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보다 강렬했던 그 한입

Love is... just everything

by 뚜기


어떤 나라는 음식으로 기억된다.

태국 팟타이

터키 샤슬릭

페루 세비체

포르투갈 에그타르트

그리고 인도


내게 인도는 커리가 아니라 스무디볼이다.



처음은 인도 우다이푸르.

작은 골목, 테이블도 없는 작은 스무디볼 가게.

손바닥만 한 그릇에 담긴 요거트 위로

석류가 한가득 얹혀 있었다.

한 입.

단순한 재료들이 조화를 이루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인도를 다시 찾은 이유는 요가였고,

두 번째는 스무디볼이었다.

이번엔 북쪽의 도시, 리시케시로 향했다.

요가의 성지이자,

나에게는 또 다른 스무디볼을 만날 장소였다.


인도, 리시케시에 도착한 날.

비가 조용히 내렸다.

보슬보슬 땅은 젖어 있었고,

그 습기마저 이곳의 일부처럼 자연스러웠다.


리시케시는 겉으론 요가 도시지만,

그건 이곳의 절반쯤만 말한 것이다.

강가엔 갠지스 강물에 몸을 담그며

명상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옆에선 히피처럼 보이는 여행자들이

우쿨렐레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노점상 아이가 망고를 팔며 해맑게 웃는다.

세속과 영성이 겹쳐지는,

이질감과 평온이 공존하는 도시, 리시케시.


그날 내가 향한 곳은 한 스무디볼 가게였다.

구글 리뷰에서 우연히 본 가게.

사진 속 가게는 작았다.

주방과 좌석이 붙어 있는 2평 남짓의 공간이었다.


그 가운데, 흰 눈동자에 진한 눈썹,

짙은 갈색 피부를 지닌

크고 단단한 몸을 가진 남자가 서 있었다.

리뷰 속 그는 손님과 꼭 붙어 웃고 있었는데,

왠지 그가 만든 스무디볼은

터프하게 버무려졌을 것 같았다.

그는 내가 본 구글 리뷰에선 늘 환하게 웃고 있었다.



노란 우산을 쓰고

소가 싸놓은 똥을 피해 스무디볼 가게 앞에 도착했다.

그곳은 별도 출입문이 없었다.

누구나 들어오라는 가게 같았다.


작은 실내는 국적이 다양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었다.

서로를 모르는 얼굴이었지만, 어색하진 않았다.


한 손님이 스무디볼을 들고 입을 크게 벌려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사장님의 굵고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웰컴 투 러브하우스~ 하와 유, 마이 프렌드!”


그는 나를 처음 본 것 같지 않은 얼굴로 반겼다.

마치 날마다 오는 단골처럼.

내가 온 뒤로 온 손님들에게도,

요거트를 먹는 손님들에게도

말끝마다 “Love”, “Peace”라는 단어를 붙이며

온몸으로 환대를, 사랑을 건넸다.

사랑과 평화는 그의 입에서 습관처럼 내뱉어졌다.


내가 앉은자리는 ㄱ자 형태의 목재 테이블.

혼자 온 나는 구석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 공간에선 혼자라는 개념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모두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어디서 왔는지를 묻고,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렀다.

내 앞에 앉은 여성은 스웨덴에서 왔다 했고,

옆의 남자는 3주째 같은 요가 아쉬람에서

수련 중이라고 했다.



사장님은 내 앞에 컵을 툭 내려놓았다.

"Tea of love. 마법 같은 차야. 한 잔 마셔봐."

따끈한 허브향에 살짝 민트가 감도는 차였다.

솔직히 말하면 인도에서 생수를 제외한 건

웬만하면 마시지 않는다.

하지만 그 순간엔 괜찮을 것 같았다.


그 차에는 뭔가 안심이 배어 있었고,

나는 그저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향긋했다.

입안에서 가볍게 맴돌다 목을 타고 스며들었다.


사람이 많아 스무디볼은 30분쯤 걸린다고 했다.

하지만 조급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인도는 뭔가를 빠르게 소비하러 오는 곳이 아니라

흐름에 그저 따라가는 곳이니까.


기다리는 동안, 사장님은 내게

작은 스푼에 담긴 요거트를 입에 넣어주셨다.

"맛이 어때? 호영. 너의 스무디볼은 곧 나올 거야!”


한입.

바로 입안이 깨어났다.

진하고 꾸덕한 요거트와 뮤즐리가 으스러지듯 씹혔다.



잠시 후, 내 앞에 놓인 스무디볼 한그릇.

요거트 위에 줄을 긋듯 섬세하게 놓인

석류와 딸기 조각, 여러 가지 치아시드와 견과류가

듬뿍 뿌려져 있었다.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자,

바삭, 부드러움, 달콤함, 상큼함이 동시에 터졌다.

그 감촉이 리시케시의 공기와 맞물리며

내 오감이 동시에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 사장님은 내 표정을 보며 웃었다.

“어때? 사랑의 스무디볼이야.

나는 말없이 엄지손가락을 두 개 세워 보였다.

하얀 치아를 내보이며 웃는 사장님.


사장님은 밀려있는 스무디볼을 만들면서도

계산을 하고 나가는 손님들과 포옹은 잊지 않았다.

사랑의 포옹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이곳만의 오래된 전통인 것처럼

모두 비슷한 입모양으로 웃으면서

사장님과 포옹을 하고 나갔다.


나는 그런 광경을 보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익숙한 듯이 포옹을 해야 하나?'

저들처럼 익숙한 얼굴로 자연스럽고 쿨한 포옹은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다 먹고 계산을 하려고 일어나니,

스무디를 만들다 말고 그는 껄껄 웃더니 내게 다가와

두 팔을 벌리고 말했다.

“Come here, big hug”

그러곤 나를 안아주었다.


언젠가 다시 리시케시에 가게 된다면,

나는 그에게 꼭 물어보고 싶다.

"사장님에게 사랑은 대체 뭐예요?"

그는 아마 이렇게 답하겠지.

“Love is... just everything”

진부하지만,

그 말이 낡아 보이지 않는 공간이었다.


그게 뻔한 대답일지라도,

요거트를 만드는 그의 손에서,

사람을 안아주는 그의 팔에서,

그 말은 오늘도 향수처럼

리시케시의 기다란 골목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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