청춘을 예찬하신다. 시간을 돌아갈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아쉬운 걸까. 청춘이라는 건 지나고 나서야 진가를 알게 되는 것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의 나이가 이십 대 중후반이었는데 그때는 선생님들이 그토록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 나이가 되어 생각해보니 대학교를 졸업하고 칠판 앞에서 우리를 어르고 달래던 선생님은 나처럼 미래를 고민하고 초조해하는 내 또래였다. 고등학생 때 고작 몇 살 더 많은 언니이고 오빠였고, 그들과 난 어른이 될 준비를 하지 않았는데 불쑥 어른이 되어버렸다.

 대기업 총수들은 하나 같이 젊음과 지금의 자산을 모두 걸고 바꿀 수 있으면 바꾸겠다고 한다. 청춘은 인생에 있어 가장 아름다운 봄 같은 나이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예쁘면 ‘꽃 같은 청춘’이라 비유한다. 활짝 핀 꽃을 보면 마음이 환해진다. 아름답다. 찬란하다. 생명력과 활기참이 느껴진다. 버스 정류장 앞에서 깔깔 거리며 환하게 웃고 있는 십 대들을 볼 때 유독 그런 기분이 든다. 전화를 하고 있던 친구에게 물었다.

 "어른들이 우리  고등학생일 때 그런 말 했잖아. 너희들은 아무것도 안 발라도 예쁘다고. 그게 화장하지 말라는 그저 기분 좋은 말씀인 줄 알았는데, 정말 있는 그대로 예쁘지 않아? 빛이나."

 "응. 자체만으로도 예뻐. 통통 튀어. 우리도 별것도 아닌 일에 웃는 일이 많았는데, 우리도 늙었나 봐. 졸업한 지 십 년이 됐네."

늦여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해바라기 밭.

 꽃은 언젠가 시든다. 꼿꼿했던 줄기가 점점 약해진다. 때론 꺾기 기도 한다. 꽃의 형태를 잃고 땅속에 파묻히기도 한다. 언제 흐드러지게 폈냐는 듯, 청춘도 세월에 따라 허무하게 죽는다. 사람이 100살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젊음은 짧다. 늙는다. 조금씩 늙어가고 있다. 늙어간다는 것은 그리운 것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푸쉬푸르 숙소 옥상에서 친구와 짜이 한잔하며 들었던 노래, 매일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 어스름한 새벽의 찬 공기, 와락 안았을 때 나던 옛사람의 달큼한 샤워코롱 향,  숨바꼭질을 하다 엄마의 밥 먹으라는 소리에 내일 보자고 외치던 친구의 음성을 간직한 채 늙는다. 내 안에 담았던 많은 시선들과 마음들은 어느새 과거라는 이름으로 켜켜이 쌓여간다.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도록 사진을 순간을 즐기며, 사진을 찍고, 글로 남긴다. 젊은 날의 증거를 남기는 셈이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좋은 때’로 기억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의 순간은 단 한 번뿐이고, 지금 내 나이도 단숨에 흘러가버리니까.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다루려고 한다. 힘든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을 넋 놓고 보내버리기엔 너무나도 찬란한 지금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그땐 미처 알지 못한 채 지나가버리는 순간을 청춘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여행을 다녀온 후, 추억 부자가 됐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나이와 주름과 사건과 생각이 축적된다. 나이가 든다는 게 추억을 담아내는 일이라면 늙는 것이 두렵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진다. <김광석-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내가 서른 즈음이 될 줄 몰랐듯, 내 나이를 의연하게 받아들일 어른이 언제 될지 모르겠다. 의연하긴 커녕 나보다 더 빨리 세어지는 부모님의 나이, 명절마다 보면 쑥쑥 커져있는 조카들의 키, 하나 둘 들려오는 초등학교 동창의 결혼 소식, 새해마다 달라지는 내 나이마저 낯설다. 아직 그럴듯한 노후계획도, 5년 후에 무엇이 되겠다는 포부도 없는 스물여덟 살이 될 줄은 몰랐다. 그게 나쁘지만은 않다. 나에게 계획이 없다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다만 분명한 건 서른을 목전에 앞두고 있는 내가 십 대를 생각하면 흐뭇한 미소를 지어내듯, 마흔쉰 살의 내가 지난날의 나를 돌아봤을 때 옅은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나로 살아가고 싶다.


듣다.

이적의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를 듣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하면서 뭐가 가장 힘들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