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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은 정말로 더 나을까 - 그 이후...

다양성 관련 산학협력 실증연구 프로젝트 결과 일부 공유

by 이재진

1년 전, 국내 HR매거진 인재경영에 “다양성은 정말로 더 나을까”라는 주제의 글을 기고했다. 당시 다양성의 중요성과 관련 내용을 구체적으로 소개했지만, 다양성의 가치는 일률적으로 측정 가능하지 않고 실제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성과로 도출되는지 까지는 맥락과 연구분석의 설계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다양성(Diversity, Equity & Inclusion: DEI)을 둘러싼 환경은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국가와 산업을 불문하고 다양성 정책의 효용과 공정성에 대한 논쟁이 거세지고 있고, 특히 몇몇 국가에서는 정치적으로 다양성 이슈가 강제적으로 축소되고 있기까지 한 상황이다. 이와 더불어 기업들 사이에서도 “겉으로만 다양성을 추구하는가” 혹은 “정말로 조직 내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다양성을 좇고 있는가” 사이로 갈리는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 그리고 HR이 다양성을 전략의 중심에 두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사회적 측면에서 생각해 볼 한가지는 인구구조의 급속한 변화 때문이다. 고령화, 출산율 저하, 그리고 무엇보다 은퇴 인구 대비 새롭게 노동 시장에 진입하는 인력의 숙련도가 구조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노동 시장의 일선에서 역할을 하고 있는 HR은 그 어느때보다 강한 챌린지를 받고 있다. 또 다른 측면은 AI시대에 맞닥뜨린 상황에서의 다양성이다. 이 글에서는 AI시대에 왜 다양성이 더 부각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으로, (그리고 작년에 소개했던) 리즈대학과 영국 도로교통부가 지난 5년간 수행한 다양성 관련 산학협력 프로젝트의 결과 일부를 공유하며, 다양성이 조직의 실질적 성과와 직원들의 인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실증 분석 결과를 함께 논하려 한다.




AI 시대의 다양성: 왜 지금 더 중요한가?


흥미롭게도 AI(인공지능)의 확산은 다양성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모두가 주지하듯 생성형 AI가 계속해서 보편화되어 감에 따라, 반복적이고 간편한 작업을 AI를 활용함으로써 업무 생산성과 효율성이 동시에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기존 우리의 업무가 “정답/솔루션을 빠르게 찾는 능력”을 요구했다면, AI 시대에 요구받는 역량은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좋은 질문을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라고 한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 다양성의 의미가 부각된다. 더 나은 문제정의, 그리고 더 혁신적인 질문은 서로 다른 경험과 관점이 충돌되고 조율되는 환경에서 더 많이 발현되기 때문이다. 즉, AI가 일상의 업무를 더욱 돕고 있는 시대에, 인간의 질문과 판단의 질적 퀄리티를 높이는 창의성을 더욱 북돋기 위한 논의의 현장에서, 다양성은 그 핵심에 있다.


AI는 과거의 그리고 학습된 데이터를 분석하여 인사이트를 요약하고 아웃풋을 생성한다. 그러나 “무엇을 물을지(문제정의)”와 “왜 이 답이 옳은지(정합성 판단)”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사회과학과 조직연구 분야에서는 오래전부터 “인지적 다양성(cognitive diversity)”이 복잡한 문제의 해결력과 창의적 산출을 높인다고 제시해왔다. 예를들어, Hong과 Page(2004)의 연구는 서로 다른 관점과 문제해결 방식을 가진 다양한 집단이, 능력이 뛰어난 동질적 집단보다 복잡한 수학적 문제를 더 효과적으로 해결한다는 점을 연구로 밝힌 바 있다. 이들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에서 다양한 휴리스틱과 접근 방식을 가진 집단이 집단 전체의 탐색공간을 넓힌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동일 혹은 비슷한 배경의 유능한 개인들만으로 모인 집단에서는 특정 관점에 갇힐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집단의 평균적 능력보다 인지적 다양성(cognitive diversity)이 문제 해결력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한다. 물론 서로 다른 캐릭터가 섞여 있는 팀이나 조직은 아무래도 더 자주 충돌하지만, 적절한 포용(inclusion) 메커니즘(e.g. 심리적 안전감, 공정한 절차, 협업 규칙 등)이 갖춰질 때에는 더 우수한 해결책을 산출한다.


Hong, L., & Page, S. E. (2004). Groups of diverse problem solvers can outperform groups of high-ability problem solvers. PNAS, 101(46), 16385–16389.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핵심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인력 구성의 다양성”이 아니라 “조직 내에서 다양성이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단순히 남녀성별, 인종비율, 출신비율과 같이 수치적으로 보여지는 다양성 지표 외에, “조직 구성원들이 다양성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가?”, “정말로 해당 조직이 다양성과 포용성이 높다고 인지하는가?”와 같은 점이 중요하다. HR 관점에서 채용, 인력배치, 학습, 의사결정, 보상, 승진 등의 운영에 있어서 다양성 측면을 고려하도록 시스템화 하고, 팀 단위에서 서로 다른 의견의 충돌이 생산적 토론으로 전환되도록 심리적 안전감을 조직문화적 차원으로 제공할 때, 다양성은 더 나은 아이디어나 혁신적인 대안과 같은 질적 수준이 높은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 AI가 온갖 문서 초안을 만들고, 왠만한 수준의 개발자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코드를 생성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은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제시하느냐” 하는 관점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 사슬에서 다양성은 주요 연결고리인 셈이다.




다양성이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증분석 – 영국 National Highways의 사례



지난 5년간 조직의 인력 구성 다양성이 조직 생산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를 실증적으로 분석하는 연구 과제 프로젝트를 National Highways (NH) 기관과 함께 수행해 왔다. NH는 영국 도로교통부 산하 기관으로 고속도로와 주요 국도에 대한 운영, 유지, 관리, 보수 등을 담당하고 있는 영국 정부 소속의 국영 기업이며, 동시에 다양한 sub-contractor(하도급; 협력사)를 통해 일하는 복잡한 기업이다. 최근 프로젝트 결과를 NH 이사회와 다양성 관련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바 있는데, 해당 결과와 내용의 일부를 이 글에서 공유한다. (*NDA 계약에 의거, 자세한 내부 내용을 밝히지 못하고 외부에 공개 가능한 주요 핵심 인사이트만 공개함을 양해바랍니다.)


이 연구 프로젝트는 다음의 질문들에서 출발했다. “다양성이 나아지면 비즈니스에 더 나을까요? 심지어 전통적으로 남성 위주인 산업군에서는 어떨까요? 다양성을 실증적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요? 이를 비즈니스 성과에 연계해서 증명할 수 있을까요? 직원들의 스킬 향상에 다양성이 도움이 될까요?” 이를 파악하기 위해 연구팀은 NH 기관과 협력하여 5년 단위의 quasi-experimental research (준실험) 연구를 설계했다. 쉽게 말하면, 직원들의 다양성 및 포용(DEI or EDI) 수준을 진단한 뒤, 다양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인위적으로 개입시켜서(intervention) 직원들이 인식하는 결과값과 비즈니스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추적하고, 사전(pre) 및 사후(post) 결과값을 비교하여 그 인과적 효과를 검증하려는 것이었다. 특히 NH처럼 건설업/도로건설 분야에서는 일반적으로 남성의 비중이 높고, 특히 숙련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런 산업에서 이러한 접근의 연구가 비어 있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영국의 경우 생산성 부진, 협업/개선 문화의 취약함, 공급망 전반의 고령화, 여성 비중이 23% 수준으로 낮은 성별 다양성, 그리고 향후 10년간 최대 20~25% 인력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 등이 그 배경이었다. 이런 외부적 환경 변화는 업무 현장에서의 안전, 품질, 원가, 납기 준수 능력 등에 직격탄이다. 이와 같은 구조적 제약 속에서 NH와 연구팀이 이해하는 다양성은 단순히 윤리적 의제가 아니었다. 우리에게 다양성은 향후 NH의 인력 지속 가능성과 비즈니스 성과를 유지 혹은 향상시킬 수 있는 핵심적인 전략 과제였다.


Quasi-experimental research (준실험) 연구- 무작위 배정(random assignment)을 사용하는 ‘과학적 실험’과 달리, 현실 세계 속에서는 모든 개입을 컨트롤(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에, 연구자가 통제할 수 없는 집단이나 현장에서 개입의 효과를 검증하는 것이 준실험 연구 설계다. 주로 개입 전후 비교(pre–post), 자연발생 집단 간 비교, 혹은 통계적 통제를 활용해 인과적 추론을 시도하는 방법이다.



그림 1. 2021년부터 2025년까지 5년간 진행된 NH의 다양성 프로젝트 3단계 실행안


이 연구 프로젝트의 설계는 크게 3단계로 이루어졌다 (그림 1 참조). 프로젝트는 5년에 걸쳐 설계 – 개입 - 평가를 순환하는 행동연구로 설계되었다. 1단계(2021–2022)에서는 문헌 검토와 함께 본사 및 주요 1차 협력사 이해관계자 수십명을 대면 인터뷰해 권고안을 도출했다. 2단계(2022–2023)에서는 합의된 EDI 개입을 여러 사업 현장에 적용하고 1차 설문(Wave1)을 실시, 초기 결과를 토대로 계획을 정교화했다. 3단계(2024–2025)에서는 EDI 개입을 확산 및 유지하는 한편, 새롭게 추가된 현장에 대하여도 연구의 범위를 확장하고 2차 설문(Wave2)과 성과지표 연계를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서의 핵심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시스템 전반을 겨냥한 묶음 전략이다. 우리 팀은 이를 ‘묶음(bundle) 개입’이라 불렀는데, 효과적인 EDI 개입은 단순히 뭔가의 한가지 액션으로만 이뤄지지는 않는다. 리더십의 가시적 지지를 확보하고, 고립된 1회성 프로그램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활동 묶음을 통해서 ‘일시적이고 표면적인 행동’이 아닌 ‘시스템’을 바꾸고자 했다.




연구결과는 여러 측면에서 고무적이었다. 특히 다양성 개입이 비즈니스 성과와 직원들의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적으로 밝혔다. 관련된 데이터 및 분석 프로세스를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주요 결과 중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림 2. 직원경험의 실질적인 개선 효과를 나타내는 분석 결과


1. 첫째는, 직원경험의 실질적인 개선 효과를 확인하였다 (그림 2 참조). 다양성 및 포용에 대한 인식이 높은 집단일수록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이 유의하게 높았다. 특히 재직 의도의 차이는 더욱 극명하게 나타났다. 다양성을 낮게 인식한 집단에서 재직 의도는 약 28%였던 반면, 다양성을 높게 인식한 집단에서는 82%로 약 3배 가까이 높은 수치에 달했다. 다양성 인식이 직원의 일상적 경험(지속가능한 근로 조건)과 중장기적 관계(잔류 의사)에 동시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확인한 부분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근로자들의 장기 근속기간이 길지 않은 건설/도로교통 산업에서 특히 의미 있는 결과였다.


그림 3. 성별에 따라 전반적으로 EDI의 개선 효과에 대한 인식과 체감이 다르다는 분석 결과


2. 두번째로, 집단별 특히 성별에 따라 전반적으로 EDI의 개선 효과에 대한 인식과 체감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림 3 참조). 여성 직원들은 전반적 EDI 개선 체감을 남성보다 높게 인식했고, 연구팀의 다양성 번들 개입의 효과가 여성에게 더욱 큰 효과로 나타났다. 언제나 그렇듯 연구 결과는 긍정적인 측면만 강조하는 것은 아니고, 향후 과제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이 경우, EDI 개입이 전 구성원에게 균등하게 체감된 것은 아니었으며, 이를 내재화하는 과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시사한다


그림 4. 다양성 개입이 직원의 이탈 위험을 완충시킨다는 분석 결과


3. 세번째는 “인과적 효과가 있었는가”의 관점에서, 직원들의 이탈 위험을 완충시킨다는 것이다. 그림4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대조군 (control 그룹으로 도표에서 주황색)에서는 재직 의향이 큰 폭으로 하락한 반면, 개입군(treated 그룹으로 도표에서 파란색)은 완만한 하락에 그쳤다. 두 그룹 모두 재직 의도가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지만, 이것은 외부 환경 변화 요인에 대한 거시적인 흐름에 영향을 받은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연구팀의 다양성 촉진 이니셔티브 개입 전후의 직원 재직 의도에 대한 준실험 추정 결과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통제집단에서는 재직 의도가 약 82%에서 40%로 급락했다. 반면 개입 집단은 60%에서 50%로 완만히 하락하는 데 그쳤다. 특히 개입이 없었을 때의 반사실적 궤적 (그림4에서 점선으로 표시된 부분)을 고려하면, EDI 묶음 개입은 직원들의 이탈 위험을 유의하게 낮추는 ‘완충 장치’로 작동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양성은 선택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의 문제, 특히 AI시대에.


National Highways의 프로젝트는 다양성과 포용이 인력 지속가능성 및 비즈니스 성과와 깊게 연동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다양성을 바라보는 인식을 단순히 “더 다양한가”가 아니라 “다양성이 제대로 작동하는가”로 봐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시스템을 바꾸는 다양성 묶음(bundle) 개입, 직원 경험을 경유하여 성과까지 이어지는 경로 설계, 데이터에 근거한 설계, 평가, 개선, 이러한 관점들이 맞아떨어질 때, 다양성은 비로소 실질적으로 조직 내에서 그 영향력을 발현한다. 다양성에 대한 정치적/사회적 논쟁과는 별개로, 현장의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 조직의 다양성은 실제로 작동하는가? 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치는가?” 당연히 위 프로젝트의 결과는 이 질문들에 대한 유일한 답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메시지로 우리에게 시사점을 전달해준다. 특히, AI 시대에 더 나은 질문의 중요성을 촉진하는 상황에서 다양성은 그러한 접근을 가능케 하는 현실적인 전략 방안이다.



*위 내용은 국내 HR매거진 '월간인재경영' 2025년 11월호 기고 글의 일부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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