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첫 발걸음
테이블 위에 집기들을 가득 쏟아놓았다. 앰프, 보조배터리, 흔히들 55 잭이라고 부르는 악기용 케이블, 멀티 이펙터, 전원 연결 케이블, 핀 마이크, 그리고 하모니카 가방.
혼자 나가는데 왜 이렇게 짐이 많은 거지? 빠진 물건은 없는 걸까. 그리 꼼꼼한 성격이 아니기에 오히려 준비할 때 더욱 부담스러워진다. 실제로 공연 때 배치되는 장비의 순서대로 늘어놓고 그 사이사이 연결 커넥터나 케이블을 놓아본다. 그래야 현장에 나갔을 때 빠진 물건을 발견하는 낭패를 보지 않을 수 있으니까.
공연 중 목을 축일 생수 한 병까지 챙기고서야 가방에 차곡차곡 담기 시작했다. 어쨌든 짐을 줄여야 한다. 혼자 움직이는 길이고, 정해진 공연 장소가 있는 것도 아니니 짐은 단출할수록 좋다. 장비를 펼쳐 놓을 때도, 다시 싸 모을 때도 빨라야 한다. 어찌어찌 스포츠가방 하나에 욱여넣고도 앰프랑 하모니카 가방은 별도로 들어야만 했다.
토요일 오후라 노상주차장은 쉬이 자리가 나지 않았다. 몇 바퀴를 돌고 나서야 겨우 빈자리에 주차를 했지만 목적지까지는 제법 걸어야 했다. 주말의 김광석거리는 타지에서 온 관광객들과 산책 나온 시민들로 꽤나 붐빈다. 아직 가는 길인데도 왜 이리 심장이 뛰는지, 두 바퀴 짜리 카트에 앰프와 장비들을 얹고 끌고 가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튀어 보이지 않을까. 부끄러우면서도 벌써부터 저기 저 버스커들 중 한 명이 되어있는 듯한 묘한 고양감이 나쁘지 않았다.
혼자서 버스킹을 나온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많이 떨리는 일이었다. 같이 다니던 팀원들의 존재가 오늘따라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아, 사람은 역시 사회적 동물이구나, 무리 안에 있어야 안정감을 느낀다는 말은 정말이었어. 따위의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보니 김광석길에 도착했다. 가을도 깊어진 계절이라 조금 쌀쌀한 느낌이었지만 골목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화사한 외출복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여러 곳에서 통기타와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좋은 포인트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유동인구가 많을 것, 하지만 흐름을 방해하지 않을 만큼의 공간은 있을 것. 공연자 앞이나 주위에 벤치, 혹은 돌계단 등 사람들이 잠시 앉을 수 있는 객석 역할을 할 지형지물이 있을 것. 다른 공연자들과 소리가 섞이지 않을 만큼 거리가 떨어져 있을 것.
카트를 끌고 인파를 헤치면서 계속 적당한 위치를 찾아 헤매었지만 좋은 포인트라고 할 만한 곳에는 이미 다른 팀들이 거의 다 선점을 하고 공연을 하고 있었다. 한참을 걸어 겨우 빈 벤치를 찾았지만 그곳은 김광석 거리의 거의 끝자락이었고, 벤치 앞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골목일 뿐, 공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오더라도 자리를 잡고 봐 줄 만한 공간은 딱히 없었다. 뭐, 어쩔 수 있나. 내가 앉을자리가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오늘의 버스킹은 하모니카 연주 버스킹. 혼자서 하는 버스킹은 난생처음이다. 벤치 옆에 앰프를 두고, 하모니카 가방 자리를 잡고 MR을 재생할 태블릿을 설치했다. 심장아 그만 나대라, 가슴이 뛰어 대니 숨이 딸려서 하모니카를 불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무슨 용기로 혼자서 나오려고 마음을 먹은 걸까, 누가 봐주기나 할까, 지금이라도 짐 싸서 돌아갈까, 연주하다가 까먹으면 어쩌지? 그럼 무슨 망신이람......
첫 곡은 영화 시네마천국의 메인테마. 나는 평소 하모니카를 불 때 눈을 잘 감는다. 무대에서는 관객들과 아이 컨텍(Eye contect)이 없는 습관이라 별로 좋지 않다고 지적을 받는 편이지만 오늘은 눈을 뜰 래도 뜰 수가 없다. 그저 질끈 눈을 감고 앰프에서 나오는 반주에 맞춰 하모니카만 불어댄다. 사람들의 반응이 무섭다.
한 곡이 끝나고 비로소 실눈을 뜨며 고개를 들어본다. 눈앞의 풍경은 연주를 시작하기 전과 아무런 다름이 없다. 그저 무심히 제 갈길 걸어가는 인파들 뿐. 반응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었다. 반응 따위는 아예 없으니. 아니, 어디 약속 있어서 가시는 길 들이신가요. 그나마 여기 오신 분들은 대부분 관광명소를 즐기러 오신 분들일 텐데 뭐가 그리 바쁘신지요. 앞만 보고 가시네요. 조금 여유 있게 다니시면 안 될까요?
두 번째 곡부터 그나마 눈을 뜨고 고개도 들고 연주해 보려고 시도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너희들은 갈 길 가세요, 난 연주나 하렵니다. 그렇게 고개 숙이고 실눈을 뜬 채로 계속 연주를 이어 나갔다. 서너 곡 하다 보니 배짱도 좀 생기고 체념도 되었는지 첫 곡의 떨림은 잦아들고 혼자만의 연주에 적응되어 갔다. 고개 숙이고 연주하다 보니 반쯤 뜬 눈에 보이는 풍경은 사람들의 신발들 뿐이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는 신발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는 신발들, 혼자서 성큼 거리는 신발, 누가 봐도 커플인 신발 두 쌍, 사이좋게 종종거리는 신발 떼들...
여기 벤치에 앉아 연주하는 나와는 별개의 세상에 사는 사람들처럼 무심하게도 스쳐가는 신발들의 행렬을 훔쳐보며 네 곡 째 인가 다섯 곡 째 인가의 연주를 이어가던 참이었다. 신발 하나가 지나가다 말고 잠시 멈췄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신발코를 돌렸다. 그 짜릿함이란, 마침 연주는 클라이맥스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아드레날린이 솟아나는 것처럼 온 힘을 다해 하모니카를 불었고, 얼마 되지 않아 그 신발코는 다시 방향을 돌려 제 갈길을 가 버렸다.
그 신발이 멈춰 준 시간은 마디로 치면 8~9마디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고, 나는 여전히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 신발의 주인이 젊은 청년이었는지 나이 든 분이었는지, 아니면 어린 여학생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잠시의 순간에서 나는 조명이 화려한 준비된 무대에서의 박수소리보다 더 값지고 짜릿한 환희를 느꼈다. 내 음악을 들어줄 준비가 된 관객의 반응이 아니다. 나와는 무관하고 아무런 관심도 없던, 그저 지나가던 사람의 발길을 단 한 순간만이라도 붙잡아 두었다. 그런 힘을 내 연주에서도 낼 수 있구나, 오롯이 나 혼자만의 연주로. 내 속에만 가득한 이 감정을 타인에게 만 분의 일이라도 전달해 볼 수 있구나. 아울러 잠시 발걸음을 멈춰 준 그 신발 주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가득 넘쳐흘렀다. 뿌듯한 감동이 느껴졌다고 하면 너무 거창한 과장이려나.
기분 좋은 설렘 덕분이었는지 다음 곡부터는 조금 더 여유를 찾을 수 있었고, 더불어 연주도 안정을 좀 찾은 듯했다. 고개도 들 수 있고 지나가는 행인들을 쳐다보면서 연주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멈춰 서서 잠시 들어봐 주는 사람들도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한 곡을 온전히 들어주는 분들도, 여러 곡을 들어주시는 분들도 만나고 박수소리로 화답해 주시는 분들도 만나면서 그날의 버스킹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 후로 많은 버스킹을 해 왔다. 어떤 날에는 분에 넘치는 사람들의 박수를 받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혼자만의 연주를 하기도 했다. 거리공연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부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희일비하지 않고 또다시 짐을 싸서 거리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날의 기억 덕분인 듯하다.
한 사람의 걸음을 잠시나마 멈춰 세울 수 있었던 내 연주에 대한 자신감과, 그래야 할 어떤 이유도 없지만 내 음악을 듣기 위해 잠시 멈춰준 그 신발코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그날 내 첫 솔로 버스킹의 공연료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질 내 버스킹의 원동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