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였지만, 내 것이 아니었다

by 뚜기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32일 동안 약 800km를 걸었다. 그 여정을 블로그에 글로 남겼다. 준비물부터 경로, 날씨, 그때의 감정까지 꼼꼼하게 담았다. 새벽에 일어나 세 시간 넘게 다듬었고 정보도 충분히 넣었다.

며칠 뒤,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글이랑 거의 똑같은 게 있어. 한번 봐봐.” 검색해 보니 문단 순서만 살짝 바뀌었을 뿐, 내용은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그 글은 내 글보다 상위에 노출되어 있었다.


나는 영상을 만들고, 글도 쓰며 생계를 이어가는 창작자다. 창작은 감정의 표현이자 동시에 생존의 도구다. 하지만 검색 엔진은 내 노동의 결과물보다 복제된 글에 더 많은 노출을 줬다.


처음엔 그냥 넘기려 했다. 그저 온라인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 여겼다. 그런데 상한 감정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직접 걷고, 고민하며 쓴 문장이 쉽게 복제됐다는 사실에 퍽 서글퍼졌다. 내 이야기 위에 누군가가 슬쩍 자기 지문을 얹은 것처럼 느껴졌다. 내 이야기를 커뮤니티에 공유해 보니,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창작자들의 후기도 많았다.


“표절은 입증하기 어렵다.”

“플랫폼 대응이 미약하다.”


영상과 음악은 유사 콘텐츠를 자동으로 탐지하고, 차단하며, 수익까지 분배하는 시스템이 있다. 유튜브의 Content ID처럼 말이다. 하지만 텍스트 콘텐츠는 다르다. Copyscape, Turnitin 같은 유사도 도구는 있지만, 플랫폼에 통합되어 있지 않고, 자동 대응 체계도 갖춰지지 않았다. 일부 글쓰기 플랫폼엔 우클릭 금지, CCL 설정, 자동 출처 표시 기능이 있긴 하다. 하지만 사용자가 직접 설정해야 하고, 표절을 실질적으로 막기엔 역부족이다. 종이에 자물쇠를 거는 것처럼, 아직 실효성이 부족하다.


텍스트 표절 문제는 기술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기술은 ‘비슷한 문장’을 걸러내는 역할을 하고,

‘같은 생각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결국 사람에게 달려 있다. 그 판단의 바탕은 문화적 감수성이다. 창작물에 대한 존중이다. 누군가의 글을 참고했다면 최소한 원문 출처를 밝히고, 누가 먼저 쓴 글인지 인식하며, 그 차이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완벽한 방패는 없지만, 작은 조각들이 모이면 적어도 '쉽게 훔쳐갈 수는 없는 세계'는 만들 수 있다.


AI로 인해 더 빠르게, 더 많이 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타인은 마음을 들이지 않아도, 타인의 문장을 흉내 내는 건 쉬워졌다. 하지만 한 문장을 쓰기까지의 고민과 시간, 그 문장을 쓴 사람의 고유의 시선과 삶까지는 그 누구도 복제할 수 없다.


나는 내가 살아낸 이야기로 글을 쓰고, 살아 있는 당신이 읽는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닿는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오늘도 나는 문장을 쌓는다. 결국 오래 살아남는 문장은 속도보다 밀도가 높은 문장이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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