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현대 모성에 관한 몽타주>
이 영화의 제목, 두 가지 단어가 눈에 띕니다. 하나는 몽타주(Montage)입니다. 여러 장면을 이어 붙여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영화 기법이지요.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몽타주에 관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다른 하나는 현대 모성입니다. 여러분께서는 모성, 그중에서도 현대 모성에 관해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감히 확신하건대, 현대 모성의 진실에 관해 무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몽타주의 개념을 이해하는 사람보다 현저히 적을 겁니다.
<현대 모성에 관한 몽타주>는 영화를 비롯한 이 시대의 창작물이 외면하고 있는 현대 모성의 순간들을 이어 붙인 홍콩 영화입니다. 같은 아시아 국가의 여성으로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들로 가득하죠. 알려지지 않은 현대 모성의 진실이 궁금하다면,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된 <현대 모성에 관한 몽타주>에 주목하시길 바랍니다.
현대 모성에 관한 몽타주
Montages of a Modern Motherhood
'징'의 하루는 이른 새벽, 유축을 하고 아이를 시어머니에게 맡긴 뒤 베이커리로 출근하는 것을 트래킹하는 유려한 카메라의 움직임과 함께 시작된다. 까다로운 기질의 어린 딸 '칭'은 너무 자주, 너무 많이 울고, 함께 사는 시부모와는 사사건건 육아 및 집안일로 부딪히며 배달 일을 하는 남편에게 육아는 '징'의 일을 잠시 돕는 것일 뿐이다. 단지 아이를 낳았을 뿐인데, '징'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리며, '징'은 사회인으로 살아온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을 부정당하는 듯한 상황에 놓인다.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감독: 올리버 시쿠엔 찬
출연: 담선언, 노진업
<현대 모성에 관한 몽타주>의 스토리라인은 간결합니다. 생후 6개월 된 아이를 양육하는 초보 엄마 '징'의 이야기죠. '징'은 젊은 나이에 10년의 경력을 쌓은 파티시에로, 아이를 갖기 위해 6년간 고군분투한 끝에 소중한 딸 '칭'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의 기쁨도 잠시, '징'은 점차 현대 사회에서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든 일인지 깨닫지요.
'징'은 좋은 엄마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인물입니다. 모유가 아이의 건강에 좋다는 말에 분유를 먹이려는 시어머니와 부딪히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양육의 고됨 속에서도 아이를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를 짓고 마는, 분명한 모성이 엿보이는 사람이죠. 그러나 출산 후 변해버린 몸, 직장의 해고 통보, '여자는 그래야만 한다'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성화는 차츰 '징'을 엄마라는 그늘 속에 가두어 버립니다. 아이를 낳은 것을 후회하는 순간이 자꾸만 늘어나고, '징'은 모성과 자아 사이에서 세차게 흔들립니다. 불균형 속에서 바둥거리던 '징'은 결국 비극적인 선택에 이르고 맙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현대 엄마의 일상은 지독하고 가혹합니다. 한 생명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엄마에게 맡기고, 여성의 자아는 아무렇지 않게 몰살해 버리죠. 주변인들이 '징'에게 양육의 과업을 내맡기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자궁과 가슴이 있어 아이를 낳고 품는 것이 엄마이고, 그렇기에 엄마들은 '원래부터' 희생해 왔다는 겁니다.
이렇듯 '징'과 같은 현대 아시아 여성들은 사회로부터 모성을 강요당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현대 여성에게 '과거의 모성'을 강요하지요. 오늘날의 여성들은 가정에만 얽매이지도, 남성의 품 안에서만 살아가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많은 현대 여성이 '원래부터'라는 말에 떠밀려 여전히 양육의 과업을 홀로 감내하고 있습니다.
'징'의 비극적인 선택에도 우리는 감히 그를 모성도 없는 매정한 엄마라고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서서히 그의 자아가 말살되는 과정을 지켜본 관객들은 알 수 있지요. 그 많던 모성을 망친 것은 여성 자신이 아님을.
얼마 전, 두 눈으로 읽고도 믿지 못할 기사 헤드라인을 보았습니다. 국방부 산하 기관의 수장이 "여성도 군대에 가면 출산율이 올라갈 것"이라고 발언했다지요.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안일하게 결혼과 출산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지점입니다. 정말 여성과 남성이 연을 맺을 기회가 없어서 결혼과 출산이 이토록 저조한 걸까요?
올리버 시쿠엔 찬 감독은 GV에서 "주변에서 왜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이 영화를 보여주라"고 말했습니다. <현대 모성에 관한 몽타주>는 그만큼 출산 이후의 여성의 삶을 적나라하게, 그렇지만 절제된 감정으로 담아내는 작품입니다. 과연 여성이 이러한 세상에서 결혼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겠느냐고, 냉소적으로 되묻고 있지요.
우리는 미디어에서 이처럼 직접적인 방식으로 현대 엄마, 현대 모성에 관해 드러내는 콘텐츠를 쉽게 찾아볼 수 없습니다. 미디어는 현대 여성의 진화에도 여성의 진짜 현실을 쉽게 노출하지 않습니다. 모유를 먹이기 위해 출산 후에도 식단을 관리하고, 일하다가도 젖을 짜야 하고, 튼살이라는 영원한 흉터가 남고, 젖을 물리다가 유두에 상처가 나고, 재채기 한 번에 주르륵 소변이 흘러나오는, 출산한 여성이 마주하는 삶 말이죠. 이런 이야기들은 맘카페와 같은 엄마들의 익명 커뮤니티에서 폐쇄적으로 오갈 뿐입니다. 그렇게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은 또 다시 여성의 영역 안에만 갇혀 버립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도 여성이 군대에 가면 출산율이 늘어날 거라는 안일한 말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진정으로 우리 사회를 오래도록 보전하고 싶다면, 현대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이유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창작자의 고민도 깊어져야겠지요. 현실을 조각내어 예술(또는 콘텐츠)라는 대상으로 탈바꿈하는 창작자만이 현대 모성을 새롭게 정의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모성을 재생산하는 게으른 창작이 사라지길, 여성으로서 염원합니다.
이토록 부조리한 현대 사회에서 현대 모성이 어찌 찬란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