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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 Jun 14. 2019

옛날 우리 집

큰 개나리 나무가 보이는 집

 열네 살, 학원 가는 첫날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갈 준비를 하려는데 스피커를 통해 원내방송이 흘러나왔다. ‘1호차는 장미 아파트, 승지 빌라’  집 위치에 따라 학원차를 타라는 안내방송이었다. ‘2호차 현대 아파트, 원광 빌라, 13번 종점’ ‘13번 종점’이라는 키워드를 들은 아이들은 크게 웃으며 “13번 종점 누구야? 조호영 너지?”라고 물으며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우리 집은 주택이었고, 13번 종점 근처였기에 편의상 그렇게 불렀다. 그 말을 지금 들었다면 아무렇지 않겠지만, 그때는 민망하지 않은 척 친구들과 비슷한 모양으로 따라 웃었다. 주택이 아닌 명료한 이름이 붙여져 있는 아파트에 살고 싶었다. 주말에도 친구들이 만나는 장소인 놀이터에서 놀고 싶었고, 엘리베이터 타고 집에 올라가고 싶었다.


 옛날 우리 집은 마을버스가 한 시간에 한대 다니는 마을에 있었다. 13번 버스에서 내려 조그마한 나무숲을 옆에 두고 조금만 올라오면 가장 첫 번째로 보이는 집이었다. 그래서 배달음식을 시킬 때면 마을 이름과 함께 큰 개나리나무가 보이는 집이라 설명했다. 봄이면 오빠들과 개나리나무에 매달려 놀고, 여름이면 좁은 앞마당에서 칠 수 있는 가장 큰 풀장에서 물놀이를 했다. 가을이면 집 앞 단풍나무와 은행나무 사이에서 숨차게 뛰어놀았고, 겨울이면 오빠들과 집 앞 내리막길에서 추운 줄 모르고 눈썰매를 탔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그러니까 열아홉 살 때까지 부모님과 안방에서, 오빠들은 작은 방에서 잤다. 안방에 시원한 에어컨이 있어서 여름 나기에 좋았고, 보일러가 가장 뜨끈하게 데워지는 방이어서 겨울나기에도 좋았다. 부모님과 나란히 누워 TV 보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다 스르르 잠이 들기도 했다. 부모님은 영화채널을 종종 틀어놓으셨는데 간혹 19금 장면이 나오면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실눈으로 훔쳐봤다. 부모님과 TV를 볼 때 키스신이나 애정신이 나오면 침을 어떻게 삼켜야 자연스러운 건지 고민했다. 침을 한참을 머금고 있다가 이불을 부스럭대며 부자연스럽게 침을 꿀떡 삼키곤 했다.


 우리 집은 비가 오면 천장에서 꿉꿉한 냄새와 함께 빗물이 샜고, 비가 오기 전엔 천장에서 쥐들이 떼를 지어 뛰어다녔다. 쥐 소리가 나면 혹여나 쥐들이 천장을 다 갉아먹어서 쥐가 내 배 위로 떨어지지 않을까 이불을 꼭 덮고 잠이 들었다. 안방에서 쥐를 본 적은 없었지만, 가끔 화장실 창문이나 구멍으로 쥐가 들어와 비누를 갉아먹고 사라졌다. 언제 한 번은 화장실 문을 열고 불을 켰는데, 눈 앞에 살짝 내려앉은 천장 사이로 지나가던 굵다란 쥐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몸은 얼어붙었고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에게 일을 볼 때까지 내 앞에서 기다려달라고 했지만 해주지 않으셨다. 결국 화장실에서 오빠는 내가 큰일을 다 볼 때까지 변기 앞에서 보초를 서야했다. 쥐가 내 눈앞에 있는 순간도 물론 무서웠지만, 혼자 쥐를 목격하는 순간이 끔찍히 싫었다. 여전히 쥐가 끔찍하게 무섭다.


 오빠들과 등교를 준비하며 화장실이 순서를 기다릴 때, 변기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 인형극을 구연했다. 화장실 서랍장 위엔 세라믹 재질의 돼지 삼 형제 모형이 있었다. 돼지 삼 형제를 가지고 몇 가지 시나리오를 반복했지만, 때론 몇 가지 장면을 가감하며 인형극을 구연했다. 무대는 주로 서랍장 위나 세탁기 위에서 시작했다. 돼지 인형 두 마리를가 길을 걷다가 셋째 돼지가 절벽(세탁기)으로 떨어지는 장면은 우리가 즐겨 찾는 전개였다. 놀란 둘째 돼지는 밧줄을 가져와 셋째 돼지를 구출하는 식이었다. 세탁기는 극적 위험요소를 동반한 중요한 소품이었다. 매번 비슷한 스토리의 극이 전개됨에도 불구하고, 돼지 인형극을 보며 껄껄 웃으며 큰일을 해결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인형극이었다.


 가끔 어렸을 때가 생각나면 엄마와  그 집을 회상한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옛날 집에 대한 향수를 품은 채 말씀하신다. “그래도 옛날 우리 집에 살던 그때가 참 행복했는데. 복작복작 너희가 키우는 게 힘들어도 재밌었는데. 그 집에서 살 때 좋지 않았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마다 지금 집이 더 좋다고 말했지만, 엄마의 아련한 감정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 집이 그립지 않다. 다만 명료한 이름을 붙은 집이 아니었지만 ‘13번 종점’ ‘큰 개나리가 보이는 집’이라 불리던 그 집에 살던 시절이 이따금 생각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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