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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Mar 27. 2024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그룹 내 HR Analytics 학습모임 활동을 시작하며

재수 생활을 마치고 교육학과 입학 면접 도중 한 교수님으로부터 왜 교육학과에 오려고 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당시에 별 다른 망설임 없이 했던 내 답변과 당시의 마음이 꽤나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점수가 좀 남는 것 같은데 왜 교육학과에 오려고 하나요?”

“한 사람의 CEO가 되는 것보다는 100명의 CEO를 키워내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솔직히 점수에 맞춰 당시 인기가 더 좋던 경영학과에 지원하는걸 전혀 고민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같은 학교 교육학과 출신으로 HRD 부서에서 근무하시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주말이면 연수원 운동장에서 뛰놀았던 나이기에 이미 HRD라는 직무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진심을 담아 답변을 했었다. 취업 면접 중에도, 그리고 지금 근무하는 회사로 이동을 하던 시기에도 매번 비슷한 질문을 받았었고, 그리고 크게 다르지 않은 답변을 했던 것 같다. 내가 한 질문이 아니라 매번 받았던 질문이기에 면접용 답변으로 적절한지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쨌든 난 늘 같은 말을 했고, 늘 같은 마음으로 HRD의 직무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룹 핵심인재 대상 사내 MBA 교육을 담당하던 2020년 가을과 겨울 사이, 처음으로 면접장면이 아닌 상황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핵심인재들이 사업가로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역량 향상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3월부터 10월까지 격주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매년 각 사 CEO 승인을 거쳐 선발된 대표선수 100여 명을 의도적으로 육성하는 과정이었기에 내 생각엔 기업 내에서 진행되는 교육들 중에서는 가장 타이트하고 빡센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공들여 준비하고 진행을 하였다. 그렇다 보니 장기간 교육생들과 동고동락하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쌓이기 마련인데, 코로나가 한창이던 그 해의 졸업식 모든 식순을 무사히 마치고 마지막으로 담당자 소감을 말할 시간이 찾아왔다.


2020 LG MBA 졸업식 중


대학 입학 시절 면접장에서 교수님 한 분께 왜 교육학과에 지원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고, 당시의 저는 진심을 담아 한 명의 CEO가 되는 것보다는 100명의 CEO를 키워내는 일을 하고 싶다고 답했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그 대답을 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힘은 들었지만 정말 행복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지금처럼 열심히 하셔서 여러분 모두가 꼭 좋은 리더로, 멋진 CEO로 성장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해 졸업식을 마치고 다음 기수 교육을 준비하던 중 당시 리더로부터 받았던 한 통의 전화와 함께 데이터와 함께 하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학습의 과정은 험난했고, 프로젝트 진행 중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그렇게 한 발 한 발 HR Analytics라는 미지의 영역을 헤쳐나가고 있다. 사실 처음 발을 들이던 시기에는 당황스러워서도 있었지만 아무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인사담당자를 찾아가서 최소한 학교만이라도 가지 않는 방법이 없을지에 대해 진지하게 상담도 했었기에 지난 연말 다른 업무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었다. (지금 조직에서는 최소 연한인 3년이 지난 인원들에 한하여 HR과의 면담을 통해 담당 업무 조정 여부를 파악하고, 결원이 발생하는 경우 희망 인원을 우선 배정하고 있다.) 게다가 4~5년 주기로 돌아오는 인재위 자료 준비를 위해 향후 커리어 장단기 계획을 수립할 일이 있었기에 앞으로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있었다.


세세하게 모든 내용을 다 적을 순 없겠지만 크게 두 가지 관점의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하나는 지금 하고 있는 데이터와 관련된 일을 계속해서 하고 싶은지에 대한 부분이었고, 다른 하나는 과연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1. HR Analytics, 하고 싶은 일인가


고민의 관점이 특정한 도메인에 구애받지 않고, 데이터 분석 그 자체를 행하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의 길이라면 그건 내가 하고 싶은 일도 아니거니와 재수씩이나 했음에도 결국 수포자와 다를 바 없는 길을 택한 나로선 결코 잘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얼마 안 되는 프로젝트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관점을 좁혀 내가 10년 이상의 직무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HR 영역에 데이터 분석 방식을 적용하는 일 자체는 너무나도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과정이 물론 어렵긴 하지만 내가 다루는 HR 데이터 속에서 그간 발견하지 못했던 의미들을 발견하는 그 과정이 신기함과 함께 즐거운 감정이 들었고, 조직 내외부적으로 이런 케이스들이 쌓이다 보면 원하든 원치 안 든 HR의 일하는 방식이 그쪽을 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 HR Analytics, 잘할 수 있는 일인가


그렇다면 남은 고민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가에 대한 건데, 이건 사실 자신 있게 그렇다 말하기 어려웠다. 우선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의 길은 아니라는 생각과 마찬가지로 HR 데이터로 좁혀 생각하더라도 새로운 분석 방법이나 관련 HR 지식들을 알아갈수록 결국은 내가 모르는 것이 더 많음을 발견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기에 자연스레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자신감을 가지고 다양한 HR Analytics 프로젝트를 할 수 있다거나 하고 싶다한들 나에게 익숙한 업무 데이터가 아닌 HR의 새로운 영역에 대해서는 완전히 새로운 고민과 추가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에 무턱대고 잘할 수 있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앞으로의 HR에서 점점 더 중요한 영역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지금보다 더 잘하고 싶은 일이라는 확신은 들었다.



한 사람의 HR Analyst가 되기보단...


잘하고 싶은 일을 나답게 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결국 HRD 분야에 뛰어들기 전 생각과 마찬가지로 나 자신이 당장에 뛰어난 HR 분석가가 되는 것에는 앞으로도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하기에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 부분은 결국 개인의 시간과 노력으로 계속해서 매진해야 하겠으나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같은 고민을 하는 HR의 분석가를 키워나가는 활동은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실제로 그룹 내 각 계열사에 기존의 인사, 육성, 조직문화 등과는 다른 이름의 HR Analytics를 담당하는 부서가 신설되었기에 조직 내 HR의 방향에도 부합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 상에서 지난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의 치열한 기획을 통해 그룹 내 HR Analytics 학습모임을 론칭하였다.


이제 막 시작한 일이기에 담백하게 타임라인에 따른 활동만 남겨보자면  


    지난 3년 간 사내 외 전문가들과 함께 기획하고 개발한 데이터 리터러시와 데이터 분석 관련 교육 중 HR Analytics를 직접 수행하기 위해 필요하다 싶은 내용들만 모아서 월 단위 활동 스케줄을 구성하였다.   

    초심자로서 HR Analytics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내가 막혔던 순간순간에 도움이 되었던 내용과 당시의 질문들을 나열했고, 그 내용들을 토대로 멘토 역할을 해주실 교수님들과 전체 흐름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각각의 심화학습 내용과 매칭하여 링크드인과 PA 컨퍼런스 등을 통해서 접한 외부 기업 사례의 주인공들을 어렵사리 섭외하였다.

    각 계열사 CHO 대면 보고를 통해 학습모임 활동에 대한 스폰서로서의 지지를 확보하였다.  

    HR 리더대상의 메일링을 통해 24명의 커뮤니티 멤버기 모였다.  

    각자의 경험과 해결하고자 하는 과제, 활동을 위한 준비도 등을 지원서 형태로 취합하였다.  


이상의 과정을 통해 그 시작이라 할 수 있는 Boot-camp가 무사히 진행되고 있다.


LG HR Analytics 1기 Boot-camp


회사에 속한 입장에서 월급을 받아가며 일을 하다 보면 싫지만 시켜서 하는 일이 있고, 별 감정은 없지만 해야해서 하는 일이 있고, 아주 가끔이지만 누구도 시킨 적 없지만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있다. 이번 일은 철저히 하고 싶은 마음을 일로 발전 시킨 사례이다. 앞으로 정말 잘하고 싶은 일인데, 혼자는 어렵고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기왕이면 내가 속한 회사에 잘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생각과 사례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퇴근 후 각자의 시간을 들여 모인 많은 직장인 모임들의 성공사례는 많이 접하고 있지만 사내에서 진행된 CoP 활동이 성공 사례로 공유되는 케이스는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많이 조심스럽기도 하다. 처음 모인 우리의 열정은 활활 불타오르는 중인데 과연 올해 활동을 마무리하는 시점에는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있을지. 오늘을 기점으로 LG의 HR이 달라졌다는 것까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후에 또 다른 포스팅을 통해 이 모임 내에서 진행했던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공유하고 싶을 정도로만 꾸준했으면 좋겠다. 아무튼 공들여 준비한 활동을 시작한 순간의 기억을 보다 선명하게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에 오늘의 한 페이지를 넘어 다음 장을 작성하게 될 때, 그 안에는 우리의 이야기가 담겨 있길 바라며 오늘의 이야기를 몇 자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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