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피레네 산맥을 넘다

by 햇살바람
순례 1일 차 (4월 12일)
생장 피드포르 → 론세스바예스 (26.5km)


순례 첫날, 계획대로 새벽 5시에 알베르게를 나섰다. 이른 시간이라 피곤했지만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피레네 산맥을 못 넘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눈이 번쩍 떠졌다. 한국인 두 명과 함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여정의 첫발을 디뎠다. 온통 어둠으로 뒤덮인 길 위에는 달빛만 고요히 내려앉아 있었다. 일행 중 한 명은 은퇴하고 순례길을 찾은 60대 아저씨였고, 한 명은 대학생 청년이었다. 우리는 아저씨가 비춰주는 손전등에 의지해 노란색 화살표를 찾으며 걸었다. 우리 외의 다른 순례자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피레네 산맥을 넘은 4월 중순에는 길 곳곳에 미처 녹지 못한 눈이 남아 있었다. 11~3월에는 눈이 와서 산을 오를 수 없기 때문에 우회 루트인 발까를로스를 이용해야 한다고 한다. 피레네 산맥은 4~10월에만 넘을 수 있다.

60대 아저씨는 인생에 관해서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셨는지 걷는 동안 쉬지 않고 여러 이야기를 했다.


"우와, 그러셨구나."


다행히 대학생 청년은 그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눈치였다(실제로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지만 나는 걷는 것만으로 힘에 부쳐서 그 말들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맞장구를 쳐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러웠다.


오르막이 가파르지 않았는데도 금세 숨이 턱까지 찼다. 이야기를 나누며 가뿐하게 걷는 그들과 나는 같이 걸을 수 없는 운명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들은 헉헉대는 나를 보더니 가방을 어깨에서 내리며 잠시 쉬어가자고 했다. 그들의 배려가 고마웠지만 계속 같이 걷기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다. 다시 배낭을 멘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먼저 가세요. 전 천천히 걸을게요."


나 때문에 계속 쉴 수도 없는 노릇이라 1시간 정도를 걸었을 무렵 혼자 걷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괜찮다고 또 쉬면 된다고 했지만 한두 번 쉰다고 해결될 저질 체력이 아니었다. 내가 계속 먼저 가라고 하자 그들은 미안한 듯 머쓱하게 웃고는 씩씩한 뒷모습을 보이며 사라졌다. 다행히 그때는 달빛이 밝아서 손전등 없이도 걸을 수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날이 밝아올 테니 달빛이 구름에 잠시 가려진다고 해도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그들이 떠나고 나니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나에게 맞는 속도로 걸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자신과 속도가 맞지 않는 일행을 힘들게 따라 걷다가 탈이 나는 사람을 여럿 봤기 때문이다. 얼마나 빨리 걸을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도 있다. 까미노에서 속도 경쟁만큼 무의미해 보이는 것도 없다. 그렇게 무리하며 걷는 사람 중 나중에는 절뚝거리며 동키 서비스(배낭을 운반해주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을 많이 봤다. 물론 그렇게 탈이 났다고 해서 의미 없는 까미노를 걸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각자의 까미노가 있을 뿐 정답은 없다는 걸 이젠 알기 때문이다.


피레네 산맥을 넘으며 본 일출.



조금 더 걸으니 8km 지점에 위치한 오리손 산장이 나타났다. 오리손 산장은 피레네 산맥에 있는 유일한 휴식처다. 이곳을 지나면 산을 다 넘을 때까지 더 이상 알베르게나 바(bar)는 없다. 나는 걸음이 더딘 만큼 마음이 급했기 때문에 힘들면 그냥 길에서 쉴 작정으로 오리손을 지나쳤다. 전날 오리손에서 묵은 순례자들이 아침 햇살 속에서 신발 끈을 조이며 출발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리 내 속도에 맞게 천천히 걷는다 해도 피레네 산맥을 넘는 일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사를 내지른 것도 처음뿐, 끝도 없이 계속되는 오르막에 신물이 났다. 무엇보다 처음 메고 걸어보는 배낭이 너무 짐스러워 당장이라도 버리고 싶었다. 무게를 분산시켜줄 스틱도 없었기 때문에(필요하면 그때 사지 뭐,라고 편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어깨가 더 짓눌렸다. 팔은 저리다 못해 감각이 없어질 지경이었다.


'가방에 별로 든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무거운 거야.'


혹시 버릴 만한 게 없는지 가방 안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떠올렸다. 버리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었지만 산에는 쓰레기통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모든 짐을 메고 산을 넘는 수밖에 없었다. 하긴 쓰레기통이 있었다면 나처럼 짐을 버리고 싶은 순례자들 때문에 감당이 안 됐을 거다.


힘들어서 땅만 보며 걷는 동안 수많은 순례자들이 나를 앞질러 우르르 걸어갔다. 나는 토끼 사이에 낀 거북이처럼 혼자 계속 뒤로 밀려났다. 생장에서 출발한 순례자들은 거의 다 나를 앞질러 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들은 모르는 사람이라고 쌩하니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많은 이들이 괜찮냐고 물어오거나 힘내라고 격려해줬고, 어떤 사람은 구부정하게 걷는 나를 밑에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올려다봤다. “부엔 까미노(좋은 순례길 되세요)!”라고 인사하며 웃어주는 그들에게,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부엔 까미노”라고 답하며 입꼬리만 겨우 올렸다. 발은 여전히 돌덩이 같았고 어깨는 무너질 것 같았지만 그들의 응원 덕분에 한 발 한 발 내디딜 수 있었다. 그들의 따뜻한 한마디가 등 뒤에서 부는 바람처럼 나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려 주는 것 같았다. 생면부지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걷는다는 게 얼떨떨했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동안 정말로 괜찮은 기분도 들었다.


그럼에도 도저히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은 자주 찾아왔다. 그럴 때는 배낭을 내려놓고 드러누워 쉬었다. 누울 수 있을만한 공간이 나오면 눕기부터 했다. 그러다 한 번은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쪽잠을 자고 나니 한결 걷는 게 수월해졌다. 그렇게 산 정상에 오를 때까지 3번에 걸쳐 2시간 정도 낮잠을 잤다. 자고 싶어서 잤다기보다는 저절로 잠이 쏟아졌다. 체력이 방전되면 쓰러지듯 잠들었다가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날씨가 좋았으니 망정이지 비가 왔으면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한 채 주저앉았을지도 모르겠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한동안 넋을 잃었다.


배가 고파지면 전날 저녁에 싸놓은 바게트와 감자튀김을 꺼내 먹었다. 식욕이 없어서 부족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눅눅해진 감자튀김을 씹으며,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하면 스틱부터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앞질러 가는 순례자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겁이 나서 뒤를 돌아보면 저 멀리 한두 명이 보이곤 했다.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할 때까지 제발 해가 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다행히 내리막은 가파른 대신 짧아서 금방 내려올 수 있었다.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 반이 넘어서였다. 낮잠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꼬박 10시간 이상을 걸은 셈이다. 산을 내려오니 큰 성처럼 생긴 웅장한 알베르게가 바로 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체크인을 하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순례자들이 보였다. 나는 줄을 선 순례자들 뒤에 털썩 주저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알베르게는 구식 건물과 신식 건물로 나뉘어 있는데 신식 건물의 침대는 일찍 도착한 순례자들 차지였다. 나는 구식 건물의 침대 중 2층 자리를 배정받았다. 그러고 보면 순례자들이 빨리 걷고 싶어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일찍 도착하면 좋은 알베르게와 침대 1층 칸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알베르게 봉사자인 오스피탈레로가 침대를 지정해주는 경우도 있다. 그때는 일찍 도착해도 2층 칸을 배정받기도 한다). 2층 칸을 쓰면 아픈 다리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데다 가방을 침대에 올리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마다 내려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나중에는 요령이 생겨서 모자를 침대에 걸고 거기에 필요한 물건들을 담아뒀다).


배정받은 침대 옆에 배낭을 내려놓고 샤워를 한 다음, 알베르게에서 판매하는 스틱과 슬리퍼부터 샀다. 체크인을 할 때 접수대 옆에서 스틱과 슬리퍼를 파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어쩜 그렇게 내게 필요한 물건들만 팔고 있었는지…). 그리고 배낭의 몇몇 짐들을 꺼내 버렸다. 잠옷 겸 평상복으로 챙겼던 옷 한두 벌을 버리고(낡은 옷을 챙겨갔기 때문에 아깝지는 않았다), 면봉 같은 자질구레한 것들도 버렸다. 두꺼운 가이드북은 버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오늘 도착한 론세스바예스 부분까지만 찢어버렸다.


'아침에 같이 걸었던 사람들도 이곳 어딘가에 있겠지.'


두 명의 한국인 순례자가 생각났지만 알베르게가 워낙 커서 찾아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저녁 7시에는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다리가 아파서 어기적거리며 걷는 건 나 혼자가 아니었다. 갑자기 근육통이 온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짧은 신음소리를 냈다.


저녁에 순례자 메뉴(Menu del Peregrino)를 제공하는 식당이 많다. 가격은 10-15유로 정도.


직원의 안내를 받아 앉은 식탁에는 처음 보는 한국인 3명이 일행인 듯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50대와 3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과 20대쯤으로 보이는 여자 한 명이었다. 영어를 못해서 걱정이었는데 순례길에 이렇게 한국인이 많다니 답답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들은 내게 친근하게 말을 걸며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50대 남자의 이름은 임사장으로 중소기업 사장이었고, 30대 남자의 이름은 신우로 대기업 휴직자라고 했다. 20대 여자는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여행을 위해 간호사 일을 그만두고 스페인으로 날아왔으며 이름은 이슬이라고 했다. 나는 나를 소개할 마땅한 직업이 없어서 이름이랑 나이 정도만 우물거렸다. 그들이 서로 친해 보여서 원래 알던 사이인지 물으니 다들 혼자 왔다가 생장으로 오는 길에 만나게 됐다고 한다.

"아까 산 정상에서 자고 있던 사람 맞죠? 멋있어 보였어요."


신우가 내게 말했다. 산 정상에 도착해 여유롭게 자고 있던 모습이 진정한 여행자의 모습 같았다고 했다.

"네?"


난 깜짝 놀라 먹고 있던 음식 맛까지 잊을 정도였다. 산을 넘는 동안 여유로운 마음을 가졌던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과 사실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그러고 보니 정상에서 산을 막 내려가는 그들의 모습을 잠결에 어렴풋이 본 것도 같았다. 들어보니 그들은 어제 산 중턱에 있는 오리손 산장에서 묵었는데 술을 많이 마시고 늦게 일어난 탓에 아침 9시쯤에 출발했다고 했다. 그럼 그렇지. 내가 그들보다 먼저 정상에 오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같이 걷자고 말해줬지만 오늘 새벽 일이 생각나기도 해서, 혼자 걷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했다. 앞으로 순례길의 절반을 그들과 같이 걷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낮에 전투적으로 걷던 순례길과 대비되는 오후의 달콤한 휴식이 낮 동안 쌓인 피로를 씻어 주었다. 저녁을 먹은 후 임사장은 내게 스틱 잡는 법을 알려줬다. 잠들기 전, 어제 순례자 사무실에서 받았던 고도표를 보니 당분간은 오르막이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 이어졌다.


'오늘만큼 힘든 날은 당분간 없겠구나.'


제일 힘든 날을 무사히 보냈으니 앞으로도 어떻게든 걸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콩알만 한 자신감이 생겼다.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팠지만 지나온 큰 산 하나만큼의 걱정이 덜어졌다. 내일은 27km를 걸어 라라소냐까지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내 마음에 박힌 별, 산티아고> 책 내용 중 일부입니다.


<내 마음에 박힌 별, 산티아고> 목차







이전 02화산티아고로 도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