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킹과의 첫 만남

어느 날 길거리에서 만난 음유시인들

by 다크엘

2008년 3월의 일이었다. 통기타 동호회에서 알게 된 B가 말을 걸어왔다.


“닥쌤, 두번째 달 바드라는 그룹 아세요? 저 그분들 팬인데요, 그분들이 대구에 버스킹을 하러 온대요”


그때 나는 통기타 동호회에서 초급 기타 강습을 맡고 있었고, B는 그 수강생이었다. 그때도 지금의 필명과 같은 닉네임을 쓰고 있었기에 수강생들은 간편하게 ‘닥쌤’이라는 뭔가 꼬꼬닭이 생각나는 호칭으로 나를 불렀다. 어쨌든 '쌤'이라고 불리는 입장 상 뭔가 강습생보다 많은 것을 알고 척척 가르쳐주었으면 좋으련만 (설사 그게 내가 가르치는 내용과는 조금 떨어져 있더라도...) 솔직히 저 팀의 이름은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버스킹이라는 단어 또한 생경하기만 했다.


애당초 B는 상당한 인디음악 팬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주류 음악들만 들어온 나로서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여러 인디 뮤지션들의 음악을 가져와서는 연주할 수 있게 가르쳐 달라고 눈을 빛내는 B 때문에 난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곡들은 악보를 구하기도 어렵기에 끙끙거리며 낯선 곡을 들어가며 코드를 따거나 음감 좋은 동생들에게 채보를 부탁해 수업해주곤 했다. 물론 나중에 보면 그저 나만 모르는 곡이었을 뿐, 인디 씬에선 유명한 곡들이었고, 그런 난감함은 때론 새로운 음악을 접하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곤 했다.


이번에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내게 B는 열띤 어조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두번째달」이라는 팀이 있고, 드라마 ‘아일랜드’, ‘궁’ 등에서 OST를 맡기도 했다. 그 팀 멤버들 중 특히 아이리쉬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했는데 그게 「두번째달 Irish Trad project 바드」(이하 바드)다. 그들이 여러 도시를 다니며 호프집 투어 콘서트 및 버스킹을 하는데 이번에 대구에 온다더라. 아, 버스킹은 거리에서 공연하는 걸 말한다. 무대를 꾸미거나 표를 팔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발길 닿는 대로 다니다 적당한 곳에서 판을 펼치고 연주를 하는 거다. 등등...... 그래서, 같이 가실래요?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 잠시 허덕이다가 마지막 말을 놓쳤다.


“응? 어디를 가?”

“바드 버스킹 구경하러요, 저 정말 그 팀 좋아해요.”

“그... 그래? 음...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아일랜드 음악은 내가 잘 몰라서, 근데 그 팀 곡 중 제일 유명한 게 뭐야?”

“음... 사람들이 알 만한 곡이요? 뭐가 있을까... 궁 드라마에 나온 「얼음연못」 이라는 곡도 많이들 알고요. 아, 제일 유명한 건 그거겠다.”

“그거 라니, 그게 뭐야?”

“쌤도 들으면 아실 걸요? 라라라라라라~ 널 좋아~한다고~”

“...... 포카리스웨트 CF?”


어찌어찌해서 바드의 거리공연 구경꾼 일행이 결성되었다. B와 나, 기타 치는 J, 그리고 두번째달 팬클럽에서 같이 활동한다는 여성분 한 분, 도합 4명이었다.


바드의 출몰지(?)로 예정된 곳은 가장 번화한 시내 한복판 D 백화점 앞이었다. 나는 J와 함께 D 백화점 앞으로 먼저 가 있었고, B 일행은 대구역에서부터 바드 일행과 같이 오기로 했었다. 어느 정도 기다렸을까, 저만치서 악기 가방을 짊어진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백화점 벽 앞에 도착한 바드 일행들은 하나씩 악기들을 풀어놓고 자리를 잡았다. 아담한 체구의 여자분은 아코디언을 메고, 긴 머리의 남자분은 밴조를, 다른 남자분들은 각기 기타와 까혼을 세팅했다. 잠시의 조율 후 그들은 연주를 시작했다. 아이리쉬풍의 흥겨운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마이크나 앰프는 없었다. 그들은 팀 소개도, 호객 행위도 없이 그저 여상스럽게 악기들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리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러운, 하지만 잘 정돈된 즐거운 리듬의 연주였다. 보컬도 없는 이국적인 악기들의 연주곡들은 낯선 매력으로 다가왔다.


앰프나 스피커가 없는 어쿠스틱 한 악기의 연주라 소리가 멀리까지 퍼져 나가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다가오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그저 선율을 듣고 잠시 멈춰 서서 구경하다가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사람들을 끌어모으거나 왁자지껄하지도 않은 소박한 느낌의 공연. 하지만 자연스레 그들의 공연은 길거리에 녹아들었다. 아니, 그들의 공연이 길거리에 녹아드는 게 아니라 주위 거리가 그들의 연주에 따라 다른 색깔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반경은 넓지 않았지만 조그맣게 퍼져나가는 낯선 아일랜드 가락에 삭막했던 시내 한 귀퉁이가 어느 여행 다큐멘터리에선가 보았을 법한 외국 거리처럼 느껴졌다. 묘한 경험이었다.


잠시 멈췄다가 스쳐 지나가는 이들을 제외하자면 공연을 열심히 봐준 이들은 우리 일행 4명이 전부였고, 그들이 공연 전에 앞에 깔아 둔 CD들이 팔리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버스킹을 하는 음악인들은 팁박스를 놓거나 자신들의 앨범(대부분 홈레코딩이나 소규모 스튜디오를 이용해서 만든다.)을 판매하면서 홍보를 한다고 한다.


얼추 한 시간 정도 연주를 듣고 있을 때, 그들은 처음 연주를 시작할 때처럼 별말 없이 공연을 마쳤고, 다시 악기를 정리하고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B에게 뭔가를 물었다. B와 그 일행은 이미 바드의 지방 버스킹과 클럽 공연들을 몇 번 따라다녀 안면이 있는 사이라고 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근처에 요기를 할 만한 호프집의 위치를 물어봤고, 우리는 시내의 호프골목 위치를 말해주었다.


이동하는 일행은 악기를 짊어진 바드 멤버 4명과 어느 정도 떨어져서 쫓아가는 우리 4명이 전부였다. 단출한 무리, 팀의 멤버 수보다 많지 않은 팬이라니. 이 특이한 행렬의 모습에 잠시 웃음이 났다. 시간은 오후 5시를 막 지난 때. 아직 호프집에 손님이 있거나 할 시간은 아니었다. 그들은 호프집마다 들어가서 여기서 악기 연주를 해도 괜찮을지 물어보곤 했지만 대부분의 가게에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만도 했다. 따라다니는 나조차도 펍에서 연주를 한다는 게 어떤 광경인지 쉬이 상상이 되지 않았으니 점주들이야 오죽할까.


여섯 군데인가 일곱 군데인가의 가게에서 거절당한 후, 겨우 허락을 받은 곳은 1층과 2층을 같이 쓰는 세계맥주 가게였고, 안내된 곳은 실내계단으로 연결된 2층이었다. 이른 시간이라 2층은 아무도 없었고, (그래서 주인은 2층으로 안내했었나 보다.) 바드 멤버 4명은 한 귀퉁이 테이블을 차지하고는 맥주와 안주 등을 주문했다. 우리 4명은 소심하게 두 테이블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느 정도 요기를 마친 그들은 또다시 별말 없이 악기를 꺼내곤 맥주잔과 안주들이 놓여있는 앉은자리 그대로 연주를 시작했다. 공연자는 4명, 관객도 4명, 어느 늦은 밤엔 조명 속에서 왁자지껄 했었을 펍 2층은 지금은 단지 우리들 뿐이었지만 조금 낯설어 보이는 이 비일상적인 장면을 보며 나는 묘한 설렘을 느꼈다. 익숙한 일상의 장소와 시간이 아닌 어느 이국의 지붕 낮은 펍 어두운 조명 아래 흥겨운 가락과 부딪히는 맥주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들의 연주에선 자유로움과 얽매이지 않는 바람이 느껴졌다. 저들도 분명 앨범을 발매하고 음악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니만치 오늘의 거리공연과 펍 순회 등은 자신들의 음악을 알리고 홍보하는 여정이었을 테지만 나에게 그들의 모습은 자신들의 음악을 일상으로 즐기는 악사들의 모습이었다. 바드(BARD).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연주나 노래, 시를 읊는 중세 음유시인을 일컫는 단어. 그들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멜로디가 나왔다. 빠르고 경쾌하며 살짝 익살스러운 듯한 느낌의 멜로디. 얼마 전 잠시 스쳐간 영화 소개의 배경음악이었던 듯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황정민, 전지현이 주연했던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라는 영화의 삽입곡이었다. 제목은 「지구를 지켜주세요」. 나는 지금도 이 곡을 좋아한다. 그날의 연주 영상은 내 폰에 아직도 남아 가끔 재생되곤 한다.


우리들만의 펍 공연이 끝난 뒤, 그들과 잠시 가벼운 인사를 나누었고, CD를 사서 사인을 받는 것으로 바드와의 짧은 만남은 끝이 났다. 시간이 꽤나 지났지만 내 앨범 책장에는 그날의 사인 CD 재킷이 아직도 알맹이 없이 남아있다. 알맹이는 모든 CD들이 늘 그렇듯이 어딘가 다른 케이스 안에서 언젠가 발견될 것이다.


그 후로 많은 버스킹을 보아 왔고, 또 직접 버스킹을 해 오기도 했다. 낯설던 버스킹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터인가 익숙하게 주변에서 들려오게 되었고, 조금만 발품을 팔면 거리에서 공연 한두 개 정도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요즘의 버스킹은 그 당시와는 조금 달라진 듯하다. 고출력의 앰프와 거창한 음향 장비, 조명시설들이 가득해진, 더 이상 버스킹이라고 부르기보단 그저 야외 특설공연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 대단한 무대들을 보면서 그저 한 번씩 그날의 바드의 모습을 그리워한다.


나 또한 앰프의 출력과 관객의 유무에서 자유롭지 못한 무대를 꾸려가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그저 악기 하나 단출하게 메고 떠나는 음유시인의 모습을 아직도 꿈꾸곤 한다. 쉬이 그 꿈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십수 년째 늘지 않는 내 실력 때문일까, 아니면 아직도 무언가에 얽매이고 있는 내 체면과 타성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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