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본지가 무척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내 인생이란 너무도 무난해서 (물론 크고 작은 에피소드야 있었지만, 인생 전반의 흐름을 봤을 때에 큰 변화는 없었다는 뜻) 크게 바닥을 칠 일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행복감에 고양되었던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있었겠으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면 무척이나 오래되지 않았을까 한다. 그렇기에 기뻤던 일들을 떠올려야 한다면 너무 오랜 세월을 거슬러야 하므로, 타협해서 소소한 만족감 또한 기쁨이라는 감정의 범주 안에 넣어둔다면 나를 소소하게 기쁘게 하는 것들은 몇 가지 떠올릴 수 있다.
내향적인 인간은 의외로 '사람'에 의해서 기쁨과 만족감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외향과 내향이 반반씩 섞인 나지만 사람들과 있을 때보다 혼자 있을 때에 에너지를 충전하는 경향으로 보건대 E보다는 I쪽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최근에는 더 심해지고 있긴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결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서 더 큰 만족감을 느끼는 듯하다. 사교적인 시간 자체에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나와 잘 맞는 사람과 잘 맞지 않는 사람에 대한 감정의 편차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가치관이 너무 다르거나 유머 코드가 다르거나 등등 아무튼 간에 무언가의 '코드'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버티기도 힘들거니와 끝나고 오면 에너지를 다 소진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러고 나면 다음날이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혼자 쉬어야만 그제야 다음 주를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
반면 결이 맞는 사람들과의 시간은 그 자체로 즐겁다. 웬만해서는 먼저 나서서 사람들과의 시간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코드가 비슷한 사람들과의 시간이 역으로 더욱 귀하고 즐겁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마음을 쏟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나아가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이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이라면 이 또한 더없이 기쁠 것이다. 어찌 보면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새롭게 무언가를 알게 되는 것도 만족감을 준다. 하나라도 배웠다는 그 느낌이 좋은 것 같다. 취향이라고 하기에는 깊이가 없기에 너무 거창하지만, 그냥 뭔가 새로운 것 하나 알았다! 하는 느낌표의 지점 정도, 그것이 좋다. 그렇게 일본 드라마에도 취미가 붙었고, GV 행사를 기웃대는 데에도 재미가 붙었으며, 가장 최근에는 내가 모르는 좋은 노래들을 들어보는 것에 흥미가 생겼다(음악 1도 모름). 일단 들어보고 시작하는 거지 뭐...
인스타에 계속 뜨는 ROSALIA라는 스페인 가수의 최근 앨범 하나를 들어보면서 '아~ 어렵지만 신기한 노래군~'을 느꼈고, 뜬금없이 랩을 듣고 싶어서 찾아보다가 힙합의 클래식이라는 Snoop Dogg의 앨범 Doggy style을 감상해 봤다. 그 덕에 몇 년간 처박아뒀던 블루투스 스피커도 다시 꺼냄...
거듭 강조하지만 깊이는 1도 없다. 누가 힙합에 대해 물어보면 '저는 다이나믹 듀오가 좋아요' 정도밖에 대답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냥 알아가는 과정, 그게 좋다.
일에서 만족감을 느꼈던 적은 돌아보면 크게 없는 것 같다. 물론 프로젝트에 성공하면 당장 그 순간에는 만족스럽지만 당장 처리해야 하는 업무에 잠식되다 보면 잠깐 느꼈던 만족감은 어느새 없어지고 부담감이나 매너리즘 같은 것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스타트업에서 신규 사업을 확장하는 시점에 이것저것 해보던 때가 유일하게 일에서 재미를 발견했던 것 같은데,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거냐고 물으면 아니올시다. 안정적이지 않은 조직에 있을 때 느끼는 불안이 이내 좋은 감정들을 통째로 흡수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5일을 '일'이라는 것에 쓰는데 기쁠 때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 어찌 보면 대단히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돌아보면 출퇴근으로 점철된 오늘 하루가 만족스러웠던 날은 티타임 때 사람들과 많이 웃었던 날이라든가, 혹은 힘들지만 서로서로를 다독여줬을 때였던 것 같다. 일은 힘들어도 버티지만 사람이 힘들면 못 버틴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기에 일을 버티게 해주는 것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고로 혼자 있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내가 좋은 사람들과의 시간에서 큰 만족감을 얻는다면 매우 모순적인 결론이 아닌가 하지만.. 원래 인간은 모순적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