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훤칠하고 심한 경상도 억양을 구사하는 연수팀 선배의 안내가 끝나자 나는 드디어 사회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되었다. 부친의 권유에 따라 공무원이 되고자 행정학과에 입학하고 고시 준비를 하였으나, 공무원이 된 선배들의 답답하고 지루한 일상을 목격한 나는 그들과 다른 인생을 살기로 결심하고 대기업 공채 준비로 선회한지 1년, 드디어 졸업하기 직전에 대한민국 최고의 대기업에서 합격통지를 받았다.
지구온난화로 따뜻한 겨울이 된 요즘과 달리, 90년대 초반의 겨울은 오지게 추웠다. 그 겨울 두 달동안을 이천의 연수원과 서울 본사에서 동기생들과 합숙을 하며 회사에서 필요한 다양한 지식 기술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그 와중에 연수팀 선배들의 능수능란한 교육 진행이 신기했고 원래 교사가 꿈이었던 나는 기업교육 담당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꿈꾸게 되었다.
1년여 신입사원 생활을 어찌어찌 지내다보니 원하는대로 다음해 1월 본사 연수팀에 발령을 받았다. 첫번째 미션은 전사원 서비스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운용...입사 2년차 초보 사원이 교육 프로그램을 어찌 만들겠는가? 그래서 그룹 연수원의 도움을 받아 고생고생하여 전사원 교육을 다듬어 런치하게되었다. 그렇게 1년넘게 100차수 넘게 강의도 하고 신규 내용을 수정 보완도 하는 등, 나름의 역량을 키워나갔는데...그해 겨울(3년차되던 해) 큰 일이 나고야 말았다.
바로 직전 해까지 안정적으로 전사원 프로그램 강의를 맡고있던 내게, 연수팀장님이 일손이 부족하다며 신입사원 과정 운영까지 공동으로 맡으라고 지시를 하셨다. 뭐, 괜찮겠지 하면서 덥썩 일을 받고 1주일 정도 지났을까? 아니나다를까 그동안 순조롭게만 진행되는 일들이 여기저기 펑크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해를 돕기위해 두 교육을 간단히 비교하자면, 전사원 교육의 경우 1차수 인원이 20여명 내외이고 연간으로 매주 루틴하게 돌아가는 직무교육인 반면, 신입사원 교육은 1차수 인원이 30명~50명 정도 되는 교육이었고, 차수마다 CEO께서 직접 특강을 하시는 중요한 교육이었다.
어쨋건 두 과정이 따로따로 진행되는 주간은 상관없었지만, 동시에 겹치는 주간이 되면 눈코뜰 새없이 바쁠 수밖에 없었다. 사건 당일은 두 교육이 겹치는 주간이었다. 나는 그룹 연수원에서 전사원 교육을 진행하며, 신입사원들이 탄 버스가 연수원으로 들어오길 체크하고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신입사원 버스가 나타나질 않는 것이었다. 10시가 다 되었을 무렵 연수 진행요원으로 차출된 대리님이 나에게 급하게 전화하여 CEO께서 거의 도착하셨는데 왜 신입사원이 탄 버스는 안오는가 재차 물어보았다.
3 시간 내내 전사원 교육을 진행하면서 쉬는 시간마다 계속 버스 회사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하고있었던 나는 땀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하였다. 당시에는 핸드폰이 없었던 때라 유선으로 연락을 취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분명히 전날 예약했던 버스가 연락두절이 되어 버렸으니...환장할 노릇이었다. 벌써 사장님은 옆 강의장에 도착하셨다고 하여 일단 인사를 드리러갔다. 반갑게 악수를 하시며 왜 신입사원들이 없는가하고 질문을 하셨는데... 나를 포함한 모든 진행팀원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속터지는 마음에 전사원 교육 강의를 우선 연수원 교수님 한 분에게 몇 시간 땜방 처리를 부탁하고 모든 진행요원들이 매달려 버스 회사로 계속 연락을 해댔다.
1시간이 지나서야 답이 왔는데...버스회사에서 상황을 파악해보니 황당하게도 성수동에서 출발해야할 버스가 다른 곳에서 기다리다 1시간동안 아무도 안나타나자 그냥 차고로 떠나버렸다 했다. 헐! 머릿속은 하애지고, 가슴은 두방망이질 쳤으며 거친 입술은 침을 축여도축여도 말라만 갔다. 그 기사에게 버스회사가 다시 출발명령을 내렸으나 기사가 화를 내며 거부하고있다고 해서, 급히 다른 기사를 섭외해서 간신히 신입사원들을 태우고 출발하였다고 추가 연락이 왔다.
시간이 계속 늦어지자 연수원장님까지 급히 나서서 사장님께 연수원 전반에 대한 브리핑과 경영현황에 대한 담소 등을 진행하였으나, 이미 화가 날대로 나신 사장님은 연수팀장님(지금은 고인이 되심)을 비롯하여 임원들을 질책하시는 등 겉잡을 수없이 사태의 파장은 커져만 갔다. 결국 이 사건 이후, 나는 징계 위원회에 회부되는 한편, 그해 성과급에서 감봉조치를 받는 등 엄청나게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되었다.
이 사건 이후, 나는 심각한 강박증에 시달리게 되어, 무슨 일을 하든 3번 이상 확인하지않으면 안심이 안되었고, 늘 주변정리를 완벽하게 정리하지않으면 손이 덜덜 떨리는 이상한 틱장애 같은 병에 걸리게 되었다. 원래 나는 약간은 털털한 성격이었으나 충격적인 이 사건 하나가 나의 인생 습관뿐 아니라 성격까지도 180도로 바꾸어 버린 셈이다.
지금도 가끔, 연수원에서 교육생들이 아무도 오지않아 하염없이 운동장을 바라보고있는 나의 젊은 날이 꿈에 나타나 몸서리치곤 한다. 부하사원들에게 늘 체크리스트를 몸에 지니고 일을 하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나의 첫번째 에피소드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젊은 날의 나보다 훨씬 역량이 뛰어나서 굳이 강조를 안해도 거의 실수가 없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