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 아멜리>
저희 엄마와 아빠께서는 종종 이런 대화를 나누십니다.
엄마: 어렸을 때 이거 했던 거 기억 나?
아빠: 기억 안 나겠지. 다 소용없다니까.
엄마: 에이, 그건 아니지. 다 어딘가엔 남아.
머쓱하지만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하는 추억 이야기를 들어도 그때의 기억은 흐릿하게조차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시절이 갖는 힘이 있겠거니 생각은 늘 해왔지요. 기억나진 않아도 분명히 어딘가엔 남아있는 바로 그때, <리틀 아멜리>는 그 시절을 담은 영화입니다. 여러분은 세 살 아이였던 그때 그 시절을 기억하시나요?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리틀 아멜리>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리틀 아멜리>는 2026년 1월 14일 국내 개봉작입니다.
리틀 아멜리
Little Amélie
일본의 작은 산마을에서 태어난 소녀 ‘아멜리’.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이라 여기는 ‘아멜리’는 유모 ‘니시오’와 함께 사계절을 보내며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니시오’와의 행복한 우정을 나누던 ‘아멜리’는 세 번째 생일날 예기치 못한 변화를 마주하는데… (출처: 씨네21)
감독: 메일리스 발라데, 리안 조 한
일본에서 태어난 '아멜리'는 자신을 신이라 믿는 아이입니다. 신이지만 인간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죠. 모든 걸 아는데도 갓난아기의 몸에 갇혀 있으니, '아멜리'에게 세상은 시시하고 성에 차지 않습니다. 만사에 관심이 없다는 듯 눈초리는 무심하고, 말할 줄 몰라 울음으로만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인간의 몸에 갇혀 말 한마디 못 하는 심통 난 작은 신의 울음소리는 그렇게 두 살이 될 때까지 이어집니다. 하염없이 울기만 해 엄마, 아빠, 언니, 오빠 모두 백기를 들게 한 그때, 벨기에에서 날아온 할머니가 초콜릿 한 조각(속세의 맛!)으로 요망한 작은 신을 인간 세상으로 소환하죠. 태어나 처음으로 기쁨이란 걸 맛본 '아멜리'는 비로소 생기 어린 눈과 재잘거리는 입을 장착하고 인간 세상을 탐험하기 시작합니다.
잠들어 있을 때는 꼭 '작은 보물' 같다가도 세상이 떠나가라 울어댈 때는 '작은 괴물'로도 느껴지는 아이들. 영화는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자신을 신이라 믿는 존재'이기에 벌어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사랑스럽게 표현합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이기적이지만 맑고 제멋대로지만 미워할 수 없는 존재였을 어린 시절의 제가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부모님께 저는 작은 보물이었을까요, 작은 괴물이었을까요?
세상에 발 디딘 '아멜리'를 따라 관객들은 일본의 사계절을 함께 경험합니다. 세 살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계절은 생동감 그 자체로 그려지죠. 아는 것은 없어도 모든 걸 볼 수 있는 세 살 아이에게 세상은 얼마나 찬란한 곳일까요? 영화는 세상을 처음 만난 아이가 받아들이는 충만한 경험과 순간들을 알록달록하고 몽글몽글한 색으로 펼쳐 보입니다.
<리틀 아멜리>는 생애 첫 이별을 마주하는 '아멜리'를 통해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을 그리기도 합니다. 이별이 유난히 슬픈 이유는 같은 기억을 공유한 대상이 사라지기 때문이죠. '아멜리'와 기억을 나눈 사람은 바로 가정부 '니시오 상'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꼭 단짝 친구처럼 다양한 추억을 쌓습니다. '아멜리'의 일본식 이름을 함께 짓고, 죽은 이를 기리는 일본의 세레머니에 함께 가고, 소년의 달을 맞아 신나게 잉어 깃발을 올리던 오빠에게 뾰로통해진 마음을 풀고자 함께 연못에서 잉어 먹이를 주기도 하죠. (소녀의 달은 없냐며 화내는 '아멜리', 게걸스럽게 먹이를 먹어 치우는 잉어의 모습을 보고 '잉어는 못생긴 성별을 상징하는 거구나!' 깨달으며 맘을 푸는 '아멜리'를 도무지 귀여워하지 않을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영사관 가족이었던 '아멜리'는 머지않아 벨기에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니시오 상'까지 집을 떠납니다. '아멜리'는 이런 게 이별이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어차피 모든 것은 사라지고 결국 잊히게 되니 삶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믿게 된 거죠. 그런 '아멜리' 앞에 세상을 먼저 떠난 할머니가 나타납니다. '아멜리'는 그 과정에서 이별이 있기에 오히려 모든 순간이 더 의미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사라질 지금을 더 힘껏 기억하기 위해, 다시 세상을 씩씩하게 살아가기로 하죠.
세 살 '아멜리'는 어른이 되어도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이별의 감정을 극복해 냅니다. 영화는 '아멜리'가 그런 심오한 감정들을 마주하고 익숙해지고 적응하고 다시 나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따라갑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는 아이들의 세계가 늘 기쁨으로만 채워져 있지는 않다는 사실과도 마주하게 됩니다. 실제로 영화에는 이별의 슬픔을 맞닥뜨리고 죽음을 희망하는 '아멜리'가 극도의 우울감을 내비치는 장면도 있는데요. 한순간의 경험이 세상의 전부일 아이들에게는 기쁨만큼이나 슬픔, 분노, 절망, 우울도 충만하게 다가갈 거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어린 시절에 꼭 기쁨만 맞닥뜨리는 건 아니라는 사실조차 희미해진 걸 보면, 모든 것은 잊힌다는 말은 정말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사라진 기억들이 아무 의미도 남기지 않는 것은 아닐 겁니다. 기억이 아니라 감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선명한 흔적으로 분명 마음 어딘가에 남아있겠지요.
<리틀 아멜리>는 여러 면에서 좋은 인상을 남겼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만 하는 아쉬운 지점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1969년을 배경으로 하고, '아멜리'의 가족은 일본에 거주하는 유럽인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가정부 '니시오 상'은 유럽과의 전쟁으로 가족 모두를 잃은 인물로 등장합니다. 일본이 저지른 과거의 전쟁 범죄와 한일 관계를 떠올리면 가볍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설정과 서사지요. '전쟁은 나쁘다'라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일본이라는 배경이 과연 적절했는지, 일본 문화를 향한 막연한 동경으로 이 시대와 장소를 선택한 것은 아닌지 질문이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