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로 도피하다

by 햇살바람


봄 햇살이 부서지던 2017년 4월, 오랜만에 햇볕을 쬐어서 그런지 어질어질했다. 공무원 시험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산티아고에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시험이 끝나면 가겠다고 막연히 해오던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로 한 것이다. 1분 1초를 아껴서 해온 공부였지만 시험 점수는 운이 좋으면 합격할 수도 있는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 시험 따위 생각나지 않는 곳으로 어디든 당장 떠나고 싶었다. 숨 쉴 곳이 필요한 나에게 산티아고는 둘도 없는 훌륭한 도피처였다.


다행히 여행경비는 있었다. 공부하는 동안 지출이 많긴 했지만 산티아고를 다녀오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돈보다 시간이었다. 완주를 하려면 799km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여행 일정을 적어도 30일은 잡아야 하는데, 미래가 불투명한 수험생이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여행을 하는 것은 꽤 위험한 일처럼 보였다. 불합격이면 곧바로 다음 시험을 준비해야 하니까. 순례길을 다녀온 후 공부하는 흐름을 되찾기까지 다시 한 달이 걸렸으니, 위험하긴 했다. 그런 형편이니 당연히 여행 준비에 많은 시간을 쓸 수는 없었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서둘러 준비한 다음, 이틀 뒤 인천발 저녁 비행기에 올랐다.


여행 준비

산티아고 순례길은 야고보 성인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 걸어가는 도보 순례길이다. 산티아고(santiago)는 야고보 성인을 일컫고, 콤포스텔라(compostela)는 별들의 들판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프랑스 길, 북쪽 길, 은의 길, 포르투갈 길, 마드리드 길 등 다양한 루트가 있지만 그중 프랑스 '생장 피드포르'에서 시작해 799km에 걸쳐 스페인 북부를 횡단하는 프랑스 길이 가장 유명하다. 보통 산티아고 길이라고 하면 프랑스 길을 지칭한다. 길 자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생각보다 오래 걸렸던 일은 프랑스 길의 출발지인 '생장 피드포르'까지 어떻게 가는지 파악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블로그나 카페에 많은 글이 올라와 있어 어렵지 않게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생장으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보통 파리나 마드리드를 경유해서 많이 가는 듯했다. 당시에 한국과 파리 왕복 항공권이 약 68만 원으로 가장 저렴했기 때문에 나는 파리를 경유하는 길을 택했다.


파리 드골공항에서 생장으로 가려면 몽파르나스역으로 가서 바욘을 거쳐야 한다. 순례길의 출발지까지 가는 길부터 만만치가 않았다. 몽파르나스역까지는 전철을, 바욘까지는 tgv를, 생장까지는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바욘으로 가는 tgv는 미리 예매해 놓으면 싸게 이용할 수 있는데, 난 이틀 전이라 많이 저렴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현지에서 표를 사는 것보다는 싼 가격인 99유로로 이용할 수 있었다. 출발 전날, 그렇게 비행기 표와 tgv표를 예매했다.


그다음엔 순례길을 걸을 때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검색했다. 내가 꾸린 배낭을 그대로 짊어지고 걸어야 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물건을 정한 다음, 나머지는 과감히 버리는 용기가 필요했다.

출발 당일에 근처 대형마트에 들러 급하게 배낭과 등산화, 트레킹 복을 샀다. 짐을 싸고 확인해보니 배낭 무게가 5kg 정도 나갔다(그마저도 무거워서 길을 걸으면서 가이드북과 옷가지 등을 버렸다. 최종적으로 4kg 정도 무게의 배낭을 메고 다녔다). '이렇게도 갈 수 있는 건가?' 스스로도 어이없을 만큼 준비기간이 짧게 느껴졌다. 환전은 1,000유로 해갔었는데, 현지에서 더 인출하는 일은 없었다.


'걷다가 힘들어서 중간에 돌아오게 되면 어떡하지.'

'체력이 바닥난 상태인데 잘 걸을 수 있을까.'


비행기에 오르자 뒤늦게 걱정이 밀려왔다. 저녁 7시 45분에 인천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대만을 경유해 다음날 아침 7시 반에 파리 드골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산티아고 길 순례는, 내게 꼭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가지고 살아본 경험이기도 하다.


순례길 tip – 짐 싸기

챙겨간 것
배낭, 등산화, 침낭, 여권, 트레킹복(긴팔 2, 긴바지 2), 바람막이, 패딩조끼, 평상복, 속옷 2, 양말 3, 발가락 양말 3, 스포츠 타월 2, 비옷, 모자, 손수건, 로션, 선크림, 세면도구, 바늘, 실, 마데카솔, 대일밴드, 손톱깎이, 귀마개, 충전기, 이어폰, 지퍼백 한 묶음, 일기장(손바닥만 한 얇은 노트)

도착해서 산 것
스틱, 슬리퍼

걷다가 버린 것
가이드북, 옷가지들 (가이드북은 지나온 곳을 찢어서 버리기 시작하다가 가이드북을 보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통째로 버렸다. 가벼워서 버린 티가 나지 않을 것 같은 종이나 면봉 같은 것들도 버렸다. 버릴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버렸다)



순례 전날

바욘에서 버스를 타고 저녁 7시 반쯤 생장에 도착했다. 한국을 떠난 지 31시간만이지만 시차 때문에 날짜상으로는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 생장은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듯한 착각이 드는 여유로운 마을이었다. 하얀색 벽과 붉은색 지붕 위로, 막 지기 시작한 햇빛이 반짝이며 일렁였다.


버스에서 내린 후 순례자들이 가는 쪽으로 따라 걷자 자연스럽게 순례자 사무실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순례자의 상징인 조가비(기부금으로 금액은 자유롭게 낼 수 있다)와 끄레덴시알(순례자 여권, 2유로)을 사고, 숙소 정보표와 고도표를 받았다. 아날로그 방식을 좋아하는 나는 걷는 내내 순례길 어플은 거의 보지 않고 이 숙소 정보표랑 고도표를 보며 걸었다.


순례자 사무실.
순례자 여권과 숙소 정보표와 고도표.


순례자 사무실에서는 생장에서 묵을 알베르게(순례자 숙소)도 정해준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생장에 있는 모든 알베르게가 순례자들로 꽉 들어찬 상태였는지, 순례자 사무실에서 침대가 남아 있는 마지막 알베르게라고 알려준 곳마저 남는 침대가 없어서 알베르게 1층 거실에 있는 소파에서 잠을 자야 했다.


소파 위에 짐을 풀고, 순례자 사무실에서 산 조가비를 배낭에 꽉 묶었다. 순례자 여권은 소중하게 지퍼백에 넣어 다른 물건들과 섞이지 않는 배낭 제일 윗주머니에 넣었다. 그제야 순례자가 된 실감이 났다. 그곳에서 만난 한국인 몇 명과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그중 두 명과 내일 새벽 5시에 피레네 산맥을 넘기로 했다. 체력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천천히 걸으려면 일찍 출발해야 할 것 같았다. 내일 간식으로 먹기 위해, 저녁에 나온 바게트랑 감자튀김 몇 개를 배낭에 챙겼다.


알베르게에서 먹은 저녁.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내일 걸어야 할 방향을 미리 봐 두기 위해 알베르게 주위를 천천히 돌았다. 출발을 앞둔 설렘과 비장함,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이 마을 곳곳에서 넘실댔다. 알베르게로 돌아오는 길에는 성당 종소리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뎅그렁 뎅그렁 울려 퍼졌다. '잘 걸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잠자리에 누워서도 집요하게 따라붙었지만, 하루 동안 이동을 많이 한 탓인지 곧 잠이 들었다.


생장 피드포르.





<내 마음에 박힌 별, 산티아고> 책 내용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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