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내 곁에 선 순간.”
심수봉 〈사랑밖엔 난 몰라〉의 첫 소절이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면, 엄마는 어김없이 내 쪽을 바라본다. “너 기억나지? 초등학교 장기자랑 때 노래 불렀던 거.” 기억나지 않을 수가 없다. 양갈래 머리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치마, 두 손으로 마이크를 꼭 쥔 채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던 나.
“그때 진짜 떨려서 목소리랑 손이 다 같이 떨렸어. 근데 왜 하필 그 노래였어?” 엄마는 부엌에서 반찬통을 뒤적이며 대답한다. “너 춤은 안 출거고, 마술은 실수할까 봐 싫다 하고. 그나마 자주 따라 부르던 게 저 노래였으니까.” 그걸 제안한 엄마도 웃기고, 그걸 정말 부른 나는 더 웃기다. 맞다. 춤은 너무 적극적인 느낌이고, 마술은 트릭이 들통날 것 같고, 노래 부르기는 좋아하니까. 발표회 장기자랑을 준비하라고 했던 담임 선생님의 말. 소심하고 조용했던 나는 노래가 가장 낫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무대에 올라섰다. 눈앞에 앉아 있는 친구들의 눈동자 수십 개가 보였다. 심장은 빠르게 뛰었고, 셔츠가 미세하게 들썩일 정도였다.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가 마이크에 잡히지는 않을까. 지금이라도 무대에서 내려갈까. 내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지지는 않을까. 고작 몇 초였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고작 몇 초의 짧은 이 생각들이 정리될 시간도 없이 노래 반주가 큰 스피커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나는 노래를 시작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아이가 사랑밖엔 모른다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 노래는 구슬퍼야 맛이 살아나는 곡이었지만, 내 목소리는 마치 목각인형처럼 뻣뻣하고 굳어 있었다. 이 노래 가사의 절절한 사랑에 대한 가사를 알았다면 난 이 노래를 선곡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아무것도 몰랐기에 가능했던 선택이었다. 무려 20년도 더 된 일인데, 무대 앞에 있던 친구들 무리의 장면, 내 앞에 큰 괘종시계가 있었다는 것도 또렷이 기억날 만큼 그날의 이미지가 선명하다.
발표회가 끝난 며칠 뒤, 엄마가 전해준 말이 있다. “네 담임선생님이 그러시더라. 호영이는 낯도 많이 가리고 말도 조용해서 무대에 올라가도 끝까지 부르기 어려울 줄 알았대. 그런데 떨리는 얼굴과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다 불러서 놀라셨다고. 놀라웠고 기특하다고 하시더라.”
지금 생각해 보면 귀엽다 못해 조금 짠하다. 나는 끝까지 부른 동력이 무대에서 내려갈 용기가 없어서이기도 한데. 그때는 수십 명 앞에 서는 것이, 지금 수백 명 앞에 서는 것보다 더 떨렸다. 지금은 이 노래에 맞춰 우스꽝스러운 춤도 마구 출 수 있을 만큼의 철면피도 생겼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무대 위에 선 누군가를 야박하게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날, 무대 위에서 나는 노래를 불렀다. 누구보다 잘한 것도, 특별한 순간도 아니었다. 그저 내 차례였고, 마이크를 잡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끝까지 불렀다. 그 일은 금세 지나갔지만 그 장면은 좀처럼 흐려지지 않았다. 무대의 불빛, 낯선 정적, 숨죽인 눈동자들. 그날의 공기가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이상하게, 그때 장면은 머릿 속 어딘가에 눌어붙어 있다. 불빛, 괘종시계, 발끝, 얼굴들은 흐릿해졌지만, 감각은 아직 그 자리에 있다.
※ 본문에 인용된 가사는 심수봉의〈사랑밖엔 난 몰라〉(1982)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