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야훼를 믿는 아브라함계 유일신교 3대장 ㅡ 유대교, 기독교(가톨릭, 개신교), 이슬람교 ㅡ 때문에 세상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고들 한다. 그리고 이는 종교가 본질적으로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어쩔 수 없다는 논리를 기반으로 한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신의 전쟁> 은 이러한 통념에 반박하며 신의 이름으로 가해져 온 '성스러운' 폭력의 역사가 진정 종교만의 책임인지 의문을 제기하며 종교를 수단으로 사용하면서도 목적인양 전면화시키는 농경 기반 제국의 폭력(의 역사)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저자의 수십 년의 연구가 녹아 있는 작품이라 열흘간 읽으면서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평소 지문을 읽으면서 의문스러웠던 포인트들이 있었던지라 그 부분을 해소하고자 서구 기독교 역사를 중심으로 읽었다.
농업은 인류를 정착시키고 문명을 만드는데 기여한 것도 사실이었으나, 책에 따르면 농업을 기반으로 한 체제는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잉여 생산물의 여부 및 그 차이는 계급 사회의 기반을 형성했고, 지배자는 국가 통치 기술로써 종교를 이용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진 자는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폭력과 약탈을 일삼았다.
초기 종교들은 이러한 농경 사회에서 비롯된 제국의 폭력성에 반기를 들며 시작된다고 한다. 특히 농경국가의 폭력성을 고발했던 구약은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가나안의 도시 국가들로부터 도망 나오면서 농경 사회의 체제 폭력에 정면으로 맞서는 이데올로기를 발전시킬 것" 을 이야기한다. 더불어 이스라엘인들에게 구약은 "도시 생활의 계층화된 압제를 버리고 목자 생활의 자유와 평등을 얻으라" 고 고집하는 약속과도 같았다. 예수는 당대 모순적이고도 폭력적인 지배 체제의 질서에 반기를 드는 혁명가와도 같았다.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 이어지는 순교자들의 죽음은 신앙의 중심화인 동시에 국가 폭력의 잔혹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슬람교 또한 당대 농경 체제가 유발하는 계급 체제에 반기를 들며 제국에 대항한 공동체 지향적인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한 것이 시작이었다.
순교자 숭배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 되었다. 이들이 예수가 유일무이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교회의 한가운데에는 신성한 권능을 지닌 ‘하느님의 친구들’이 있었다. 순교자들은 ‘다른 그리스도’였으며, 그들은 죽기까지 그리스도를 모방함으로써 그리스도를 현재로 가져왔다. [...] 순교는 늘 소수의 항의가 되지만, 순교자들의 폭력적 죽음은 국가의 구조적 폭력과 잔혹성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순교는 늘 종교적일 뿐 아니라 정치적 선택이었으며, 이것은 나중에도 마찬가지다. 제국의 적으로 겨냥당하고 당국과 완전히 비대칭적인 권력 관계를 맺고 있는 이 기독교인들의 죽음은 다른 종류의 충성을 도전적으로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미 로마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한 고귀함을 얻었으며, 순교자들은 자신의 죽음을 억압자의 문간에 갖다놓음으로써 효과적으로 억압자를 악마로 만들었다. 동시에 이 기독교인들은 원한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고, 이것이 그들의 신앙에 새롭게 공격적인 날을 세우게 된다.
기독교는 제국에 반기를 들며 이어진 종교의 전통이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며 '기독교인 황제' 라는 모순적인 존재를 탄생시킨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타자에서 주체가 된 기독교는 제국주의의 특징인 강탈과 폭력에 오염된다. 이단은 이제 더 이상 교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제정분리가 불가능했던 로마에서 다른 길을 가는 이단은 곧 황제에 대한 반기, 더 나아가 팍스 로마나에 대한 위협을 의미했기 때문에 국가적 차원에서 이단이 탄압되기 시작한다. 신앙인들은 제국을 기독교화하고자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겠으나, 현실은 신앙이 제국주의화되었다.
모든 성공한 제국의 이데올로기에 되풀이해 나타날 세 가지 주제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제국의 선과 그것에 반대하는 악한 자들을 대립시키는 이원론적 세계관, 통치자를 신의 대리자로 보는 선민 사상, 세상을 구한다는 사명.
문명은 늘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며, 따라서 국가 폭력은 공공질서에 당연한 것으로 내재화되어 왔을 것이다.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의 변이 또한 이 폭력의 과정이 수반되었고, 그 속에서 불안감을 느낀 이들은 상상의 적을 만들어 타자화시키고 폭력을 행사한다. 끊임없는 <타자에 대한 불안> 은 유대인과 무슬림을 비롯한 '이교도' 에서 '이단' 으로, 이단에서 '타민족' 으로, 주류 문화에 동화되지 못한 '소수 집단' 으로 확장되어 나간다.
농경 국가의 억압은 산업화의 구조적 폭력으로 대체되었다. 더 자비로운 국가 이데올로기가 발전하고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전에는 오직 귀족에게만 가능했던 안락을 누리게 되지만, 일부 정치가들의 최선을 다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건널 수 없는 간극이 늘 부자와 빈자를 갈라놓는다. [...] 산업화는 민족 국가도 낳았다. 농경 제국은 단일 문화를 강제할 기술이 없었다. 근대 이전 왕국의 경계와 영토는 느슨하게 규정할 수 있었을 뿐이며, 군주의 권위는 일련의 중첩된 충성을 통해 존중되었다. 하지만 19세기에 유럽은 중앙 정부가 통치하는 분명하게 규정된 국가로 재구성되었다. 산업 사회는 표준화된 읽고 쓰는 능력, 공통어, 인간 자원의 통일적 통제를 요구했다. 신민은 통치자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통합된 ‘민족’, 즉 ‘상상의 공동체’ —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도 깊은 관련성을 느끼라는 권유를 받는다. — 에 속하게 되었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누가 세계의 고통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인류사에서 종교는 늘 공동체를 향했다. 지배 계급의 논리와 합치되며 폭력과 약탈에 변질되어 오긴 했으나, 그럼에도 본질은 주류 체제에서 소외당한 이들을 끌어안기 위한 것이었다.
역사 속 산업혁명과 함께 수반된 제국주의적 폭력은 국외로 뻗어 나가 타자 착취를 정당화하였고, 이는 특히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대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십자가의 폭력으로 침략당한 라틴 아메리카가 아이러니하게도 가톨릭의 힘으로 해방을 맞이하고, 보수적인 가톨릭이면서도 사회 참여적인 해방 신학이 가장 발달한 곳이라는 점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종교로 가장한 군주의 폭력성을 격파하기 위해 종교를 개인화하는 과정이 근대의 역사였다면, 종교가 주류에서 소외된 타자들을 위해 다시 공동체를 향하는 것이 곧 탈근대의 역사라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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