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가 그리워진다

-아날로그의 德

by 엉뚱이

필자가 근무하는 부서는 회사 내 교육을 담당하는 곳이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모든 집합교육이 중지되자, 우리 팀에서는 상당수 교육 컨텐츠들을 언택트 과정으로 재포장하고있는 중이다.


그런데, 정작 책임자인 필자는 이 상황이 마뜩치않다. 아무리 코로나19 사태로 부득이한 상황이지만, 화상으로 스트리밍을 하든, 녹화를 떠서 SNS로 보내든, 기존의 온라인이나 유튜브를 틀어놓고 하든지 간에...뭔가 중요한 것이 하나가 빠진 것 같다. 뭘까...




몇 일전 독서토론 모임을 갔다. 그런데, 몇몇은 e-Book으로 책을 읽고 왔다고 했다. 흠...e-Book이라. 알고보니 집에 책이 넘쳐, 짤막한 스토리의 책은 그냥 e-Book을 많이 활용한다고 한다. 그것도 일리가 있긴하네.


집에 오니 아내가 거실에서 음악을 트는데, CD가 아니라 USB에 몇 천곡의 MP3를 담아 튼다. 옛날 같았으면 레코드판이 수천 개가 필요할 텐데 저 조그만 USB 하나면 음악감상 준비 끝이니...참 편리하긴 하네.


새벽 독서로 토마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집어들고 열심히 읽고있는데, 1848년 혁명이 가물가물거려 네이버 검색을 했더니 위키백과에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뭔가 다 빠르고 편리하고 안전하긴 한데...하여튼 뭔가 아쉽다.




예전에 부모님께서 세계대백과사전 한 질을 사주신 적이 있었다. 주제별로 되어있었고 컬러 화보도 꽤 있어서 어린이들에게는 꽤 인기가 있었다. 집에 있으면 늘 백과사전을 끼고 살았고, 굳이 찾아보려고할만한 주제가 없었는데도 아무 페이지나 펼쳐 마구 읽었다.


그러다보니 초등학교 졸업할 때쯤 되니까 시사상식을 비롯해서 여러 분야에 꽤 잡합박식(?) 해져있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당시 읽었던 백과사전에 담긴 지식이 인생의 엄청난 자양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지금 아이들에게는 거대한 세계대백과사전 수십권짜리를 갖다주고 읽으라 하면 일단 기절 한 번 하고 새책 그대로 묵혔다가 고물상에 팔아먹을 것이다. 알고싶은 게 있으면 네이버나 유투브에서 찾으면 그만인데...


고등학교 시절에는 듣고싶은 음악이 있으면 동네 레코드점에 가서 얼마간의 수수료를 주고 공테이프에 녹음해달라고 하였다. 테이프가 닳도록 Mymy를 끼고 공부했던 기억...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듣고싶은 음악을 멜론이나 유투브에서 찾는다. 클릭 한 번으로...ㅎ


지금 쓰고있는 이 글도 예전엔 빨간 원고지를 사서 썼다 지우다를 반복하다가 찢어버리기도 하면서 완성을 했을텐데...지금은 브런치 클라우드의 자체 문서편집기능이 있어서 어느 곳 어느 시점을 막론하고 불러 쓰고 수정하면 그만이다.




하여튼, '고생'이 빠졌다.


사람을 찾는 고생, 자료를 찾는 고생, 책과 음악을 찾는 고생, 쓰는 고생...


인지심리학에서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에 대한 기억을 일화기억(Episodic Memory)으로 분류하고, 단순히 사실정보만을 기억하는 의미기억보다 장기기억에 잘 저장이 된다고 한다.


" X라는 자료를 찾아 국회 도서관에 가서 고생고생하여 결국 찾아내고야 말았다"는 스토리가 있기에 X라는 자료의 기억은 평생 잊혀지지않는 것이다.


그래서 마뜩치가 않은 것이다. 언택트 교육...

뭔가, 학습자가 고생하는 것이 별로 없는 것이다. 학습장에서 논쟁하고 떠들고, 정보를 주고받고 낄낄거리고...시간에 쫒겨 압박받으면서 팀플하고...그러면서 성취한...

그렇게 고생고생하면서 획득된 지식이 아닌 것이다.


그냥 머릿속에 쉽게 들어왔다가...


그렇게 쉽게 나갈 것 같아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