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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뚱이 Jan 28. 2022

나잘나잘 리더; 나만 잘 먹고 나만 잘 사는 리더

존경받는 리더의 흔한 실수 <4화>

 CEO로부터 연초에 그룹 방향성이 내려왔다. 지시사항은 변화와 혁신 조직문화 원년 만들기…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혁신 문화 정착에 대한 지시다.


 CEO는 창업주의 2세로 기존의 근면성실, 융화 단결 같은 소위 70년대 근대화 냄새가 풍기는 기업 가치보다는, 좀 더 마켓 지향적이고 생동감이 넘치는 가치를 원하는 듯하였다. 기조실 C 상무와 HR실의 K 실장, 그리고 홍보 라인의 H 상무가 모였다.  그런데 회의가 약간 변질되어, 방향성에 대한 심도 있는 내용 검토보다는 각 조직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갈등 양상의 장이 되어버렸다.


변화와 혁신이라는 주제는 회사 모든 조직에 공통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조실에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는 K 실장의 말에, 기조실 C 상무는 조직문화 관리는 HR실의 고유 권한이라며 맞받았으며, 홍보라인의 H 상무는 자신의 업무가 주로 대외 업무이므로 나중에 프로젝트의 결과만 갖다 달라고 하였다.


 결국, 첫 회의는 별 성과 없이 끝난 듯했고, 바쁜 연초 일정에 유야무야 1분기가 지나버린 어느 날, CEO로부터 중간보고 지시가 내려왔다. 화들짝 놀란 C 상무는 CEO에게, HR 실이 조직문화 캠페인 및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HR실의 K 실장은 협의도 안한채 보고를 한 C 상무에게 다소 서운함을 느꼈지만, 어쨌건 주도적으로 일을 시작하였다.  4개월 만에 조직진단과 리더십 진단, 조직문화 캠페인과 전사 교육 등을 성공리에 끝내고, 결과 보고를 준비하게 된 K 실장…  CEO에게 보고하기 전, 보고서를 C 상무와 H 상무에게 공유를 했다.


 보고 예정 날, 아니 이게 웬일인가? 기조실에서 HR실의 결과 보고서를 다소 수정하여 먼저 CEO에게 보고를 하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CEO는 그 내용에 흡족해하며 기조실장에게 수고했다고 칭찬과 함께 백만 원 상당의 금일봉까지 전달하였다는 것이다.


 K 실장은 C 상무에게 항의를 하였지만, C 상무는 미안하다고 되었다면서 CEO가 갑자기 물어봐 어쩔 수 없이 급하게 보고 드렸다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중국인이 번다고 하였던가… K 실장은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으로 전화기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지나치게 부풀려진 상황문일 수 있는데, 사실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조직 간의 밥그릇 챙기기와 눈치 경쟁, 이로 인한 사일로 현상 발생 등, 상기 상황과 유사한 장면들이 많이 목격된다.


 CEO는 이에 대하여 부서 이기주의 타파니 조직 시너지 창출이니 하면서 부정적 조직 문제들을 해결하라고 압박하지만, 이러한 지시는 실질적 효과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조직은 일종의 살아있는 유기체이므로 이기적인 생존 본능이 이타적인 시너지 지시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조직은 다른 조직과 끊임없이 이해관계를 다투며, 가급적 모든 이슈에서 자신의 입장을 유리하게 내세우려 한다. 필요하면 다른 조직을 없애거나 자신의 영향력 밑으로 합병하기도 한다. CEO 입장에서 보게 되면 답답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을 부정적으로만 보거나 외면하려는 리더는 단순한 사고의 소유자이거나 나이브한 수준의 리더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오랜 경험을 가진 리더는 ‘조직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한다. 또, 이러한 상황을 잘 관찰하고 활용한다. 그는 조율자의 입장에서 조직 상호 간의 관계를 이해하고 서로 협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과정과 성과에 대하여 피드백할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가치가 등장한다. 바로 ‘공정성’의 문제이다.    






 요즘 대한민국은 공정성에 대하여 MZ 세대를 비롯한 젊은이들의 저항적 목소리가 거세다. 2018년 평창 올림픽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논란과 2020년 인천 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논란 등 MZ 세대들이 기성 사회의 공정성에 대하여 도전을 하고 지적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런 이슈들의 핵심은 공정성의 세 가지 측면(분배 공정성, 절차적 공정성, 상호작용 공정성) 중 주로 절차적 공정성에 대한 내용들이다.


 분배의 공정성은 토마 피케티 등 대학자들이 지속적으로 논란을 지피는 거대 담론 이슈이고, MZ 세대의 부모뻘인 X 세대들의 주요 관심사항이었다고 하면, 절차의 공정성은 에라 이렇게 된 바에야 형식이라도 공정해야지… 라는 ‘게임 룰’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공정성 이슈가 MZ 세대만의 전유물인가? 그 이전의 X 세대와 산업화 세대 등은 공정성에 대해 민감하지 않았단 말인가? 아니다. 산업화 세대나 X 세대들도 당연히 공정성에 대해서는 민감했을 것이다. 다만 당시 권위주의적 사회 분위기나 SSKK(시키면 시키는 데로 하고 까라면 까라는)식의 조직문화 속에서 숨죽여 참았을 뿐이다.


 그래서, MZ 세대들이 공정성 인식이 특히 예민하다기보다는 공정하지 못한 일에 대해 적극 소리 높여 '말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최근의 공정성 이슈가 두드러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공정성 문제는 개인들이나 세대 전체의 특성이라기보다 사회 분위기나 조직 문화의 수용성 문제인 듯하다. 어쨌건 이러한 조직 공정성을 어떻게 추구하느냐는 리더의 큰 책무이자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재미있는 것은 공정성 문제가 인간들만의 사회적 문제라 여기기 쉽지만, 사실 진화론적으로 볼 때 동물의 본능적 문제이다.  미국 에모리 대학(Emory University)의 영장류 학자 세라 브로스넌(Sarah F. Brosnan)과 프란스 드발(Frans de Waal)은 카푸친 원숭이(흰목꼬리원숭이)에게 공정함에 관련된 실험을 하였다.


 카푸친 원숭이들은 토큰(화폐의 개념)을 주고 이들이 선호하는 먹이를 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토큰을 지불하도록 훈련을 시켰다. 먹이는 두 가지, 즉 수분만 가득하고 맛이 없는 ‘오이’와 달콤하고 맛있는 ‘포도’였는데, 일반적으로 원숭이들은 두 가지 먹이 중 포도를 아주 선호한다.



 원숭이들을 두 마리씩 짝지어 한 마리에게는 오이, 다른 한 마리에게는 포도를 토큰과 교환하자, 포도 대신 오이를 받은 원숭이들이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거나(심지어는 오이를 조련사에게 던지는 일도 발생) 아예 먹이 자체를 거부하였다.


 보통의 경우 오이를 받고서 토큰을 지불하지 않는 경우(즉, 토큰 지불 행위를 잊어버리는 경우)는 대략 5% 정도였는데, 자기는 오이를 받고 옆 원숭이는 포도를 받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즉, 자신이 불공정하게 대우받는 것을 인지하는 경우), 거부율이 높게는 80%까지 상승하였다.


 이러한 실험에서 저자들은 원숭이들이 정당한 노력에 대해 다른 원숭이가 더 나은 대접을 받게 되면 거래에 참가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경향, 즉 불공정성의 심리를 인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실험은 조류(까마귀 등)나 개, 코끼리, 침팬지 등을 대상으로도 확대 실험이 진행되었는데, 대개의 경우 상기 실험과 같은 결론이 생물학자들의 연구로 계속 입증되고 있다.


 드 발 교수는 이 현상에 대해 “생물의 뇌의 매우 오래된 부분이 도덕적 결정에 관여한다’는 신경학적 증거로 입증되었다고 밝혔다. 아마도 이러한 공정성 기제의 밑바탕에는 개체들의 ‘자존심’이나 ‘무시감에 대한 반발’ 등이 있지 않을까 추론을 해본다.



 



 이러한 공정성에 관한 영장류 실험과 비슷한 실험이 인간을 대상으로 1980년대에 수행되었다.  독일의 경제학자 베르너 귀스는 ‘최후통첩 게임’이라는 것을 고안해 내었는데, 이는 전혀 모르는 사람과 한 조를 이루어 10만 원을 나눠가지는 게임이었다.


 게임 규칙은 단 두 가지였다. 즉, 10만 원을 A라는 사람(제안자 역할)에게 주고 다른 한 사람 B에게 얼마를 나누어줄 것인가 결정하라는 것이고, 만약 B가 A의 금액 제안이 마음에 안 들어 거절하면 실험자가 A, B 모두에게서 10만 원을 다시 회수하는 것이었다.  


 즉, A와 B가 적당한 금액을 나누어 가지면 제안한 금액만큼 이익이 되지만 제안을 거절하여 소위 ‘파토’가 나면 A, B 모두 한 푼도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고 한 번 제안한 이후에는 절대 협상 불가 조건이다.


 여러분이 수락자 즉, B의 역할이라고 하면,  상대자인 A가 10만 원 중 천 원만 주고 자기가 9만 9천 원 가지겠다고 하면 수락하겠는가? 사실 우리 모두가 진정한 경제적 인간(호모 이코노미쿠스)이라면 제안자 A는 가능한 한 자신의 이익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내릴 것이고, 수락자 B 역시 1원이라도 받게 되면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맞을 것이다(아무것도 없는데 꽁돈 1원이라도 생기는 것이니까).


 그런데 실제는 안 그랬다. 실험 결과, 제안자 A가 20% 이하로 제안을 하면 수락자 B는 대부분이 거절했다고 한다. 신기하다. 자기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는데 거절하다니! 그래서인지 어쨋는지 모르겠지만, 제안자들의 실제 분배 제안은 99% : 1%가 아니라 평균 40~50%선이었다고 한다.(다행이다, 양심들이 살아있구먼)


 어쨌건 전통적인 경제학적 관점으로 보면 A와 B 모두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을 했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바로 공정성(fairness)때문이었다. 아까 살펴보았듯이 공정성은 동물의 오랜 진화 과정 동안 나타난 '개별자에 대한 자존심', ‘무시’ 등과 관련된 심리적 기제이다.


 따라서 한 번 불공정한 제안을 받아들이면 상대는 계속해서 내게 불공정한 제안을 할 테고 이는 결국 현재 가치인 나의 자존심과 명성에 치명적이며, 미래 가치인 경제적 이익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형편없는 제안을 한 상대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당장은 이익이 안 나더라도 불공정한 제안을 거절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실험 결과에 따라 거절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는데, 제안자가 한 명이고, 수락자가 여러 명인 경우에는 제안을 대체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또 다른 사례로는 제안자가 나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이다.


 제안자(철수 : 무작위로 뽑힌 사람 / 영희 : 정당한 테스트를 봐서 나를 꺾고 제안자가 됨)의 역량에 따라 나를 꺾고 제안자가 된 영희의 제안은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아내의 요구를 매번 받아들이는 필자의 경우는 어디에 해당하는 것일까? 음…) 또, 컴퓨터가 시뮬레이션을 통해 제안하는 경우에는 아주 적은 금액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저서인 호모 데우스를 통해 윗 사례를 이야기하며 공정성이라는 것은 인간의 DNA에 뿌리 깊게 새겨진 생존 본능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선진국으로 갈수록 행복지수가 떨어지는 이유도 바로 이 공정성에 대한 정서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상대적 박탈감과 ‘을’에 대한 무시…MZ 세대는 이런 부분에 대해 강하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상황문의 K 실장은 아마도 이러한 공정성이 침해되어 무시를 당했다고 느꼈을 것이다. 다만, 이는 기획실 나잘나잘(나만 잘 먹고 나만 잘 살겠다) 리더인 C 상무도 잘못도 있지만, 사실 그의 전적인 잘못이라기보다는 지시만 내려놓고 과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리더 CEO의 잘못도 있다고 판단된다.


 조직의 역동과 첨예한 이해관계를 모두 파악할 수는 없지만, 리더는 늘 귀를 열어두고 다양한 경로로 입수되는 정보를 크로스 체크해야 이러한 공정성이 침해되는 경우가 최소화될 수 있을 것이다.
 


 조직 내 나만 잘 먹고 나만 잘 살겠다는 나잘나잘 리더들이여, 지금 먹고 있는 것이 독배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가? 그렇게 계속 독배를 마시다 보면, 나잘나잘 세포가 암세포로 변질되듯이 그대들도 조직 내 암적 존재가 될 수 있다. 앞만 보지 말고 옆도 보고 뒤도 돌아보며 손을 내밀어라. 조직은 혼자만 뛰는 100미터 경주가 아니라, 동료와 같이 뛰는 400미터 계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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