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탠저린>에 이은 션 베이커 감독의 섬세한 터치!
이 영화는 포스터가 망쳤다, 라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기억나는 영화들이 많은데, 가장 심각했던 영화부터 생각해보면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가 떠오르네요.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다룬 잔혹 동화를 아동용 판타지로 홍보해서 한국 어린이들에게는 큰 충격을, 영화를 사랑하는 어른들에게는 좋은 영화를 선택할 기회를 빼앗았죠.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라던지, 늙음과 사랑의 자격에 대하여 이야기 한 훌륭한 영화, <은교> 도 자극적인 주제를 노출시켜 본질이 왜곡된 영화 중 하나였습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도 그런 부분에서 아쉬움이 큽니다. 물론, 한국 평론가들의 극찬으로 이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꽤 많은 듯 하지만 영화의 소개가 조금 많이(!) 이상하거든요.
2018년 우리를 행복하게 할 가장 사랑스러운 걸작!
“안심하세요 나랑 있으면 안전해요”
플로리다 디즈니월드 건너편 ‘매직 캐슬’에 사는
귀여운 6살 꼬마 ‘무니’와 친구들의
디즈니월드 보다 신나는 무지개 어드벤처!
이 로그 라인(들어가는 글)을 보고 영화를 관람한 분이라면, 아마 영화의 러닝타임을 견뎌내기가 힘들었을 겁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그렇게 따뜻한 힐링 영화가 아니에요. 영화의 배경을 모르면 메시지가 반감되는 그런 영화입니다. (스페인 내전을 모르는 사람이 <판의 미로>를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이 영화를 볼 때는, 조금 생각이 필요합니다. 왜 하필이면 영화의 배경이 '플로리다'일까요? 무니가 불 지른 집들은 왜 그렇게 텅텅 비어 있었을까요? 헬리는 왜 그렇게 직장을 잡기 힘들고, 사람들은 집이 아닌 모텔에서 방세를 내면서 살아가게 되었을까요?
'플로리다'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오렌지'와 '휴양지'. 일 년 내내 기후가 온화하고 여유로운 휴양지 분위기의 동네로, 소득세가 없는 곳이에요. 미국에 돈 많은 사업가, 운동선수, 갱(!)들이 세금 도피와 휴양을 위해 이 동네에 집을 잔뜩 사놓았죠. 이렇게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몰리면, 집값은 자연히 올라가게 됩니다. 집값이 올라가면 주민들로서는 좋은 일이죠. 내가 사놓은 집이 비싸진다니! 얼른 빚을 내서 너도 나도 집을 삽니다. 그렇게 부동산에 거품이 끼어가던 중,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미국을 강타합니다. 부동산 거품이 엄청나던 플로리다는 특히 큰 타격을 받았죠.
헬리와 무니는 자본주의의 광풍이 플로리다를 휩쓸고 지나갔을 때 우연히 그곳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이런 삶을 선택한 것은 아니죠.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부동산 가격의 폭락을 가져왔고, 그때 은행 대출을 갚을 수 없었던 사람들은 집을 빼앗기고 쫓겨납니다. 그 집은 여전히 빈 채로 남아있지만, 집을 빼앗긴 홈리스는 그 집을 다시 살 수 없습니다. 돈을 빌려야 하는데, 은행도 망했거든요. 무니가 태워먹은 폐가는 바로 그런 집들이었습니다.
모두가 노숙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쉼터를 찾아야 하는데, 이때 사람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 모텔이었습니다. 집을 사기에는 신용이 없고, 월세를 빌리자니 돈이 부족하고(미국엔 전세가 없잖아요?) 계약금 없고 숙박비 저렴한 모텔이 최선의 선택이었던 거죠. 그런데, 이 쓸데없이 많은 모텔들은 또 언제 지어진 걸 까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원래 1967년, 디즈니가 플로리다에 디즈니 월드를 건설할 때 붙인 이름입니다. 이렇게 커다란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전 세계에서 디즈니월드를 방문하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많아질 것이라 예상했죠. 이 모텔들은 디즈니월드의 특수를 노려 숙박업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보면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상당히 다른 영화가 됩니다. 무니의 나이를 보면 딱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휩쓸고 간 이후에 태어난 아이거든요. 하필이면 헬리가 그 시기에 임신을 해서 홀로 아이를 키우게 된 게, 우연의 일치였을까요?
헬리와 무니는 그렇게 진짜 '집'대신 모텔을 전전하며 삽니다. 하지만 모텔도 공짜는 아니죠. 모텔 관리인 바비(윌렘 데포)가 사정을 최대한 봐주려고 했지만 숙박비를 내지 않으면 바비도 어쩔 수 없습니다.
직장을 구해보려고 해도, 헬리는 경력도 없고 교육 수준도 낮습니다. 국가의 보조금은 직장 유지를 하지 못해 끊기게 되었고요. (무주택자에게 주어지는 이 보조금의 이름도 '플로리다 프로젝트'입니다!) 흔한 레스토랑 서빙 알바 자리도 없어서 친구한테 와플이나 얻어먹는 처지인걸요.
여기서 영화는 반짝, 빛을 냅니다. 헬리가 직장을 잃은 이유를 설명해 주거든요. 헬리는 원래 클럽에서 춤을 추던 댄서였는데 (아마도 스트립 클럽이겠죠...?) 2차를 나가라는 (성매매를 하라는) 클럽의 요구를 거절한 뒤 클럽에서 해고되었습니다. 헬리는 성매매 따위 절대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성매매를 거부한 대가로 사회가 내민 것은 '보조금 중단'이었습니다. 옳은 일을 했는데, 헬리의 처지는 완전 엉망이 되어 버린 겁니다.
직장을 구할 수 없는 헬리는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기 위해 향수를 도매가격으로 떼다가 관광객들에게 팝니다. 귀여운 무니가 엄마를 지원해주죠. 예쁜 꼬마가 향수를 사라고 꼬시는데, 학교도 못 가고 엄마와 향수를 팔러 다니는 아이가 불쌍해서 사람들은 기꺼이 향수를 사줍니다. 그런데 이번엔 호텔 관리인이 와서 '사유지에서 물건을 파는 것은 불법이다'라고 향수를 뺏고 헬리를 쫓아내는군요. 헬리는 경찰이 와서 자신을 체포하면 무니가 홀로 남게 될까 봐 제대로 항의도 한번 해보지 못하고 돌아섭니다.
영화는 모든 장면이 너무 아름답고 소중한 명작 중에 명작인지라, 어느 하나를 콕 집어 소개하는 것이 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이 영화에서 절대 버릴 수 없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씬 중 하나가 바로 매트리스 폐기 씬입니다.
모텔에 있는 매트리스는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서 썩고, 곰팡이가 슬고, 진드기 알까지 잔뜩 있는 끔찍한 상태입니다. 상태가 너무 심각한 매트리스를 폐기하기 위해 비닐로 감싸던 직원이 바비에게 물어봅니다.
“건물 외벽에 보라색 칠한 것 예쁘던데요. 얼마나 들었어요?”
겉만 번지르르하게, 외관 리모델링에는 2만 달러나 써제끼고는 모텔이 가진 진짜 문제, 해충은 해결할 생각이 없냐는 거죠. 비꼬는 겁니다. 그 비꼼의 대상이 바로 우리가 비난해야 할, 잘못한 사람들이라고 감독은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 감독은 두 개의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비꼰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린이들의 꿈과 환상을 지키겠다며 한 사람당 몇십만 원의 돈을 받는 환상의 나라를 세운 디즈니(첫 번째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보조금을 내주면서 근본적인 사회 구조를 바꿀 생각은 없는 주 정부(두 번째 플로리다 프로젝트). 헬리가 노오오오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빈민층들의 문제는 단순히 그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하는 겁니다. 헬리를 욕하기 전에 먼저 욕먹을 자들이 있다고요. 그리고 어쩌면 세 번째의, 진짜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시작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무니의 성장 환경은 끔찍한 수준입니다. 만약 뉴스에 저런 부모가 나왔다면 우리는 앞뒤 따지지도 않고 욕부터 했을 겁니다. 미x년, 걸레 같은 x, 애를 구출해야 한다며 청와대 청원까지 시작 될지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무니를 헬리에게서 떼어놓는 것 말고도 많은 선택권이 있습니다. 그것은 체계적인 취업교육이 될 수도 있고, 무니를 학교에 보내는 것, 아이 돌봄을 지원해주는 것. (모텔에는 이미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 확인되었죠...?) 그리고 헬리의 부당해고 같은 사건에 대해서 대응하는 것, 보조금을 끊지 않는 것 등이 될 수도 있겠죠.
헬리가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원인은 그대로 내버려 두고 그 결과물인 무니와 헬리를 떨어뜨려 놓으려고 합니다. 헬리는 확실히 좋은 엄마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시간은 생이별로 이어지기엔 너무 애틋했어요.
직장도 잡을 수 없고, 향수도 팔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야 무니와 함께 할 수 있는데 그녀에게 더 이상 선택권은 없어요. 성매매를 피하다가 직장도 잃고 보조금도 끊겼지만, 이제 선택은 하나밖에 없네요. 헬리는 아이를 위해 성매매를 선택합니다. (성매매를 할 장소도 없어 무니를 욕실에 두고 '일을 처리'하는 장면은 관객을 굉장히 큰 충격에 빠트리죠)
이런 암울한 내용의 영화이지만, 영화를 보면서는 그런 답답함을 느낄 틈이 없습니다. 귀여운 악동 무니가 스크린을 휘젓고 다니거든요. 이 아이의 연기는 거의 신들림에 가깝습니다. 친구들과 차에 침 뱉기 놀이를 하고, 어른에게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을 하고, 집에 불을 지르고, 거짓말로 구걸하고, 건물의 두꺼비집을 내리고 노는데도 밉지 않습니다. 귀여움이라는 것이 폭발해요.
감독이 보기에 이 빈민층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시대적 흐름에 휩쓸려 고통받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는 성매매를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결국 성매매로 내몰리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다니엘이 겪었던 황당한 보조금 중단처럼, 규칙에 얽매여 사람을 돕지 못하는 사회구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여하튼, 이 영화는 엄청나게 엄청난 영화입니다. 사람들이 극찬을 하는 영화라고 해서 같이 칭찬해줄 생각은 없는데, 이 영화는 겨우 25억밖에 들이지 않았으면서 제작비 100억의 영화보다 훨씬 만듦새가 좋습니다. 물가 비싼 미국에서 영화를 25억에 찍다니, 미국은 200억 정도면 독립영화라고 하는 거 아시죠?
또 이 영화의 슈퍼스타, 브루클린 프린스라는 보물을 발견한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업적이 아니었나 합니다. 그런데 이름이 브루클린 프린스라니, 도봉구의 왕 뭐 이런 건가요? 어쨌든 이 귀여운 슈퍼스타는 영화를 사랑스러움으로 도배를 해놨습니다. 이 영화가 힐링 영화라고 홍보한 것에 대한, 아주아주 약간의 변명을 해줄 유일한 사람입니다.
이 배우는, 귀엽기만 한 게 아니라 농간에서 눈물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대 최연소 크리틱스 초이스 최우수 아역연기상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예상하기로는 '패닝 자매'를 뛰어넘는 차세대 아역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연기만 잘하는 게 아니라 말도 너무 똑 부러지게 깜찍하게 해요.
브루클린 프린스의 귀염 뽀짝 한 수상소감도 한번 보고 오시라고, 아래에 링크 남겨 놓겠습니다.
무니(브루클린 프린스)의 크리틱스 초이스 영화상 최우수 아역연기상 수상 소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