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아이의 시선으로 보다

by 호유
아이 곁에서 낮아진 풍경의 높이.


아침은 숙소 바닥에서 시작됐다. 피콜로 하카타의 룸은 소파를 밀고 요를 깔면 세 사람이 나란히 누울 만한 공간이 생겼다. 침대에서 내려와 아이를 가운데 두고 자야만 안심이 될 듯했다. 밤새 몇 번을 뒤척이면서도 아이의 손이 어디쯤 있는지 느껴지면 다시 잠들 수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느슨한 태도를 유지하기로 했다. 예전 여행의 부지런한 습관을 내려놓아야 작은 동행과의 하루가 무리 없이 흘러갈 것 같았다. 과감하게 오전 일정을 포기하고 아이에게 집에서 가져온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아이가 아끼는 책을 만지작거리며 낯선 여행지에서 불안해하지 않길 바랐다.


여유롭게 시작된 일정은 이치란 본점에서 출발했다. 라멘의 뜨거운 국물이 걱정되어 식사는 교대로 했다. 남편은 빠르게 한 그릇을 비우고 아이와 밖으로 나섰다. 덕분에 나는 라멘의 온도와 주변의 소리를 고스란히 느끼며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재촉당하지 않는 점심이라니, 정말 오랜만이었다.


원래는 골목 안쪽, 빨간 글씨로 적힌 간판을 내건 카페 델 솔에 가볼 생각이었다. 러프한 분위기와 섬세한 디저트가 시선을 끄는 곳이었다. 말차 팬케이크가 유명하다는 이야기에 잠깐 설렜지만 좁은 2층 계단이 유아차를 들고 오르내리기엔 쉽지 않아 보였다. 결국 일본풍 디저트를 대신해 가장 익숙한 선택을 했다. 가까운 스타벅스의 말차 라테가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아이는 트레이에 놓인 휴지와 빨대를 연신 구겼다가 펼쳐봤다. 특별한 장난감보다 이상한 촉감이 흥미로울 시기였다.


모모치 해변.


오후에는 오호리 공원으로 향했다. 산책로를 따라 늘어진 버드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아이는 남편 어깨 위에 올라 목말을 탄 채 살랑이는 손을 뻗어 잎을 잡으려 했다. 잎사귀에 닿지 않아도 시도 자체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호수 아래로 거북과 잉어가 지나가는 모습도 한참을 구경했다. 어쩌면 여행의 본질에 가까운 여행자는 우리가 아니라 아이가 아닐까.


공원에서 버스를 타고 20분가량 달려 모모치 해변에 닿았다. 모래사장을 거닐던 중 아이는 곤히 잠들었다. 우리는 바다 앞 노점에서 야키소바와 타코야키를 주문했다. 아이가 잠든 시간에만 가능한 평화로운 식사였다. 잔잔한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삼으니 한 끼에도 장면이 생겼다.


해가 기울 무렵 후쿠오카 타워로 걸음을 옮겼다. 입구에 마련된 포토 부스에서 우리 가족은 문어가 되어 타워를 점령했다. 아이는 엘리베이터가 끝없이 높게 올라가자 고개를 들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벌집처럼 반복되는 구조가 신기했던 모양이다.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하카타만의 야경은 고요했고, 아이는 그 빛보다 우리 얼굴을 오래 바라봤다.


(왼쪽부터) 아이의 시선이 머문 엘리베이터 천장. 후쿠오카 타워의 밤.



다음 날은 호빵맨과 보내는 하루나 다름없었다. 호빵맨 박물관에 가기 전 조금 이른 점심을 예약해 두었다. 히츠마부시 빈쵸에는 아이용 장어덮밥이 따로 있었고 좌식 자리도 방으로 나뉘어 있었다. 여행지에서 이런 식당을 만나는 건 생각보다 드문 일이다. 아직 이유식을 먹는 시기라 장어는 잘게 찢어 조금씩 건넸다. 먹성이 좋은 아이답게 생소한 맛에도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오히려 숟가락을 휘두르며 재촉했다.


어린 여행자에게도 다정했던 식탁.


호빵맨 박물관에서는 유아차를 보관소에 맡기고 아이를 안고 돌아다녔다. 먼저 호빵맨과 사진을 찍은 뒤 인형극을 관람했다. 일본어 대사는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커다란 몸짓 덕분에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문제가 없었다. 노래가 시작되자 아이의 시선이 무대에 고정됐다. 앞자리에 앉은 큰 아이들은 몸을 흔들며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그 행동을 통해 흥겨움이 충분히 전해졌다.


멀리서 본 인형극.
가까이서 본 인형극. 두 눈이 카레빵맨을 좇아갔다.


이어서 아이를 세균맨 우주선에 태웠다가 호빵맨 가면을 만들러 서둘렀다. 눈과 입을 그려보고 코와 볼에 빨간 색종이를 붙여보는 동안 아이는 잠시 협조적이었지만 완성된 가면은 금세 벗어던졌다. 우리가 사 온 호빵맨 가방도 던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이는 어깨에 멘 가방을 꽤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왼쪽부터) 잠깐 쓰고 벗었지만 함께 만든 시간은 남았다. 숙소에 돌아가서도 이야기하게 된 얼굴들.


저녁 역시 박물관 안 식당에서 마무리했다. 호빵맨 앞치마를 두르고 있으니 곧이어 아기자기한 식기에 담긴 오므라이스가 나왔다. 밥 위에는 작은 깃대가 꽂혀 있었고 파르페는 색감이 경쾌했다. 오로지 아이를 위해 온 곳이었으나 어느 순간 그 천진한 분위기에 우리도 자연스레 섞여 있었다.


아직 아이가 이 도시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게 될지는 모른다.

다만 우리는 아이의 시선을 따라 도시를 달리 보게 되었다.

익숙한 여행의 풍경이 아닌

낮은 곳에서 조밀하게 바라본 후쿠오카였다.




'다시, 여행' 시리즈 중 후쿠오카 3편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아이와 함께한 벳푸와 유후인의 나흘을 담아봅니다.

— 호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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