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12시 30분 비행기였다. 미리 유아용 배시넷을 신청해 두어 기내 맨 앞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아이를 요람에 눕힐 기회는 없었다. 남편의 품에 안긴 아이는 한껏 동그래진 눈으로 사람들을 살피느라 바빴다. 그러다 뒷좌석과 눈이 마주쳤는지 "혹시 아기 손가락 한 번만 잡아봐도 되나요?" 하는 수줍은 물음이 들려왔다. 복도를 오가는 승무원도 아이에게 틈틈이 살가운 눈인사를 건넸다. 덕분인지 아이는 비행시간 내내 울지 않았다.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였다. 탑승구에서 유아차를 받아 입국 수속을 마친 뒤 가장 먼저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이유식을 꺼냈다. 여행의 첫 일정은 아이의 리듬에 맞춘 정비였다. 공항 바깥으로 나서는 순간, 드디어 다른 도시 안으로 들어왔다는 실감이 났다. 시차는 없었고 날씨도 비슷했지만 곳곳의 일본어 표지와 단정한 일본식 택시가 여행의 감각을 부추겼다.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스시사카바 사시스 킷테하카타점을 찾았다. 초밥을 좋아하지만 임신 때는 날것을 피했고 육아 중에는 간편식을 먹느라 멀리했다. 오늘이라면 약간의 대기쯤은 감내할 만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유아차를 모퉁이에 세우고 다소 좁은 자리에 앉았다. 새우 육회와 참치 뱃살 김말이 등 주문한 메뉴가 천천히 나왔고 우리는 오랜만에 신선한 맛을 음미했다. 아이가 내 무릎에서 몸을 배배 꼬기 전까지는.
급히 식당을 나서 캐널시티 하카타로 이동했다. 아이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유아차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마침 분수 쇼 시간이 가까워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아이의 시야를 고려해 자리를 잡은 우리는 갑자기 바뀌는 조명에 고개를 들었다. 음악이 커다랗게 울려 퍼지고 물줄기가 쉴 새 없이 오르내렸다. 아이는 집중할 때 짓는 특유의 무표정으로 분수를 응시했다. 나는 얼른 카메라를 켜 분수 쇼 대신 아이의 반응을 찍었다.
10분 남짓한 분수 쇼가 끝나고 지하 1층에 위치한 동구리 공화국에 들렀다. 아이에게는 아직 이름 없는 캐릭터겠지만 거대한 토토로 옆에 있는 쪼끄만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 웃음이 났다. 들뜬 남편이 아이 머리에 토토로 모자를 슬쩍 얹자 아이는 쑥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후쿠오카의 첫날,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날이 더 어두워지기 전 숙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로손에서 우유 푸딩을 사는 중요한 일정이 남아 있었다. 아이가 잠든 다음 숙소 구석에서 조용히 먹을 야식이었다. 일본 편의점다운 정갈한 진열대 앞에 서니 간식거리를 고르는 일조차 작은 성취처럼 느껴졌다.
숙소에 도착해 씻자 아이는 금세 잠들었다. 유아차를 접고 짐을 정리하며 하루를 되짚었다. 특별한 여행지는 없었고 계획한 일정도 일부만 소화했다. 무엇보다 출장이나 휴가였다면 결코 쇼핑몰에 반나절을 할애하지 않았을 테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아이의 표정과 사람들의 호의, 분수에서 튀어 오르던 물방울 따위를 세세하게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도시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느렸고 서툴렀지만
다시 여행을 시작했다는 감각만은 또렷했다.
'다시, 여행' 시리즈 중 후쿠오카 2편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아이와 함께한 후쿠오카의 이틀과 사흘을 담아봅니다.
— 호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