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아이 20개월 무렵
인천 공항 어딘가에 마련된 뽀로로 놀이터를 아이가 신나게 누볐다. 커다란 얼굴을 한 크롱에게 다가가 알은체를 하기도 했다. 후쿠오카 여행 때는 카운터에서 티켓 사진이나 기록용으로 급히 찍었는데, 이번에는 비행장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오붓하게 남겼다. 그만큼 마음이 한결 느슨해진 듯했다. 그래도 탑승 중에는 여전히 아기띠로 아이를 꼭 안고 있었다.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통화를 이어가는 그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무슨 일인지 묻기도 전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에어비앤비에서 고심하여 예약해 둔 숙소에 문제가 생겼다는 연락이었다. 승강기 고장으로 인해 투숙이 어렵다고 했다. 당장 오늘부터 묵을 곳이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공항을 벗어나지 못한 채 서둘러 다른 숙소를 찾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검색을 하고 메시지를 쓰느라 점심 먹을 겨를도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있으니 일단 눈앞에 보이는 만두 가게인 551 호라이에 줄을 섰다. 몇 시간 만에 숙소를 두 군데로 나누어 예약했다. 첫날 1박, 그다음 2박. 하필 골든위크와 맞닿아 빈 방을 구하기가 더 힘들었다.
그렇게 허둥지둥 시간을 보내고 나니 늦은 오후에야 우메다 공중정원 전망대에 이르렀다. 이미 3시가 훌쩍 지나 주유패스를 활용한 무료입장은 불가능했다. 비용이 조금 아까웠지만 아이에게 오사카의 전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40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숨을 돌린 뒤 전망대로 올라갔다. 반나절 동안 마음을 졸였던 탓인지 탁 트인 풍경이 유난히 시원하게 다가왔다. 아이도 고개를 위로 꺾었다가 이리저리 돌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는 인도에서 온 친구와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아이는 쑥스러운지 이내 내 다리 사이로 숨었지만, 친구를 계속 힐끔거리며 몰래 쳐다보았다. 결국 그 친구의 엄마와 내가 아이들의 입이 되어 대화를 나누었다.
저녁은 도톤보리에서 제대로 먹을 심산이었다. 거리마다 인파로 붐벼 빈틈이 없었는데 혹시 아이가 치일까 싶어 얼른 유아차를 펼쳤다. 유아차를 끄는 와중에도 앞사람의 발을 건드릴까 봐 조마조마했다. 간신히 목적지인 쿠라스시 도톤보리점에 다다랐지만 줄이 굉장히 길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줄어들 기미가 없어 다시 문을 나섰다. 결국 어느 이름 모를 초밥집에 들어갔다. 직원들은 아이에게 사탕을 쥐여 주며 아주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하지만 초밥의 맛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우리조차 당황스러웠다. 아이는 연신 계란초밥을 뱉어냈고, 우리는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초밥을 주우면서 대충 나가자는 수신호를 보냈다.
도톤보리 강의 리버 크루즈가 여행 첫날의 마지막 희망처럼 느껴졌다. 남편이 지친 나를 한 번 보더니 말없이 표를 끊어왔다. 유람선에도 사람이 많아 우리는 떨어져 앉게 되었다. 배가 물살을 가르자 가이드가 설명에 열을 올렸지만, 나는 새초롬해진 아이를 무릎으로 옮기느라 내용을 전혀 듣지 못했다. 그가 오사카 전통곡이라며 빠른 템포의 노래를 불러주었던 기억만 어렴풋이 난다. 유람선이 글리코 간판 앞에 잠깐 멈춘 순간, 두세 줄 건너의 남편과 우스꽝스러운 구도로 사진을 찍었다. 남편은 자리에서 몸을 기울여 아이와 나를 화면에 겨우 끼워 넣었다. 남편의 얼굴이 화면을 꽉 채우고 우리는 작고 희미한 조명처럼 나왔다. 하선할 때는 외국인 승객들이 아이에게 길을 내어준 덕분에 목례로 답하며 일찍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첫날 묵게 된 숙소는 오사카 후지야 호텔이었다. 시내 중심부라 밤에 시끄럽지는 않을까 염려됐지만, 남은 숙소 가운데 위치와 가격을 고려하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다만 비좁은 욕실이 난감했다. 이제 샤워기를 보면 몸부림치는 아이와 그걸 감당해야 하는 우리에겐 더욱 그랬다. 다행히 그날 밤은 아이가 잘 협조해 주어 무사히 씻기고 재울 수 있었다.
불을 끈 방에서 남편과 나는 여행 때마다 그래왔듯 야식을 꺼냈다. 컵라면의 종이 뚜껑 틈으로 뜨거운 김이 천천히 새어 나왔다. 우리는 소동에 가까웠던 하루를 떠올리며 실소했다. 아이에게도 쉽지 않은 날이었을 테다. 특히 아파도 끼니를 거르지 않던 아이가 저녁을 거의 먹지 못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오래 기다리더라도 더 나은 곳에서 먹일걸. 후회가 밀려왔다. 혹시 초밥이 상했던 건 아닌지, 내일 배가 아프지는 않을지 걱정이 뒤따랐다. 아직 첫날인데 벌써 마지막 날 같은 서사가 쌓인 듯했다.
그래도 머물 곳은 구했다.
내일은 또 다른 도시를 거닐게 될 것이다.
오늘의 소동이 오늘로 끝나기를,
내일은 무던한 하루가 되기를 바라며
아이 곁에서 이불을 덮었다.
'다시, 여행' 시리즈 중 오사카 1편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아이와 함께한 교토의 이틀을 담아봅니다.
— 호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