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내가 처음 그곳을 걸었던 2017년에도 순례길에 보이는 동양인 중 대부분이 한국인이어서 순례자들로부터 "한국인들이 이렇게 많이 오는 이유가 뭐지?"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었다. 그 이후에도 <같이 걸을까>나 <스페인 하숙> 같은 티브이 프로그램을 통해 노출이 잦아지면서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여행지가 되었다. 산티아고를 찾는 한국인은 해마다 늘어, 코로나 이전 5년간 산티아고를 방문한 한국인이 2만 7천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책에는 산티아고 프랑스길을 걸은 두 번의 여정이 시간 순서대로 담겨있다. 같은 길의 순례기가 두 개인 셈이지만 걸은 과정과 들른 마을 등이 다르기에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각각의 순례길이 소설처럼 하나의 이야기로 흐를 수 있도록 쓰려고 노력했다. 처음 산티아고에 간 건 2017년, 공무원 수험생 신분일 때였다. 30대 중반의 나이였고, 일 년 동안 매일 공부만 하다가 필기시험을 치르자마자 이틀 뒤에 있는 비행기 표를 샀었다. 어쩌면 도망칠 곳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시험과 아무 상관없는 곳으로 가서 잠시라도 모든 걸 잊어버리고 싶었다. 불안정한 현실을 뒤로하고 한 달의 시간을 챙겨 비행기에 올랐다. 시험 결과는 순례 막바지에 알 수 있을 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모했다. 총 799km를 걸어야 하는 대장정인데 떠나기 전 준비 기간이라고는 이틀뿐이었으니 말이다. 준비는커녕 일 년 가까이 햇빛을 보지 못해 얼굴은 창백했고 체력을 갖춘 상태도 아니었다. 프랑스길의 출발지 생장으로 가면서 '이 길을 잘 걸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뒤늦게 몰려왔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길을 걷는 동안 크게 불편했던 적은 없다. 대부분의 것들이 길을 걷는 동안 채워졌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이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 느끼기도 하고 '이보다 더 외로울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길 위에서 느끼는 감정의 폭이 넓고 깊었다. 희한하게도 그런 경험들이 서서히 내게 자신감으로 돌아왔다. 내가 나를 알고 있다는 자신감. '나는 이만큼의 슬픔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이야' 스스로의 약함을 발견하는 동안에도 '나'는 더 선명해졌다.
내 한계에 부딪치면서, 그것에 무너지거나 그것을 넘어서거나 했다. 799km를 두발로 완주하리란 계획은 무너졌지만, 종착지에는 어떻게든 도착했다. 그러는 동안 무너지든 넘어서든 그것은 과정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됐다. 무너지면서도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됐다. 어찌 되었든 둘 중 하나일 뿐이었다. 무너지거나, 넘어서거나. 무너지기만 하는 삶도, 넘어서기만 하는 삶도 없었다. 중요한 건 '나'라는 존재를 잃지 않는 거였다.
산티아고 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기 며칠 전, 길가에 있는 바(bar)에 앉아 시험 결과를 확인했는데 불합격이었다. 하늘은 흐렸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온 땅을 적시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순례길을 걸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했다.
두 번째 순례길은 일 년 뒤 여름이었다. 일 년을 다시 공부와 씨름하는 동안 산티아고는 마음속에서 늘 빛을 잃지 않았다. 길 위에서 발견했던 '나'라는 작지만 단단한 알갱이가,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준 것 같다. 지금까지도 그렇다. 오늘을 잘 걸으리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 마음에 박힌 별, 산티아고> 책 내용 중 일부입니다.
<내 마음에 박힌 별, 산티아고>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