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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 Apr 20. 2019

[tmi]오글거리다 라는 말이 불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맥주 한 캔씩 앞에 두고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분위기는 무르익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갑자기 한 오빠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아 이런 이야기 하지 말자. 나 진지충이야. 술 마시고 진지한 이야기 하면 큰일 나.”
 그 오빠는 서둘러 대화 주제를 바꿨다. 설렘이 어렸던 감정을 나누고 싶었는데 김이 팍 샜다. 달아올랐던 대화의 분위기는 어느새 증발됐다.


 언제부턴가 진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본인을 진지충이라 칭하며 양해해달라는 듯 이야기를 시작한다. 진지충은 웃자고 하는 말에 진지하게 대답하여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사람을 지칭하는데, 남용되어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까지 포함하게 됐다.


 스물한 살 때 노래를 들으며 강의실로 들어간 적이 있다. 수업 준비를 하려고 이어폰을 뺐는데, 재생 버튼이 눌려 음악소리가 강의실에 작게 울려 퍼졌다. 옆에 앉아있던 친구가 말했다. “아 뭐야. 조호영 이런 노래 들어. 오글거려.”

강의실에 울려 퍼진 노래는 성시경의 태양계였다.

 그날 이후, 내 플레이리스트를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일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서정적이고 음울한 노래로 가득한 플레이리스트와 남에게 보이는 성격은 괴리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취향이나 생각을 표현했을 뿐인데, 그 사람의 감성이 오글거린단 말로 우습게 터부시 되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때 유행하던 버디버디나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흑역사니 뭐니 오글거린다고 한다. 감성적인 사진과 글을 올리는 게 그 당시 지배적인 분위기였다. 자신의 감정과 감성을 표현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친구들과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을 공유하던 때가 그립기까지 하다. 그때는 지금만큼 오글거림의 역치가 낮지 않았다. 지금은 힙한 공간에서 찍은 사진 한 장과 짧게 단 한 줄 코멘트가 대세를 이룬다. 진지하게 남긴 긴 글엔 ‘세줄 요약 부탁드림’이라는 댓글이 남겨진다. 긴 글을 소비하기보다는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정보를 스캔하기 바빠 보인다. 시를 좋아한다고 하면 고상한 척하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예술과 철학에 대해 논하기만 해도 오글거린다며 폄하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물론 오글거린다 라는 말은 어디서 본 듯한 단어와 미사여구와 감정 형용의 과용, 상황에 맞지 않는 무분별한 글에 방어기제로써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감성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되는 분위기를 양산한다. 감정을 얼마큼 도려내 보여도 괜찮은 건지 스스로 오글거리진 않을까, 너무 진지한 건 아닐까 생각이 들 때면 문턱에서 머뭇거리게 될 때가 있다. 혹은 내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tmi가 되진 않을까 우려한다. 상대방과 눈을 맞추며 마음을 나누는 일을 사랑하는데, 그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TMI (Too Much Information) : 너무 과한 정보의 준말. 쏟아지는 tmi가 나에겐 너무 too much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글을 남기고, 감정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누군가는 당신이 tmi라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혹은 오글거린다고 생각하는 당신의 섬세한 감성이 담긴 간지러운 글을 기다리고 있다. 비밀스럽게 세세한 말로 털어내고 싶은 사람의 용기를 오글거리다는 말과 tmi로 검열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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