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더 와이어> 완주

인생 미드가 되어버림

by 안뇽안뇽안늉

명품 미드라고 불리는 HBO의 <더 와이어>, 많이 들은 터라 정주행을 시작해보고 싶었다. 시즌제 드라마보다는 10화 이내로 종결되는 리미티드 시리즈를 개인적으로 선호하지만, 쿠팡플레이가 HBO 프로그램을 들여오면서부터 한번 봐야지 하며 눈여겨보고는 있었다. 사실 몇 년 전에도 시즌 1부터 시도해 봤지만 2화를 넘어가지 못하고 중도 하차했었더랬다. 단순 수사물이라고 생각해서 흥미가 금세 떨어진 데다 볼티모어의 경제적/사회적 환경이 나와는 거리가 먼 어느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초반부부터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며 시선을 혼란하게 하는 터라 영 나와는 맞지 않은 장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작년 말.. 홀린 듯 더 와이어를 시작했고... 바로 며칠 전 시즌5까지 정주행 했다. (시즌2는 다소 이질적이라 시즌2를 끝내고 나서 조금 쉬다가 시즌3 시작) 결론은.... 정말 잘 만든 수작, 인생 최고 미드라는 것이다. 시즌 1 초반부, 나를 하차하게 했던 그 혼란함이 사실 <더 와이어>의 진정한 매력이다.


<더 와이어>에는 주인공이 없다(있지만, 사실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지미 맥널티'라는 볼티모어 강력반 형사가 시즌 1 초반부에서 극을 이끌어가긴 하지만 에피소드와 시즌을 거듭할수록 그의 역할은 축소되고 어느 지점부터는 그가 볼티모어를 구성하는 인물들 중 하나에 불과해 보인다. 이 또한 극적 구성이 매우 치밀하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에피소드 당 하나의 중심 사건이 일어나고, 이를 해결하는 일반적인 드라마의 문법에서 벗어나 다양한 캐릭터들(정말 셀 수도 없이 많은)이 등장해 각각의 이야기가 에피소드 하나에 모두 등장하기 때문에 빈번하게 화면 전환이 일어나며, 그 속도도 빠르다.

이러한 이야기 구성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은 모든 캐릭터에 설득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수사관, 형사, 갱, 그리고 볼티모어 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구성하는 모든 인물들은 각자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사연을 가지고 있고 드라마는 이를 시청자에게 설득하는 데에 성공한 듯 보인다. 소외된 캐릭터 없이 모두를 비추는 이 드라마 속에서 본인만의 방식으로 볼티모어 사회에서 살아남고자 아등바등하는 모습은 어떤 드라마 속 캐릭터보다 입체적이고 다분히 생기 넘친다. 매력적인 점은 형사와 갱처럼 쫓고 쫓기는 관계일지라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인데 (특히 어린 갱들-수사관의 관계처럼) 이는 그들 모두가 볼티모어의 빈곤 지역을 이루는 구성원들이며 사회와 정치로부터 느끼는 소외감을 함께 겪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더 와이어>는 인물들의 스토리와 상호간의 관계가 구축되는 과정을 세세하게 조명하면서 절대적 선과 악의 경계를 없앴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시스템에 주목하게 한다.


<더 와이어>는 다섯 개의 시즌에 걸쳐서 교육, 언론, 노동, 정치 등 볼티모어가 안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정치적 문제를 각 시즌의 핵심 소재로 다룬다. 각 시스템 구성원들을 매 시즌 새롭게 등장시켜 왜 볼티모어의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지 인물들을 통해 충실하게 설명한다. 볼티모어의 교육과 치안 문제를 개혁하려 했지만 부족한 예산 문제로 이전의 실수를 되풀이하는 시장, 자극적인 기사가 돈이 되는 세태 속에서 이야기를 창작하기에 이른 기자, 거리에서 마약을 파는 청소년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려주고 싶어 하는 봉사자 등 수많은 인물들이 문제 많은 사회적 시스템 속에서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애를 쓰지만 그 모든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에 불과하다. 정치와 경제가, 교육이, 범죄가, 언론이 촘촘하게 얽혀있어서 하나만 잘못되어도 사회 전체가 망가져 버리는 난제를 드라마는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내지만 그렇다고 해답을 주지도 않는다. 무엇 하나 명쾌하게 해결되는 것이 없어서 인물들은 시청자들이 우려하는 지점을 극복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데 사실 해결된다면 그 자체가 판타지일 것이다. 볼티모어의 문제는 지금도 계속 현재 진행형이고, 오히려 복지는 더욱 축소되고 계층 간 갈등은 더욱 심화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드라마이기에 개선의 여지가 보이는 몇몇 캐릭터로 낙관적인 결말을 기대하게 하지만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극악의' 리얼리티로 시청자에게 다시금 좌절감을 안긴다. '마약'과 '갱'이라는 소재만 들어내면 우리 사회가 반성해야 할 지점 또한 드라마를 통해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약자, 소외 계층을 만드는 문제 많은 시스템은 우리나라에도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시즌 4가 제일 좋았다. 보면서 눈물 ㅠㅠ... 교육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시즌 4에서는 수많은 거리의 아이들이 등장하는데 현실과 동떨어진 교육 제도는 거칠게 자라온 아이들의 성취 욕구를 독려하는 데에 완전히 실패하고,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지도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약과 폭력으로 점철된 이들의 성장 환경과 있느니만 못한 교육 제도 안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을 거리로 내모는 것은 과연 아이들의 개인적 문제인지, 아니면 우리 모두가 해결해야 하는 시스템의 실패인지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한다.


아무튼... 인생 미드 <더 와이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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