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을 교육지기로 살아보니 #2

-“대표님, 마이크 켜져 있어요!”

by 엉뚱이

90년대 기업교육 트렌드 중 하나는 CS(Customer Satisfaction, 고객만족) 교육이었다. 1994년이었던가... 그 해는 몇십 년간 겪어보지 못했던 살인 더위의 해였는데, 하필 폭염이 절정에 이르렀던 8월 초, 고위간부 대상으로 CS 외부 특강을 진행하게 되었다.


초빙 강사는 당시 TV도 곧잘 출연하시고 베스트셀러도 몇 권 출판하신 점잖은 영국 신사 풍으로, 요즘 같으면 조회수 몇 백만의 인기 유튜버급이었는데, 어쨌건 출강 섭외를 최소 2달 전에 해야 할 정도로 유명하신 분이었다.


주제는 회사 내부 고객 만족이 제대로 되어야 외부 고객 만족을 이끌 수 있다는, 당시로서는 다소 생소한 내용이었다. 지금이야 외부고객이니 내부고객이니 하는 개념을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90년대 초만 해도 고객이라는 기본 개념조차 제대로 인지가 안된 상태에서 회사의 직원도 고객의 일부(내부 고객)라는 말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사고의 전환이었다.


내용도 신선했고, 교육 대상자가 차장 이상의 간부급 교육이라 그런지 엄청난 폭염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매우 진지하였다. 교육전에 강사는 자연스러운 진행을 위하여 특별히 핸드 마이크 대신 핀 마이크를 요구하였는데, 과연 교육 내내 열정적인 목소리와 함께 현란하게 휘두르는 바디랭귀지는 모든 참가자들을 졸도(?) 직전의 경지로 이끌고 갔다.


마침내 열광적인 기립 박수로 전반부 강의가 끝났다. 1부 마지막에 소개한 국내 OO 병원의 청소부 할아버지가 고객들을 위하여 정성어린 서비스를 베풀었다는 감동적인 에피소드가 진하게 여운을 남겨서 그런지 교육생들은 짧은 휴식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참가자들의 이러한 진지한 모습에 교육담당만이 느낄 수 있는 뿌듯함을 느끼며 나는 차를 한 잔 끓여가지고 강의 준비실로 강사님을 뵈러 들어갔다.






강의 준비실 소파에 앉아있던 강사님은 원래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인지 입고있던 와이셔츠가 푹 젖어 있었고, 강풍으로 맞춰진 에어컨 바람에도 연신 부채질을 해대며 헉헉대고 있었다. 아차 싶어,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뜨거운 차 대신에 다시 얼음을 채운 음료수로 바꾸어 다시 들어갔는데...


...참사는 그때 벌어졌다.


나를 보자마자 강사님은 대뜸 큰 소리로...


“아, 졸라 덥네... 왜 이렇게 교육장 에어컨이 약해!”... 이러는 것이었다.


헐~ 이게 무슨 말임?.


갑작스러운 강사님의 비속어 남발에 나는 귀를 의심하는 한편, 혹시나 싶어 재빠르게 강사님의 옷깃에 여며둔 핀 마이크의 상태에 눈의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얄궂게도 그 핀 마이크라는 녀석은 너무도 생생하게 초록색을 깜박거리며 그 모든 상황을 교육장에 있는 몇 백 와트짜리의 묵직한 앰프로 무선 중계를 하고 있었다.


그걸 모르는 채 강사님의 두 번째 멘트가 이어졌다.


“ 할튼 뭐든지 교육은 춥고 배고프게 마련이야... 아마 저기 앉아있는 교육생들 절반은 더워가지고 딴 생각하고 있을 거야... 이럴 때는 섹시한 여자 이야기를 좀 해야 씨알이 먹히는데 말이야...안그래요?”


...하면서 혼자 박수를 치고 웃어대는 것이었다.


당황한 나는 어쩔줄 모르며,

“어어... 저... 대표님, 저기... 저, 마이크가... 마이크가 켜져 있는 것 같아요” 라고 간신히 떠듬거렸다.


그러자 흠칫, 옷깃에 박혀있는 핀 마이크를 잠시 노려보던 강사님의 얼굴이 점차 흑색으로 변해갔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3평 남짓한 강의 준비실은 옆방의 교육장보다 에어컨 바람이 훨씬 더 쌩쌩했지만, 강사님의 펑퍼짐한 얼굴과 몇 올 남지않은 대머리에는 주체할 수 없는 식은땀이 주르륵주르륵 흘러내렸고, 동시에 나의 등에도 식은땀이 흘렀내렸다.


그다음 시간의 교육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전 시간에 열광적으로 몰입하였던 교육 참가자들 대다수가 갑자기 콧구멍을 파고 있거나 창밖을 내다보는 등 딴짓 요소가 10배는 증가한 것만 기억이 난다. 약속된 시간이 끝나자마자 아까보다 10년은 더 늙어 보이는 강사가 줄행랑치는 모습과 함께... 내 머릿속에 언행일치라는 네 글자를 뚜렷하게 남기고 말이다..






J.M.Kouzes and B.Z.Posner(2007)는 4개 대륙(미국/아시아/유럽/오스트레일리아)의 관리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직원들이 평소 바라는 리더의
특성에 대해서 매년 조사를 하는데, 수십 가지의 리더의 덕목 중 1위는 늘 Honesty가 차지하였다. (The Leadership Challenge. p.30-31).


나는 이러한 ‘정직함’이라는 덕목의 범주 안에는 앞서 언급한 언행일치의 의미가 포함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일관성이 있고, 미래 행동 역시 예측이 가능하다는 뜻이며, 그런 면에서 타인에게 신뢰감을 강력하게 줄 수있다.


앞서 언급한 특강 강사는 비록 장소가 달랐어도 당연히 자기가 발설하는 말의 내용과 행동이 일치되었어야 한다. 게다가 그가 열정적으로 부르짖고 갔던 ‘고객만족’이라는 내용은 특히나 언행과 밀접하게 연계된 강의 주제가 아닌가?


어디 강사뿐이랴... 회사의 리더 또한 그러하고, 나아가 나라를 이끌어가는 모든 정치인들과 공직자들 역시 이 범주에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 요즘처럼 선거철에 많이 볼 수있는 철새같은 정치인들의 예측불허의 갈짓자 행보들은 대한민국의 유권자를 바보로 보는 것은 아닌지 심각한 의심이 들 정도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 밤 나도 자유롭지 못하다. 어제 막둥이와 함께 저녁에 놀아주기로 하였는데, 하루 종일 독서하고 글 쓰는 것 때문에 다소 피곤하여 내일 놀아주마...라고 말했다가, 추상같은 마누라님의 불호령이 떨어진 것이다.


“당신이나 잘하셔... 시답지 않게 뭔 글을 쓴답시고 애한테 거짓말이나 하고 말이야...”


으윽~~


- 용모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