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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lee Jul 17. 2022

정치 이야기가 싸움으로 이어지는 이유

1. 왜 정치 이야기는 대화의 장에서 배제될까?


2년 정도 독서모임 커뮤니티에서 정치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이야기를 하면 늘 받는 질문이 "그런 얘기하면 싸움 안 나나요?"다. 나야 원래 정치를 좋아하고 정치기사를 읽는 것이 일상이고, 선거 개표방송을 손흥민 축구경기보다도 재미있게 보는 내 입장에서는 공감이 되지 않는 질문이다. 오히려 나는


"세상에 싸울 일이 얼마나 많은데 왜 정치 얘기를 하면서 싸우지, 굳이?"

"왜 정치를 이야기하면 안 되지?"


라는 질문을 늘 갖고 사는 것 같다. 물론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정치라는 주제가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터부시 되는 주제인지. 오죽하면 정치나 종교 이야기는 하는 게 아니라는 말까지 있겠나. 절대적인 믿음의 영역인 종교와 등치 될 정도로 정치도 신념의 일종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있고, 정치를 이야기하면 필연적으로 이 '신념 간의 충돌'이 일어난다고 생각되는 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이라는 것을.  


우리의 대화 공간 속에서 정치라는 주제는 어느 순간부터 배제되어 왔고, 정치 이야기는 민감한 이야기, 하면 안 되는 이야기, 싸움이 나는 이야기 등으로 낙인이 찍혀왔다.




2. 정치 이야기가 싸움이 되는 현상, 당신의 기분 탓이 아니다


정치라는 주제가 민감한 대화의 주제라는 인식은 날이 갈수록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고, 정치 이야기를 꺼려하는 분위기는 이제 거의 보편화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최근의 정치학 연구도 이러한 분위기와 일맥상통하는 경험적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정치학계에서 근래 핫한 주제로 부상하고 있는 연구 주제가 '정서적 양극화'(affective polarization)이다. 기존에는 각 정당에 소속된 정치 엘리트(국회의원 등) 간, 그리고 각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 간 이념적 거리가 벌어지고 있다는 '이념적 양극화'(ideological polarization)에 주목을 해온 반면, 정서적 양극화 연구는 정치적 정향과 감정을 연결시켰다. 즉, 내가 지지하는 정당과 나와 같은 정당을 지지하는 이들에게는 호의적인 편향을 갖는 반면 내가 지지하지 않는 정당과 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비호감으로 느끼고 심한 경우 혐오하기까지 하는 현상이 정서적 양극화 현상의 핵심이다. 쉽게 말해, 정서적 양극화 연구에 따르면 정치 영역에서의 '다름'은 '틀림'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정서적 양극화는 정치의 영역에서는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인 선거의 결과에 대한 불복, 내가 지지하지 않는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인 불신 등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Iyengar et al. 2019). 그러나 정서적 양극화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서적 양극화의 부정적 효과가 정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서적 양극화는 서로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 간 불신의 증폭, 서로 다른 정치적 정향을 갖는 이들 사이에서의 대화와 교류의 단절, 극단적인 경우 상대 진영에 대한 정치적 폭력의 정당화로도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현상이기도 하다(Iyengar et al. 2012).


미국에서부터 출발한 정서적 양극화 현상은 이제 유럽을 넘어 한국에서도 엄연히 경험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경험적 연구에서는 여론조사 기법을 통해 정서적 양극화의 정도를 측정하는데, 주로 사용되는 문항이 감정 온도계(feeling thermometer)로 불리는 문항이다. 이 문항은 특정 정당, 정치인에 대해서 어느 정도 호감을 갖고 있는지를 0(매우 비호감)에서 100(매우 호감)으로 측정하는 문항이다.


이러한 문항을 통해 우리나라에서의 정서적 양극화의 양상을 분석한 연구도 있다. 아래의 그림을 보면 우리나라의 주요 정당인 민주당(민주당 계열)과 국민의힘(보수정당 계열)을 지지하는 사람으로 나눠서 각 정당에 대한 호감도를 측정해보면,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지지하는 정당과 지지하지 않는 정당에 대한 호감도-비호감도 격차가 커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내가 지지하는 정당에 대해서는 호감도가 높고, 내가 지지하지 않는 정당에 대해서는 호감도가 낮은 내집단 편애(in-group favoritism), 외집단 폄하(out-group derogation)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출처: 고승연 (2022, p.19)

그러니 정치라는 주제가 점점 더 민감한 주제로 인식되고, 정치 이야기가 우리의 대화의 장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냥 기분 탓이 아니다. 경험적 연구의 데이터를 살펴보아도,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심화되고 있고, (불행히도) 앞으로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도록 하자. 정치를 이야기하면 왜 싸우게 되는 것일까?




3. 정치 이야기는 왜 싸움으로 이어지나? 정치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답이 보인다


얼마 전 아그레아블 독서모임 커뮤니티 창립 9주년 행사에서 "싸우지 않고 정치를 이야기하는 법"이라는 주제로 짧은 스피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그걸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도 "왜 정치를 이야기하면 싸움이 날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정치를 왜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것인가 생각하며 답답해 한적은 있어도, 왜 사람들이 정치를 이야기하면 싸움이 나고, 왜 정치라는 주제가 싸움이 나는 주제로 인식되는지 그 원인에 대해서는 정작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고민해본 결과, 정치가 갖고 있는 내재적 속성 때문이 아닐까 하는 나름의 결론에 이르렀다.


정치가 과연 무엇이냐고, 정치현상을 어떻게 다른 현상과 구분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동안 학계에서도 많은 논의가 축적되어 왔다. 여러 학자들이 정치에 대한 다양한 정의를 내놓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인상적인 정의는 독일의 정치철학자인 칼 슈미트(Carl Schmitt)가 내놓은 정의였다. 슈미트는 정치를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행위"로 정의했다. 단순하지만 정치의 핵심을 꿰뚫는 정확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정치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전쟁이라고 하는데, 전쟁만큼 적과 아군을 적나라하게 구분하는 행태가 또 있을까? 선거도 정치다. 선거는 내가 지지하는 후보와 내가 지지하지 않는 후보 간의 경쟁을 지켜보고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한 표를 행사하여 권력자를 선출하는 제도다. 그리고 조금 더 직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저 사람 참 정치적이다'라는 말을 쓸 때가 있다. 여기서 정치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정치적 식견이 뛰어난 사람? 정치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 아니다. 바로 '편을 잘 가르는 사람'을 일컫어 우리는 정치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즉, 정치라는 게 본질적으로 갈등적이고 편을 갈라서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응원하는 팀과 일체화되어 매일매일의 야구 경기 결과를 두고 희비가 교차하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정치를 이야기할 때도 내가 참가한다는 마음으로 정치 이야기에 임하게 되면서 싸우게 되는 것 아닐까?


우리가 정치에 관심이 있던 없던, 정치는 우리의 삶의 많은 부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에 따라 스스로 인지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정치적 정향을 갖게 된다. , 정치가 우리의 삶에 개입하는 영역이 넓어질수록 우리는 정치와,  구체적으로는 특정 정당과의 일체감을 형성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정치 이야기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된다.  편과 상대편이 있게 되고, 정치 이야기는 대화의 주제가 아닌 나와 상대의 신념 간의 충돌을 야기하는 기폭제가 되는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는 정치를 이야기하면 싸우게 되는  아닐까?





참고문헌


고승연 (2022) 한국 정당 지지층 유권자와 정치엘리트의 정서적 양극화: 뉴미디어 필터버블 효과를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박사학위논문.  


Iyengar, Shanto, Gaurav Sood and Yphtach Lelkes (2012) "Affect, Not Ideology: A Social Identity Perspective on Polarization." Public Opinion Quarterly 76(3), 405-431.


Iyengar, Shanto, Yphtach Lelkes, Matthew Levendusky, Neil Malhotra and Sean J. Westwood (2019) "The Origins and Consequences of Affective Polarization in the United States." Annual Review of Political Science 22: 129-146.


Schimitt, Carl (2012) 정치적인 것의 개념 (김효전, 정태호 옮김). 경기: 살림출판사 (원서출판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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