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20조 기업, 왜 HR부서가 없을까?

AI 시대, HR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영국 기업 집중탐구 시리즈 2부

by 이재진

매출 20조가 넘는 직원 수 10,000명 기업, Octopus Energy는 왜 HR부서가 없을까?


이전에 1부에서 다뤘던 다이슨(Dyson)에 이어, 영국의 에너지기업 옥토퍼스 에너지(Octopus Energy)에 대해 심층 탐구한다. 지난 다이슨의 사례는 AI 시대에 기업의 핵심 역량을 재정의하여 기존 엔지니어링 기업에서 디지털 농업 기업으로 업(業)의 재정의 및 확장을 하는 전략적 변화를 보여주었다.


이번 2부에서는 그러한 관점을 조금 더 좁혀서 조직 내 하나의 기능(function)으로서 HR에 주목한다. 조직 내 다른 여러 기능들과 마찬가지로, HR 역시 AI 시대에 피할 수 없는 변화 현상을 맞이하고 있다. 즉, HR 본연의 기능을 벗어나 역할의 재정의를 요구 받는 상황이다. 이런 측면에서 HR 부서 없이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영국의 에너지 기업 옥토퍼스 에너지 사례는 흥미로운 관점의 재전환을 제공할 것이다. 물론 이 사례를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런 기업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여러 기업에 속한 HR 담당자 및 리더들에게 많은 인사이트를 줄 것이라 생각한다.




HR 부서가 없는데, 이게 되네?


영국에서 거의 10년 가까이 살다 보니, 이 나라가 참 묘한 곳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보수적인 관료제와 느린 행정의 이미지가 분명 존재하는데, 동시에 그 속에서 매우 과감한 조직적 실험을 하곤 한다. 지난 몇 년간 케임브릿지 대학과 수십 곳의 기업들이 주 4일제 생산성 추적 실험 연구를 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와는 별개로 학계와의 협업 없이 기업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2부에서 다루는 옥토퍼스 에너지(Octopus Energy)는 그 중에서도 HR 부서 없이 조직을 운영하는, 상당히 극단적인 사례다.


이 회사의 CEO인 Greg Jackson은 2021년에 출연했던 BBC 프로그램 CEO Secrets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My billion-pound company has no HR department.” (10억 파운드 규모의 제 회사에는 HR 부서가 없습니다.) 참고로, 10억 파운드는 한화로 약 2조원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난 4년간 옥토퍼스 에너지는 10배의 성장 (매출규모 약 20조원)을 이루었고, 직원수도 3,500명 내외에서 10,000명을 훌쩍 넘기는 기업으로 더 확장되었다.


download.png 영국의 최대 전력 공급업체인 옥토퍼스 에너지의 창업자, 그렉존슨과 발전소 전경


이러한 거대 규모의 기업에 HR부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어불성설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AI로 인해 우리의 역할과 직업이 대체될 거라는 불안감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가운데, 이런 기업 사례는 HR 실무자와 리더들로 하여금 여러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럼 노동법 이슈는 누가 관리하지?”, “채용, 평가, 보상은 누가 설계하지? 또 누가 실행하지?”, “직장 내 갈등은 대체 누가 조정하지?”


독자의 오해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 확실히 해두면, 옥토퍼스 에너지에 전통적인 방식의 HR 부서(department)는 없지만, HR 기능(function)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러 사람들로 이뤄진 조직이 운영되려면 마땅히 채용, 보상, 교육, 훈련, 배치, 평가 등 다양한 HR의 기능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서 자체가 없다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 옥토퍼스 에너지는 분명 “HR의 존재 이유” 자체를 다시 묻게끔 하는 기업이다.




Octopus Energy는 도대체 어떤 회사인가


2015년에 설립된 Octopus Energy는 불과 10년 만에 전통적 에너지 기업들을 제치고 유럽 시장의 강자로 성장했다. 영국 내에서는 2025년 기준으로 가정용 전기 시장점유율이 20%가 넘는다. 한국과 달리 영국은 전력공급이 공기업이 아니라 사기업들로 운영되고 있고, EON, EDF Energy, British Gas 등 전통적인 회사들이 많다. 그런데, 이들 사이를 비집고 옥토퍼스 에너지는 계속해서 마켓 쉐어를 늘려가고 있다. 그리고 이 기업은 영국 뿐만 아니라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 내 타국에도 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1부에서 살펴봤던 Dyson처럼, 이 회사도 자신들을 전통적인 업(業)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옥토퍼스 에너지는 자신들을 “energy company”가 아니라 “technology-driven energy platform company”라고 소개한다. 여기서의 핵심은 “tech-driven platform (기술 기반의 플랫폼)”이다. 이런 identity 를 바탕으로, 자체적으로 개발한 AI 기반의 에너지 관리 플랫폼 ‘크라켄(Kraken)’을 활용해 고객들이 실시간으로 재생에너지의 가격을 확인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고객이 스스로 저렴한 맞춤형 상품을 선택해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옥토퍼스 에너지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조직 구조이다. 소규모의 팀 단위로 조직이 운영되고, 각 팀 내에서 특히 매니저(팀장급)가 HR의 기능을 전담한다. 대규모 조직의 경우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HR 부서가 별도로 조직되어 있고, 채용, 보상, 교육, 배치 등 여러 HR 기능이 HR 부서에 의해 배타적으로 운영된다. HR부서는 HR 기능 및 운영(function and operation)에 대해 명확히 차별화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각 현업과 타 부서의 업무 상황을 면밀히 이해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HR 담당자가 세일즈, 엔지니어링, 마케팅, 재무, 고객서비스 등 다른 현장 업무를 깊이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옥토퍼스 에너지는 작은 팀 단위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어 고객 서비스 부서는 10명 안팎의 팀이 약 6만 명의 고객을 담당한다. 고객서비스 부서에 대하여 고객이 재차 연락하게 되면, 가능한 한 이전에 대응했던 같은 팀과 연결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와 책임의 단위를 재설계한 것이다. 조직을 하이라키(위계적으로) 방식으로 구성하여 리더 및 매니저 중심으로 Top-down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 중심적 그리고 비즈니스 가치 중심적으로 조직화 되어있다. 이런 특징을 보여주는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이 회사가 명문화된 가치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비전이나 미션을 정하고, 또 기업 가치를 몇 가지 선언문으로 정리하여 기업의 나갈 방향을 조직 내에 전파하는 방식으로 문화를 확산한다. 반면, 옥토퍼스 에너지의 경우, 조직을 “a storytelling organisation”이라 부르고, 정교하게 잘 정리된 정책보다는, 내부적으로 공유된 이야기와 원칙으로 문화를 전파한다.


한국의 조직 문화적 관점으로 다시 설명해보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규정, 지침, 프로세스 중심의 HR에 익숙하고 강하다. 하지만 옥토퍼스 에너지는 정책(policy)이 조직을 더 좋게 만든다고 믿지 않는다. 좋은 기술과 좋은 팀 그리고 좋은 리더가 있으면, 사람은 스스로 일을 잘 한다는 믿음이 강하다.




“HR 없는 조직”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가? – Three Pillars


세가지 기둥 중 첫 번째 축은 “Kraken”이다. 옥토퍼스 에너지 기업에 관심을 갖는 일부 미디어와 사람들은 Kraken을 AI 기반의 에너지 관리 플랫폼으로 생각하는 듯 하다. 물론 틀린 것은 아니지만, Kraken은 단순한 IT 시스템이 아니다. 에너지 관리 외에도 HR 기능을 포함한 회사의 운영 전반을 아우르는 플랫폼이다. Kraken을 통해, 고객 서비스 워크플로우, 청구 및 요금, 수요 예측, 고객 케어 이력, 업무량 분배, 신규 요금제 런칭 등 다양한 운영 서비스가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서비스 중 상당 부분이 Kraken을 통해 자동화되고 있다. 2025년에 옥토퍼스 에너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AI를 통해 고객 응대 이메일 초안의 40% 이상을 자동으로 생성하며, 일부 고객 만족도 지표에서는 훈련된 직원보다(65%) AI로 작성한 초안이 더 높은 점수(80%)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말은 곧, 전통적으로 HR이 담당하던 운영 기반의 people management 영역을 플랫폼이 흡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이메일 작성에 그치지 않는다. 기존에 전통적 방식으로 HR이 담당하던 온보딩, 일정 관리, 교육 설계 및 운영, 성과 분석, 고객 이슈 대응의 절반 이상이 자동화 되어가고 있다.


download.png 옥토퍼스 에너지의 자회사 - AI 기반의 에너지 플랫폼 ‘크라켄 테크놀로지’(Kraken Technologies)


두 번째 축은 작은 팀(small teams) 운영을 통해 관리의 단위를 최소화한다는 점이다. 옥토퍼스 에너지는 회사 전체를 ‘마이크로 팀’ 단위로 운영한다. 각 팀은 스스로 다음의 것들을 책임진다: 채용, 업무 분배, 고객 문제 해결, 팀 내의 성과 관리, 갈등 해결, 팀원의 성장 및 학습 계획 등. 이렇게 언급한 대부분의 것들은 전통적으로 HR이 담당하던 것이다. 이런 점을 비춰볼 때, 옥토퍼스 에너지의 각 팀은 자체적으로 HR 기능을 커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옥토퍼스 에너지의 각 팀을 리드하는 매니저는 기본적으로 HR을 직접 해야 한다고 전제한다. 물론, 아주 전문적인 영역, 예를 들어, 법률 자문이나 회계 등 전문가 네트워크가 필요한 경우는 외부와 연결하여 HR 기능의 일부를 비즈니스 파트너(business partner) 방식으로 외부에서 서포트한다. 다만, 조직 내부에는 여전히 HR의 최소 기능만 둔다.


세 번째 축은 정책(HR Policy)이 아닌 신뢰와 자율 중심의 문화를 들 수 있다. 옥토퍼스 에너지의 애뉴얼 리포트(2024)를 보면 조직 관리의 핵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표현들로 설명하고 있다.

- 신뢰(trust)가 규칙보다 중요하다.

- 자율이 책임을 만든다.

- 좋은 기술이 있으면 사람은 더 잘 일한다.

- 실패는 학습의 일환이다.


규정은 가이드로서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하지만, 민첩한 대응과 자율성을 저해하기도 한다. 옥토퍼스 에너지는 이러한 규정을 최소화함으로써 민첩성(agility)을 조직의 핵심 자산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예를 들어, 옥토퍼스 에너지의 각 팀은 내부적 검토를 통해 합당한 전략을 제시하면, 회사는 몇 주 만에 새로운 요금제나 새로운 에너지 상품/프로그램을 런칭할 수 있다. 많은 기업들이 혁신을 외치지만, 그 본질에 대한 고민과 구체적인 방법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적어도 옥토퍼스 에너지의 경우, 그들에게 혁신의 본질은 속도이고, 그러한 속도를 만드는 것은 작은 단위 조직의 자율적 권한으로 보여진다.




옥토퍼스 에너지 사례는 AI시대의 HR 종말을 말하는가


사실, Octopus Energy는 “HR 부서가 없는 회사”라고 하기 보다는 “HR의 기능이 재정렬 및 재배치된 회사”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각 팀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전문적 지식이 필요한 HR 기능에 대해서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옥토퍼스 에너지가 재정렬한 HR 기능을 세가지로 나누어 보면 다음의 표와 같다. 이 중, 1번 항목은 기술 솔루션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아웃소싱으로 해결하고, 2번 항목은 각 팀의 매니저가, 그리고 3번 항목은 외부 HR 비즈니스 파트너의 협업으로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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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AI 시대에는 HR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HR이 ‘실행자(operator)’에서 ‘설계자(designer)’로 그 무게중심이 이동한다고 볼 수 있다. AI로 자동화 할 수 있기 때문에 HR의 기존 기능을 없애는 것이 핵심이 아니다. 기존의 HR 기능을 재정립하고 HR의 역할과 기여 가치를 어디에 위치시키는가에 대한 것이 re-designing의 핵심이다.


글을 마치며,

옥토퍼스 에너지의 사례를 참고하여 HR 담당자와 기업에 있는 독자들이 다음의 질문들을 생각해보길 권한다.

· 우리 회사의 HR 기능 중, AI 플랫폼에 내장될(embedded) 수 있는 기능은 무엇인가?

· 라인 매니저가 스스로 맡을 때 더 효과적인 HR영역은 어디까지인가? (HR기능의 coverage)

· HR은 무엇을 직접 수행하고, 또 무엇을 설계/감독하는 역할로 전환해야 하는가?

· 조직을 기술(tech)을 활용해 운영할 때, HR은 어떤 윤리 및 공정성 기준을 지켜야 하는가?

· “HR 부서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HR 역할 재배치(reallocation)” 혹은 “HR 리디자인(re-designing)”이 핵심이라고 할 때, 우리 조직은 어떤 비즈니스 가치에 따라 어떻게 reallocation/re-designing 할 것인가?


물론 Octopus Energy의 방식이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다. 국가마다 규제도 다르고, 각 기업마다 매니저의 역량 편차도 크다. AI와 자율적인 팀 운영 방식의 모델이 모든 산업에서 제 역할을 한다고 확언하기도 어렵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는 AI 시대에 HR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해 볼 수 있도록, 분명하고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분명한 것은, AI 시대는 HR의 종말이 아니라, HR의 재정의를 요구하는 시대다.




## 참고문헌

BCG. (2020). Interview with Octopus Energy on cutting-edge customer service and digital operations.

BBC. (2021). CEO Secrets: Greg Jackson on running a billion-pound company without HR.

Financial Times. (2023). Octopus Energy: The tech-driven utility disrupting Europe’s energy market.

Octopus Energy Group. (2024). Annual report and accounts 2024.

Octopus Energy Group. (2025). Kraken Technologies: Powering the future of energy.

KPMG (2025). Spotlight on Octopus Energy: Scaling integrity and innovation to transform customer experience


*위 내용은 국내 HR매거진 '월간인재경영' 2026년 1월호 기고 글의 일부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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