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에서 여행을 다시 시작하다

2024년 5월, 아이 10개월 무렵

by 호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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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익숙한 편이었다. 매달 출장으로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도 휴가마다 새로운 도시를 궁리했다. 가벼운 가방을 멘 채 촘촘히 짜둔 여정을 따르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대화했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났고, 여행은 자연스럽게 멈췄다.


여행은커녕 산책조차 쉽지 않은 날들이 이어졌다. 매일 집에서 아이의 수유, 낮잠, 배변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특히 아이는 먹성이 좋아 수유 텀이 유독 짧았다. 평균보다 빠르게 우는 탓에 늘 ‘벌써?’라는 생각으로 젖병을 들었다. 아이가 돌을 앞두었을 무렵, 이제는 집을 벗어나고 싶었다. 새로운 도시로의 환기가 절실했다.


물론 예전처럼 가벼운 가방, 촘촘한 여정, 현지인과의 대화가 포함된 여행은 불가능했다. 5일의 여정을 앞두고 꾸린 아이의 짐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옷, 신발, 액상 분유, 중탕기, 시판 이유식, 기저귀, 응급 키트까지. 짐을 최소화했으나 28인치 캐리어 3분의 2가 금세 찼다. 수시로 꺼내야 하는 손수건, 물티슈, 물컵, 간식은 배낭에 따로 넣었는데도 자리가 부족했다. 여정은 대단히 느슨해졌다. 아이의 컨디션도 이유였지만 유아차 출입이 가능한 곳만 추리다 보니 동선이 단순해졌다.


첫 여행지는 후쿠오카였다. 비행시간이 1시간 20분으로 짧으니 낮잠 시간을 맞춰볼 요량이었다. 도시 규모가 크지 않아 도보로 둘러볼 수 있었고, 한국어로 응대하는 소아과도 들어서 있었다. 마지막 날은 근교 도시인 유후인에 머무르자며 료칸의 호사를 누리게 해 주겠다던 남편의 농담도 선택에 한몫했다.


아이와 함께 처음 타는 비행기. 그 사실만으로 이미 작은 모험이었다.


출국 당일, 새벽 4시에 눈이 떠질 만큼 불안했다. 괜히 2주 전에 받은 아이의 첫 여권을 꺼내보았다. 뚱한 표정의 사진과 아직 깨끗한 26면이 극도의 긴장에 약간의 설렘을 부여했다. 아이가 크면 어릴 적 여행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언젠가 이 여권을 펼쳐보면 이때의 마음도 어렴풋이 떠오르지 않을까 생각했다.


대략 반나절을 앞서 공항으로 향했다. 아이는 한 손에 사과칩을 꼭 쥐고 창밖을 구경했다. 아이의 시선을 따라 바깥을 보며 구름과 새를 가리켰다. 출장이나 휴가 때는 항상 잠든 채 지나던 길이었다. 이런 여행의 시작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 한켠, 유아휴게실에서 잠깐 숨 고르기.


이 글은 '육아 여행기'보다는 멈춰있던 여행을 다시 이어가는 기록에 가깝다. 아이와 함께이지만 동시에 나 자신이 다시 여행자가 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부지런히 계획했던 곳들을 방문하는 대신 걸음을 늦추고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현지인들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한다.


앞으로 몇 편에 걸쳐 후쿠오카에서의 여정을 써보려고 한다. 첫 비행의 난관, 숙소를 고른 기준, 유아차를 보관해 준 식당, 그리고 아이와 함께 거닌 시내 등.


다시, 여행.

이번에는 아이와 함께다.




‘다시, 여행’ 시리즈의 시작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아이와 함께한 후쿠오카의 첫날을 담아봅니다.

— 호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