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런던 히드로 공항의 물류 대란 에피소드와 함께
지난 6월말, 아일랜드 더블린에서의 학회 일정을 마치고 영국 런던을 경유하여 한국으로 이동하는 일정 중에 실제로 겪은 일이다. 런던에는 총 5개의 공항이 있는데, 그 중 히드로(Heathrow) 공항은 유럽에서 가장 붐비는, 세계에서도 손 꼽히는 규모와 번잡도를 가지고 있다. 당시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5시간 정도의 경유가 예정되어 있었고, 가지고 있던 수화물을 별도로 런던에서 찾았다가 다시 한국으로 부쳐야 했기에, 수화물 찾는 곳 - Baggage Claim에서 수화물을 한참 기다리고 있었다. 삼십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도 수화물은 나오지 않았다. 다음 비행 일정이 지체될까 염려되어, 빠르게 수화물 이슈를 확인해보고자 했다.
그런데, 당시 히드로 공항에는 수화물 분실 신고를 하려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공항에서 수화물을 분실한 경우, 꼭 분실 신고를 해야 한다. 그래야 해당 공항에서 책임지고 분실된 수화물을 나중에 찾아서 승객의 최종 목적지까지 따로 배송해 준다.) 분실 신고를 기다리는 줄이 워낙 길다보니, 수화물 분실 신고 과정만 몇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뉴스를 통해 확인해 본 바, 런던 히드로공항에 수화물 운영 과정에서 발생한 기술적 결함으로 아래 이미지에서 볼 수 있다시피 주인을 만나지 못한 분실 수화물이 히드로공항 곳곳에 넘쳐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몇 주 후, 분실했던 개인 수화물이 최종 목적지까지 따로 배송되어 오긴 했지만,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의 해당 이슈는 쉽게 잠잠해지지 않았다. 정말 기술적 결함의 문제였을까?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기술적 결함이 있었던 것은 맞았다. 히드로 공항에는 총 5개의 터미널이 있는데, 수화물이 항공기 착륙 후, 엉뚱한 터미널로 잘못 배송 되거나 혹은 배송이 지연되는 사태가 빈번히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이 운영 과정에서의 기술적 결함은 단순히 프로그램이나 소프트웨어의 문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이를 관리하고 바로 대처할 수 있는 인력 부족이 본질적인 문제였다. 당시 전세계적으로 비슷하긴 했지만, 코로나 기간동안 공항과 항공사에서는 많은 인력을 감축했다. 그런데,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서 갑작스레 항공 이동에 대한 수요가 폭증했고, 공항과 항공사에서는 이를 서비스하기 위한 충분한 인력 수급이 제때에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영국이기 때문에 고려해야 하는 두 가지 측면이 더 있다. 항공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발생한 것은 전 세계가 비슷했지만, 유럽, 특히 영국의 경우에는 두 가지 이유로 문제가 더 심각했다. 하나는, 공항에서 근무하는 인력을 채용하는 데에 보통 적어도 3~6개월의 기간이 소요된다는 것이었다. 공항은 일반 업무공간과 달리 테러 등에 대한 위협에 민감한 장소였고, 이에 따라 직원을 채용할 때, 해당 지원자의 신분과 위험도 등을 체크하느라 절대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두 번째 이유는, 브렉시트(Brexit)로 인한 노동력 부족 이슈이다. 영국의 경우 많은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유럽, 특히 동유럽에서 건너오곤 했는데,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에서 일하기 위한 비자 발급이 어려워지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영국을 떠나 유럽 대륙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 시점에, 흥미로운 통계자료 분석 결과를 살펴보자. 앞서 나눈 에피소드를 생각해보면 영국의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듯 보인다.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고, 기업이 적합한 노동자를 찾는 것도 어려워 보인다. 이런 현상과 관련된 두 가지 주요 측정 잣대를 참고로 살펴보자.
위 두 그래프 중, 왼쪽은 지난 20년간 영국의 일자리 공석 그래프이고, 오른쪽은 1970년부터 지금까지의 영국 실업률 변화 그래프이다.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특히 브렉시트 이후, 최근 2~3년간의 추이를 집중해서 보면, (붉은 색 점선으로 표시된 영역) 실업률이 낮아졌는데, 비어있는 일자리 수가 급격히 늘고있다. 어떻게 이런 아이러니한 현상이 가능할까? 실업률이 낮아졌다고 함은 비어있는 일자리가 줄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일자리 공석이 늘고 있다니? 그렇다면,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져서 실업률을 커버하고도 남는걸까?
앞서 에피소드에서 살펴봤듯이 최근 영국에서는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파업(strike)이 난무하고 있다. 파업 이유를 조목조목 살펴보다 보면, 일반 구직자들은 적합한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성토하고 있고, 기업들은 직원을 채용하고 싶은데, 고용할 수 있는 마땅한 사람이 없다고 토로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언가 이상하다. 통계 분석 그래프가 잘못된 것일까? 실업률이 낮아지고 있는데, 일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다니. 이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실업률은 일반적으로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찾는 노동인구로 구성된다. 따라서, 학업중인 학생, 주부, 고령자, 자발적 은퇴자 등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경제활동인구에서 제외되며, 이에 따라 실업률 산출 방식에서 고려되는 실업자로 분류하지 않는다. 실제로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데 아직 직업이 없는 상태이어야 실업률을 계산할 때 비로소 실업자로 고려한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과 브렉시트를 거치며 이와 같은 비경제활동인구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최근 영국의 노동시장 동향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일찍 은퇴하거나 장기간의 질병으로 일할 수 없어 노동 시장을 떠나는 것이다. 이러한 이탈은 경제활동인구 연령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실업률의 또 다른 특징은 불완전 고용된 사람들도 계산에 포함한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더 많이 일할 수 있지만 시급제로 일하는 파트타임의 경우 실업률이 실제보다 낮게 산출될 수 있다. 일자리와 기술 격차, 그리고 지역적 격차도 고려해야 한다. 탈산업화로 인해 소도시에 있는 사람들은 쉽게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상황에 있기 때문에 실업 수당을 청구하기 어렵다. 실업수당을 청구하려면 본인이 실업 상태이고, 동시에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구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때문에, 실업수당을 청구하고 구직활동을 하고 있어야 비로소 인정되는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지 않는다.
실업률이 낮으면 언제나 더 좋은 것일까? 현재 영국의 실업률은 3~4% 정도로 매우 낮다. 낮은 실업률은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적다는 의미이니 경제에 유익하고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너무 낮은 실업률은 결과론적으로 인플레이션(물가상승)과 낮은 생산성을 유발한다. 현재 영국 전역을 강타하고 있는 높은 물가 상승과 이에 따라 생활 여건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 현상은 낮은 실업률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 2~3년간 브렉시트(Brexit)의 결과로 많은 근로자들이 영국에서 이탈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과 맞물리면서, 유럽 출신의 많은 인력들이 영국을 떠나 유럽 고국의 가족에게로 돌아갔다. 시간이 지나고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일상 회복이 되는 듯 보였으나, 한 번 영국을 떠나 유럽으로 돌아간 근로자들은 쉽게 영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브렉시트 때문이다. 더 이상 유럽연합 비자(EU visa)로 영국을 아무런 제한 없이 왔다 갔다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영국에서 일할 수 있는 법적 자격 역시 제한된다. 그들에게 손쉽게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는 영국의 정책이 영국 스스로의 노동력 부족 족쇄를 채워버린 셈이다.
브렉시트로 인한 근로자 이탈은 특정 산업에 특히 집중되었다. 저임금 업종인 농업, 제조업, 창고업, 운송업, 관광 및 호텔산업 등에서 눈에 띄게 이뤄졌다. 이 분야의 비즈니스 기업들은 코로나 시기가 지나고 비즈니스를 이전과 같이 회복하는 데에 노동력 부족으로 인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기업 입장에서 더 나은 임금과 업무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인력을 유치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비용 증가,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물가인상은 기업들로 하여금 인력 유치 투자에 어려움을 겪게 하였다. 결국 부정적인 외부 기업 환경은 인력에 대한 소극적 투자를 일으키고, 이것은 인재 확보 및 유지의 어려움을 가져오며, 이로 인해 비즈니스가 장기적으로 어려워진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위 내용은 국내 HR매거진 '월간인재경영' 2022년 12월호에 기고할 글의 일부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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