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입술이 터져 피가 고였다. 아이는 크게 울었고 나와 남편은 사색이 되었다. 오늘 일정은 가장 기대했던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에 가는 것이었지만 순식간에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이대로 여행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까. 아이가 다친 이유는 이랬다.
우리가 두 밤을 보내게 된 곳은 추안하우스 도톤보리였다. 침실 건너에 다다미 방이 있어서 짐을 두기 좋았다. 방에 딸린 발코니 덕분에 도시의 야경을 보기에도 훌륭했다. 아이는 그 방에 놓인 네모난 탁자에 관심을 가졌다. 탁자를 북처럼 둥둥 두드리며 엉뚱한 춤을 춰댔다.
아침에도 아이는 탁자 주변을 계속 얼씬거렸다. 흥에 겨워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더니 탁자 모서리에 입을 부딪히고 말았다. 모서리가 둥글다고 안심했던 게 문제였다. 너무 이른 시각이라 당장 문을 연 병원이 없었다. 상처를 자세히 살펴보니 입술의 도톰한 부분이 다쳐 피가 유독 많이 난 듯했다. 다행히 치아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이가 우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피가 멎을 때까지 일정에 대한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 예정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정신이 혼미했으나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향했다. 그 길에 아이의 입술을 수십 번 살펴보았다. 먼저 남편이 갖고 싶어 하던 별 모양 가방을 사기 위해 팝콘 가판대에 줄을 섰다. 아이의 어깨에 메어주려 했지만 생각보다 단단하고 무거워 나와 남편이 번갈아 들었다. 굿즈숍에서는 마리오 모자를 써보면서 깔깔 웃었다. 아이에게 인형을 하나 골라보라고 하자 주저 없이 요시를 집어 들었다. 처음 보는 캐릭터일 텐데 제법 애틋하게 안고 다니는 모양새가 꼭 동생이라도 생긴 것 같았다.
다채로운 길거리 음식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먹기에는 불편할 터였다. 우리는 미니언 파크와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일식당인 사이도에 들어갔다. 그런데 자리에 앉자마자 아이가 잠들었다. 우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초밥이 포함된 정식 두 개를 주문했다. 아이의 숨이 고르게 이어지는 걸 확인하며 회를 조용히 씹어 넘겼다. 아이가 깨어난 뒤에는 아이용 정식을 추가로 시켰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입을 쩍 벌려 음식을 받아먹는 모습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볍게 떨어지던 빗방울이 금세 굵어졌다. 급히 아이의 비옷을 샀다. 가장 작은 사이즈였지만 한참 컸다. 아랫단을 꽉 묶어주고, 우리는 작은 양산 하나를 나눠 썼다. 아이는 스누피 우비에 붙어 있는 강아지 귀를 만지작거렸다. 마침 미니언즈 무리가 포토 타임을 갖고 있길래 우리도 대열에 합류했다. 나와 아이는 가죽 재킷을 뽐내며 기타를 치는 로커 미니언과 사진을 찍을 심산이었다. 우리 차례가 되었을 때 아이는 두 손바닥을 쫙 펼치면서 뒷걸음질 쳤다. 코앞에서 움직이는 커다란 눈이 무섭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다시 다가가 보려 했지만, 이미 미니언은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도망치듯 줄을 빠져나왔다.
아이를 달랠 겸 마리오 팬케이크를 맛보기로 했다. 딸기가 얹어진 부분을 아이에게 양보했다. 궁극의 단맛에 아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남편은 버섯 모양 가방에 또 눈독을 들였다. 짧은 설득 끝에 남편이 청사과 소다와 가방을 양손에 들고 왔다. 사실 팬케이크와 소다의 맛은 평범했다. 입보다는 눈이 즐거운 간식이었다.
슈퍼 닌텐도 월드로 출발할 즈음, 비는 더욱 거세졌다. 남편이 아기띠를 꺼내 아이를 앞으로 안았다. 옷은 금세 젖었고, 몸은 점점 무거워졌다. 그래도 아이만은 젖지 않게 하려 애썼다. 아이는 우비 속에서 눈만 빼꼼 내밀어 주변을 구경했다. 움직이는 마리오 캐릭터들, 그중에서도 요시가 단연 눈에 띄었다. 아마도 그날 아이가 유일하게 친근감을 느낀 캐릭터가 아니었을까.
위저딩 월드 오브 해리포터로 가는 비탈길이 유난히 가파르게 느껴졌다. 체력은 빠르게 떨어졌다. 비를 맞으며 어트랙션을 타는 사람들을 보며,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호그스미드 마을의 몇 곳을 겨우 둘러보았지만, 당시 기억이 또렷하지 않다. 그토록 기다렸던 올리밴더 상점조차 기력이 쇠하니 그저 빨리 지나쳐야 할 관문처럼 느껴졌다. 서둘러 숙소에 돌아가기로 했다. 더는 서 있을 수가 없었다.
택시에 올라탄 후의 시간이 흐릿하다. 문이 닫히고,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던 것만 어렴풋이 떠오른다. 숙소에 돌아와 누웠던 장면, 그리고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잠시 편의점에 다녀오겠다고 했던 말. 그게 전부다.
첫날의 소동에 그칠 줄 알았는데 사흘은 대소동이었다.
그날의 기억은 군데군데 비어 있지만,
아이의 울음과 다시 웃던 얼굴만은 생생하게 남아 있다.
우리는 그 사이를 지나왔다.
'다시, 여행' 시리즈 중 오사카 3편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아이와 함께한 오사카의 나흘을 담아봅니다.
— 호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