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서 교토, 거닐 곳이 이어지다

by 호유
어느새 허리를 조금 숙여 걷는 게 익숙해졌다.


아침 9시 반, 서둘러 짐을 챙겨 교토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전날의 소동이 무색할 만큼 하늘은 맑았다. 정오가 되기 전 교토에 도착했다. 아이는 따뜻한 볕에 꾸벅꾸벅 졸다가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유아차의 차양막을 내려주고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큰길 아래에 숨겨진 오솔길은 인적이 드물었다. 나른한 공기 속에서 우리는 아무 목적 없이 걷는 시간을 누렸다.


아이가 깨어나면 든든한 교토 가정식을 먹이고 싶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기요미즈 타테바라는 오반자이 집. 후기가 많지 않은 걸 보니 여행자보다는 현지인에게 익숙한 곳인 듯했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밥 짓는 냄새가 먼저 번져왔다. 안쪽 다다미 방에서 웃음 섞인 일본어가 흘러나왔고, 우리는 바깥쪽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주인장은 혼자 주문을 받고 조리를 했다. 손이 바쁜 와중에도 음식은 차분하게 차려졌다. 생선구이와 채소 반찬, 꽃 모양 어묵이 들어간 국물까지. 우리 기준에는 간이 심심했지만 아이는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그 미묘한 맛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식사를 마칠 즈음 식탁 모서리에 따뜻한 차 두 잔이 놓였다. 아이의 손이 닿을까 염려한 배치였다. 표정이 없고 말수는 적었으나, 주인장의 손님과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서 진심이 묻어났다.


(왼쪽부터) 교토식으로 차려진 한 끼. 탑과 키를 맞춘 아이.


한결 단단해진 발걸음이 기요미즈데라로 향했다. 절벽 위에 자리한 사원은 멀리서도 위용을 드러냈다. 다만 본당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람을 피해 한적한 길로 돌아갔다. 아이는 바닥의 돌을 하나씩 가리키고 나무로 지어진 건물 앞에서 뛰어올랐다. 유명하다는 오토와 폭포는 굳이 보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보다 중요한 건, 이미 여기 있었다. 산넨자카로 내려가는 길, 골목은 점차 옛 교토를 거닐게 했다. 길 끝에 삐죽 솟은 야사카노토가 산책을 독려했다.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탑과 눈높이를 맞춰 보았지만, 정작 아이는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란덴 열차를 기다리는 내내 우리는 꽤 설렜다. 잠시 후, 뎅-뎅-뎅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보라색 열차가 선로에 진입했다. 아이는 심각한 표정을 한 채 열차를 샅샅이 탐색했다. 마주 앉은 금발의 여행자가 그런 아이를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녀는 “쏘 큐트!”라는 탄성과 함께 인사를 시도했으나 아이는 내 손으로 자신의 두 눈을 가려버렸다. 그새 창밖으로 조밀한 주택가가 휙휙 스쳐갔다. 일본의 어느 만화가가 그린 듯 아기자기한 감성이 물씬 풍겼다.


울음을 달래주던 대나무숲.


아라시야마역에 이르자 공기가 쾌적했다. 대나무숲에 가기까지 수많은 상점들이 발길을 붙잡았다. 특히 리락쿠마로 꾸며진 카페는 아이를 핑계로 멈춰 설 뻔했다. 치쿠린은 비밀스러운 숲이었다. 키를 가늠할 수 없는 대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었고, 바람이 스칠 때마다 잎사귀가 서로 부딪히며 속삭임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아이의 독사진을 남겨주고 싶었지만 낯설었는지 손을 놓으려 하면 금세 울음을 터뜨렸다. 결국 손을 꼭 잡은 채로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덜컥 커버린 것 같아 조바심이 나다가도, 이런 순간이면 여전히 내 품의 아기라는 사실에 왠지 안심하게 된다.


숲내음을 맡고 나니 문득 허기가 밀려왔다. 어제 먹지 못한 양까지 채우려면 저녁은 푸짐해야 했다. 아이의 걸음으로 20분가량 걸어서 키주로에 다다랐다. 식당으로 뻗은 골목에 일정한 간격으로 놓인 조명이 마치 우리를 마중 나온 듯했다.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와규 덮밥 둘과 아이용 덮밥을 주문했다. 아이는 달짝지근한 고기와 부드러운 푸딩에 검지를 들었다. 아직 엄지를 치켜세울 소근육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를 두드리면서 나올 무렵 해가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산등성이에 걸린 빛이 흐릿하게 퍼지며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 걸을 때면 가볍게 떠오르는 기분이 들곤 했는데, 이상하게 이날은 묵직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위에서부터) 아이의 검지를 받은 덮밥. 아이가 달리면 우리도 달린다.


아라시야마 공원을 터벅터벅 걸었다. 아이는 다리가 아프다며 유아차에 몸을 기댔고, 우리는 도게츠교가 보이는 흙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통통한 볼을 장난스럽게 비볐더니 아이가 갑자기 입을 맞춰왔다. 아직 두 돌이 되지 않아 늘 조심해 온 뽀뽀였다. 내가 깜짝 놀라자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입술을 댔다. 남편은 질투가 난 듯 얼굴을 들이밀었다. 순간 서로 다른 표정들이 겹쳐졌는데, 지금도 이 장면을 떠올리면 미소가 번진다.


걱정과 안도가 번갈아 왔고,

그 사이에 짧지만 강렬한 기쁨이 깃들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그렇게 기억되었다.

내일은 또 어떤 기억이 기다리고 있을지.




'다시, 여행' 시리즈 중 오사카 2편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아이와 함께한 오사카의 사흘을 담아봅니다.

— 호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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