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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기린 Feb 14. 2019

어떻게 사람이 변하니

내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그녀에게

찌그러진 빈 깡통같은 관계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게 된 인연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했던가.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대학시절 동아리나 대외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친구들 중 한 두 명씩은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고 있고, 은행에서 6개월 동안 함께 인턴생활을 했던 한 살 어린 동생과도 여전히 연락하며 지낸다. 그리고 7년을 다닌 전 직장에서도 평생 가도 좋을 소중한 인연을 여럿 만들었기 때문이다.


몸이 떠난 사람

그런 내게 사람이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 인물이 있다. 바로 전 직장을 퇴사하기 전 1년 간 가장 가까이에서 동고동락한 P과장이다.


그녀와의 히스토리를 풀어내야만 내가 받은 충격의 정도를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 배경 설명을 좀 하자면 이렇다.


전 직장에서 내가 속한 부서는 대기업의 온라인 홍보/마케팅을 대행하는 업무를 했다. 여러 분야의 다양한 브랜드를 마치 내 것처럼 체험해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업의 묘미이다. 그런데 나의 마지막 클라이언트는 거대한 규모만큼 어마무시한 업무량을 몰고 왔다. 깊이 있게 브랜드에 대해 탐구해볼 여유도 없이 그날그날 테스크를 쳐내기에 바빴다. 하루가 멀다 하고 긴급 건이 터지는 난리통 속에 우리 팀에는 하나둘 전사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급하게 인력 충원을 해봐도 막상 업무에 투입되면 본인이 생각한 일과 다르다며 일주일 만에, 혹은 하루 만에도 그만두기 일쑤였다.


그런 상황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인물이 바로 P였다. 유명 잡지사 에디터 출신으로 옷차림에서부터 남다른 감각이 뿜어져 나왔다. 매달 마감의 압박에 맞서며 체화된 신속한 업무처리 능력과 기 센 여자 상사들 비위를 맞추며 단련한 처세술로 무장한 그녀는 숙련된 센스로 업무들을 쳐내며 가뿐하게 한 달을 채웠다. 우리는 이제야 한숨 돌리게 되었다며 안도했다.


처음엔 그녀의 곁을 주지 않는 태도가 꺼림칙해 경계하던 나도 같은 과장급 인력의 성공적인 랜딩을 자축했다. 그 무렵에는 그녀도 나름의 탐색기가 끝났기 때문인지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와 동갑이지만 이미 수차례 이직을 통해 여러 조직을 경험했고, 싱글로 지내며 나보다 다양한 커뮤니티에 속해 있다는 것이 그녀의 자산인 것 같았다. 반면 그녀에게 나는 자신이 처음 경험하는 이 업계에서 그것도 한 회사에서 오래 근무한 선배로서 유용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업무적으로는 서로를 보완하며, 개인적으로는 서로에 대한 호기심으로 점점 더 가까워졌다. 매일 아침 함께 커피를 사러 갔고, 당연히 점심도 같이 먹었다. 나중에는 점심뿐 아니라 퇴근 후 술자리까지 자주 갖게 되었다. 하드코어의 광고주를 합심하여 감당하면서 모종의 전우애까지 생겼다. 그렇게 끈끈하게 1년을 함께했고, 나는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때  P가 나에게 건넸던 책과 엽서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카톡으로도 따뜻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과장님이 떠나는 건 너무 아쉽지만 퇴사를 응원해요. 나는 또 누군가와 함께 일하게 되겠지만 마음 맞는 사람과 일하는 행운은 쉽게 오지 않는데 과장님 생각이 많이 날 거예요.”


마음이 떠난 사람

얼마 후 나는 예정된 여행을 떠났고 생각보다 시간은 빠르게 지났다. 한국에 돌아오자 부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사정이 여차저차한데 3개월만 아르바이트로 일해줄 수 있겠냐는 제안을 하셨다. 어차피 백수이고, 아는 일을 하는 거고, 단기 계약직이니 부담될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P를 비롯한 친한 사람들과 다시 재밌게 회사생활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렇게 첫 출근을 한 날, 나는 조금 설렜다. 퇴사 후 그만둔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향수병 같은 감정을 느꼈다. 이를테면, 아침 출근 후 커피를 사러 가는 짧은 산책길, 따뜻한 커피를 받아 들고 10분 정도 동료들과 쓸데없는 수다를 떨던 일, 팀원들과 회의실에서 열띤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 차오르던 아드레날린의 기억 같은 것들이 그리웠다.


... 이상했다. 출근한 지 30분이 넘도록 아무도 나에게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하지 않았다. P는 내 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 바쁘겠거니. 그렇게 생각하며 며칠을 보냈는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P는 의도적으로 나를 피하는 것 같았고, 함께 어울리던 다른 팀원들도 나에게 거리를 두는 듯했다. 세상에, 점심 먹을 사람이 없다니! 상상해본 적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와 내가 ‘함께 일하는 동료’ 이상으로 친한 사이였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도 알고 있었기에 이 묘한 분위기를 눈치챈 다른 팀에서 먼저 물어올 정도였다.


“P랑 무슨 일 있었어?”

“아니요. 무슨 일 없었어요. 제가 뭔가 저도 모르게 서운하게 한 적이 있는 걸까요?”


참다못한 나는 P에게 카톡을 보내 언제 한 번 저녁이나 먹으며 얘기 좀 하자고 운을 떼었다. 그녀는 상냥하지만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네네 좋아요. 그런데 무슨 얘기요?”

“그냥 사적인 얘기죠 뭐. 이런저런 고민도 있고.”

“나랑 사적인 얘기 할 게 있어요?”


마지막 대답에 난 좀 뜨악했다. 이렇게 개인적인 얘기를 내가 들어도 되는 건가 싶을 만큼 자신의 얘기를 서슴없이 풀어놓던 그녀였다. 그제야 나는 내 직감이 맞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녀는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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