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여행의 가벼움
늘 충동적이었던 지난 여행의 기록들
20살 이후로 경험한 첫 해외여행이란 유럽 배낭여행이었다. 처음 떠나는 유럽이라 마음도 달뜨고, 친구와의 장기 여행도 처음이었기에 A부터 Z까지 꼼꼼하게 여행 계획을 세웠더랬다. 빼곡한 계획을 모두 지키기 위해 거의 국토순례급으로 움직였던 당시, 나는 깨달았다. 계획적인 여행은 내 성향과 정말 맞지 않는다는 걸! 어차피 여행에는 변수도 많고 (특히 장기 여행일수록), 계획에는 넣었지만 막상 여행 중에 가고 싶지 않은 곳도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에 나는 그냥 여행지에서의 마음을 따르기로 하는 편이다. 여행을 떠나는 그 시점도 마찬가지. ‘탁’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항공권을 끊어버리고 마는 성향. 다만, 항공권이 비싸니까 고민은 한다. 그렇지만 지난날을 돌아보면, 가격에 고민하다가도 결국에는 하는 쪽에 가깝긴 하지 싶다.
33살이 되어 처음 돌아본다. 나의 ’참을 수 없는 여행의 가벼움’을.
1. 충동적인 여행의 시작, 호주 일주
휴학 후, 약 1년간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했다. 10개월은 멜버른에서 생활을, 남은 2개월은 호주 곳곳을 돌아다녔다. 내 인생에서 가장 충동적이었고, 또 그렇게 움직여도 별 리스크가 없었던 때였지 싶다. 이동 수단만 결제하고 숙소는 출발 전날에 예약할 정도로 계획성은 제로였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시드니를 시작으로, 골드코스트, 브리즈번, 애들레이드, 다윈, 앨리스 스프링스, 퍼스, 호바트, 케언즈로 이어졌다. 다윈에서 급하게 싱가포르와 발리를 다녀오기도 하고. 아무튼간에 도시에서 도시를 꽤 많이 이동했다. 그렇게 자유롭게 움직여도 무섭지 않았던 것은 대학생 때의 패기도 한몫했을 것이다. 뭐, 사실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에 너무 게을렀던 것이 더 적합한 설명이겠지만.
생각 없이 움직이는 통에 예기치 않은 사고도 꽤 있었다. 나 혼자 숲길을 헤쳐 보타닉 가든을 가보겠다며 (편한 버스가 있는데도!) 길을 찾다가 오솔길에서 바바리맨(?)을 만나고 식겁해서 도망 나왔던 적도 있다. 이 일로 케언즈 경찰서에서 처음으로 조서라는 것을 써봤다 (이틀 후 케언즈 경찰이 그를 검거했다). 한밤 중에 앨리스 스프링스에서 다윈으로 넘어가는 고속버스를 탔는데, 유일한 고속도로가 사고로 통행이 막히기도 했다. 새벽에 휴게소에서 버스가 출발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오밤중이라 조금 무서웠다. 낮이라면 조금 괜찮았을 텐데.
골드코스트에서도 밤까지 해변가를 쏘다니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다가, 막차를 놓칠뻔하기도 했다. 물론 숙소를 잡으면 되긴 하겠지만, 또 시간이 밤이라 숙소를 다시 구하는 것도 일이었다.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택시비는 택시비대로 썼더랬다. 막차 시간을 확인만 했어도 괜히 택시비를 날리지 않아도 되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너무나 무계획이었다.
그렇게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만든 여행이라, 여행에서 많이 듣던 노래인 pitbull의 timber만 들으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맞은 멜버른의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 시드니에서 묵던 게스트하우스, 퍼스의 붐비는 광장 등등. 어쨌거나 20대 초반이라 더 용감했었던, 한편으로는 계획에 너무도 무감해서 위험한 순간을 만든 조심성 없던 여행이었다.
2. 2018년 3월, 대만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 채 1년이 안되었을 당시, 취직 후의 첫 해외여행에 나름 목말라 있을 때였다. 시기는 2월 말, 집 이사 전에 당장 떠나고 싶은데 가깝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어디 있을까 찾다가 발견한 곳이 대만이었다. 친구들과 스케줄을 맞추기도 쉽지 않고, 나는 당장 떠날 생각으로 대만 여행을 결정했다. 떠나기 2주일 전에야 비행기를 부랴부랴 예약하는 통에, 역시나 항공권은 비쌌다. 당연히 숙소도 저렴하지 않았다. 돈은 돈 대로 쓴, 생각보다 꽤 낭비를 할 수밖에 없었던 여행이었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결정한 여행에서 나와 같은 시기에 친한 팀장님 또한 대만으로 여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친한 팀장님이라 부담이 덜해서 맛있는 음식이나 얻어먹을 요량으로 팀장님과 조우했다. 사무실이 아닌 여행지에서 회사 사람과 조우하는 것이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팀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회사에서 갖춰야 할 태도나, 회사 생활의 꿀팁 아닌 꿀팁을 전수받았다. 망고 빙수를 먹으면서, 곱창 국수를 먹으면서 말이다. 충동적으로 결정하지 않았다면 그런 기회 또한 없었을 것이라는 정신 승리를 해본다.
3. 2023년 5월, 바르셀로나
이직이 결정되고 난 후의 바르셀로나 여행 역시 매우 충동적이었다. 여행을 가긴 가야겠고, 그렇다고 3주라는 긴 시간을 쉴 수 있는데 몇 시간이면 닿을 외국은 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역시, 유럽이었다. 파리 해외 출장 이후 근 5년 만의 유럽은 말해 뭐 할까. 무척이나 설렜다. 이번에는 예전의 배낭여행처럼 한 도시를 채 감상하기도 전에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한 도시에만 제대로 머물며 마냥 게을러지고 싶었던 것이다. 유럽의 어느 도시를 갈지 결정하지도 않았고, 나는 그냥 유럽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출발 2주 전의 일이었고, 유럽의 나를 상상하는 일은 두근두근했다.
스카이스캐너에서 본격적으로 항공권을 검색하면서부터는 심장이 떨려서 두근두근했다. 가고 싶은 도시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유럽 아무 도시나 나열한 후에 항공권 가격이 낮은 순으로 가도 언감생심일 판이었다. 그래서 결정한 곳이 바르셀로나였고, 항공권은 200만 원이었다. 일본에서 출발하는 항공권이라서 더 비쌌는지도 모르겠다. 바르셀로나에서 얼마를 써야 할지 머릿속으로 계산하면 머리가 아파져서 어느 순간 생각을 멈췄다. 후회 없이 즐기고 오자는 마음만 안고 떠난 여행이었다.
항공권이 비싸니 쇼핑은 안 하겠다는 마음도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속절없이 무너졌다. 충동구매를 거부하기에는 바르셀로나에 예쁜 편집샵과 소품샵들이 너무 많았다! 원래 나란 사람은 오프라인에서의 옷 쇼핑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데 (입고 벗는 것이 귀찮아서다. 나를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나는 참 게으르고, 사람들은 참 부지런하다!) 바르셀로나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지름신의 강림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 통장 잔고를 고려해서 명품을 사지는 않았고, 스페인에서만 구매할 수 있을 것 같은 독특한 제품들 위주로 샀다. 그곳에서 산 가방과 신발은 여행을 다녀온 지금까지도 잘 쓰고, 잘 신는다.
결론은 충동적으로 떠난 바르셀로나에서 마음은 충만하게 채웠고, 통장은 비웠다. 마음을 채운 여파는 꽤 커서, 이직 후 몇 개월간은 긴축 재정으로 살았다.
4. 2024년 3월, 나고야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답답한 사무실을 빨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 다른 때가 아닌 지금 가야 내가 정말 이 여행을 만족스럽게 다녀올 것 같다는 생각. 국내를 알아보기도 했지만, 나 혼자 일본으로 떠난 적은 한 번도 없어서 출발 2주일 전에 나고야행을 예약했다.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등 한국인들이 자주 가는 일본 도시들이 많았지만 나는 한국인이 최대한 없는 것으로 가고 싶었다. 볼거리가 없다고 소문난 곳이지만, 그래도 맛집은 많은 조용한 동네라는 나고야를 선택했다. 항공권 가격은 무려 42만 원. 포기해야 하는 것은 3박을 지낼 숙소의 퀄리티였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다가는 다음 달의 내가 너무 힘들어질 것 같아서,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기로 했다.
그렇게 떠난 나 홀로 첫 일본 여행은 꽤 만족스러웠다. 일단 맛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고, 도시 자체도 만족스러웠다. 조용한 도시지만 내 기준에서는 골목이나 거리가 참 예뻐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날씨도 나쁘지 않아서 더 즐겁게 여행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우리나라에서는 꽤나 비싸지만, 일본 현지에서는 저렴한 브랜드의 양말을 구매한 것도 만족스러웠다. 어쨌거나 이 양말을 신으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
그렇지만 이제 일본 항공권에 40만 원 넘게 결제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평일 기준으로 조금 일찍 항공권을 예약하면 저렴하게는 왕복 14만 원 언저리에도 갈 수 있다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되면서부터다.
내 여행은 대부분 나의 ‘충동’에서 시작되었고, 돌아온 후에 나의 마음은 언제나 풍족해졌지만 지갑 사정은 얄팍해지는 순환 고리에 있었다. 조금 더 계획성 있게 움직여도 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MBTI 중 극 P의 성향을 가진 나의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여행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는지. 이렇게 하는 것이 현명한 건지. 생활인으로 돌아갔을 때의 나는 늘 그 점이 고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