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그대로의 자연으로 머물러 주길…
내 생에 첫 해외 여행지는 말레이시아의 코타키나발루(Kota Kinabalu)였다. 지금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관광지 중 하나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이름 한번 들어본 적 없는 생경한 섬이었다. 그런 섬에 가고 싶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는 특별하지 않았다. 말레이시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온 회사 동료가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아놓은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동료는 코타키나발루는 외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천국의 섬'이라고 지나가듯 이야기했다. 그게 전부였다. 그때부터 언젠가 해외여행을 가게 된다면 가장 먼저 그 섬에 가겠노라 마음먹었더랬다.
정확히 반년 후 해외여행 무경험자의 단순함과 용기를 장착한 나는 코타키나발루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결과는?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평화롭고 한가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현지인들은 친절했고, 음식은 맛있었으며 물가도 무척 저렴했다. 평소에는 구경하기도 힘든 열대과일도 원 없이 먹었다. 무엇보다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 마음에 들었다. 호핑 투어(섬과 바다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는 여행) 중에 스노클링을 하면서 처음으로 열대 바닷속 아름다운 산호와 다양한 물고기들 사이로 헤엄치는 황홀경을 경험했다.
그 후 한 해 걸러 한 번씩 코타키나발루를 찾았다. 하지만 다섯 번째 방문이 마지막이었다. 오랜 인연이 막을 내렸다. 그사이 한국과 중국 관광객에게 인기 많은 관광지가 된 코타키나발루는 점점 예전 모습을 잃어갔다. 특히 아름답고 깨끗한 바다가 해마다 죽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몇 걸음만 옮겨도 예쁜 산호와 귀여운 열대어들을 만날 수 있었던 생명의 바다가 언제부턴가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차가운 회색 세상으로 변해버렸다. 코타키나발루를 아끼고 사랑하던 여행자로서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천혜(天惠)의 섬 제주, 그리고 제주에 부속된 섬 중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우도를 볼 때마다 잊고 있던 코타키나발루가 떠오른다. 아내가 여자 친구였을 때 처음 제주를 찾은 이후 우리가 사랑했던 제주의 여러 공간 가운데 첫인상과 가장 이질적인 모습으로 변해버린 곳이 우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억이란 때론 주관적이고 왜곡되기 쉬어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 불완전하지만 의존할 것은 이것밖에 없으니 옛 기억을 좇아보련다. 처음 우도를 찾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예쁘고 근사한 카페나 레스토랑은 말할 것도 없고 허름한 식당조차 많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유행이 된 여행 열풍을 타고 허름한, 정겹고 운치 있는, 민박 수준을 넘어 우후죽순처럼 퍼진 고급 펜션도 우도에서는 이제 막 첫 삽을 뜨던 시기였다. 우도는 자연 그대로의 자연에 가까웠다.
허름한 식당에서 소박하게 나온 반찬들은 정갈하고 맛 좋았다.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서 먹는 미역국과 칼국수도 줄 서서 먹는 맛집처럼 맛만큼은 뒤지지 않았다. 외할머니처럼, 엄마처럼 주인아주머니 인심도 넘쳐흘렀다. 구멍가게를 지나도, 기념품 가게를 지나도 우도 땅콩 한 줌씩을 손에 쥐어 주셨다. 시골 인심이 야박해졌다는 말은 우도를 피해 갔다. 넉넉함이 전해지는 여행자의 쉼터, 그곳이 우도였다.
한 밤 중 우도는 무서울 정도로 컴컴했다. 숙소를 조금만 벗어나도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무심코 눈을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누가 설탕처럼 촘촘하게 별들을 심어 놓았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잡으려고 한 적이 있었다. 첫 경험은 군대에서 처음 야간 사격을 나갔을 때였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은 우도에서였다. 그때는 아직 순수했었다. 그토록 밝게 빛나는 수많은 별들을,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조차도 본 기억이 없었다. 한동안 별빛 샤워를 하다 보니 더는 짙은 어둠이 두렵지 않았다. 나와 내가 아닌 것의 구분이 점점 모호해졌다. 어디까지가 나고, 어디까지가 내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순간이었다.
꿈을 꾼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꿈과 꿈이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없었다. 우도는 내게 '환상의 섬'이었다.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에도 간간이 우도를 찾았더랬다. 편리함이 늘어갈수록 우도는 변해갔다. 아무것도 없는 섬, 여행자들의 쉼터 같은 섬은 어디에도 없었다. 언제부턴가 우도 입도가 내키지 않았다. 그저 성산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제주 한달살이를 하면서 다시 찾은 우도는 기억 속의 우도와는 완전히 달랐다. 옛 추억에 젖어 우도봉을 산책하려던 설렘은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소가 누워있는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일찍부터 소섬 또는 쉐섬으로 불린 우도는 오랜 세월 사람이 살지 않던 무인도였다. 옛 기록에는 종종 염소를 기르는 사람이 이곳까지 들어오기는 했지만 조선 후기(헌종 8년, 1842년)가 되어서야 비로소 사람이 정착해 살기 시작했다. 화산섬인 우도 역시 본섬인 제주와 마찬가지로 농작물이 자라기 어려운 환경이다. 드넓은 농지를 놀릴 수도 없으니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땅콩을 심었단다. 이제 땅콩은 우도의 특급 관광상품이 되었다. 땅은 척박해도 우도 자연환경은 제주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뛰어나다. 한 해에 무려 200만 명의 관광객이 이 작은 섬 속의 섬을 찾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지만 우도는 조금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관광객으로 인한 극심한 교통난과 쓰레기난으로 원주민들이 받는 피해는 점점 늘어났다. 과도한 경쟁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상술로 우도를 찾은 여행자의 발길을 돌리게 만들기도 했다. 우도를 찾은 사람도, 그들을 맞이하는 사람도 모두 즐겁지 않았다. 그럼에도 관광객은 끊이지 않았다. 다행히 몇 해 전부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외부차량 반입 제한 조치를 내리기도 했지만 (1~3급 장애인과 만 65세 이상 노약자, 임산부, 만 6세 미만의 영유아를 동반하는 경우와 우도에 숙박하는 관광객이 탄 렌터카는 반입 가능) 여전히 우도는 찾는 사람은 많은데,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은 섬이 되어 버렸다.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우도를 거니는 여행자들의 표정에서 예전만큼 즐거움과 편안함을 발견하기 힘들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우도 곳곳에 예쁜 카페와 레스토랑도 많이 생겼다. 맛집도 늘어났고 땅콩 아이스크림 체인점도 생겨났다. 대부분 SNS에서 화제가 되었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우도의 여백들이 빈틈없이 빽빽하게 채워져 갔다. 우도가 숨 쉬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안타까웠다. 외부차량은 못 들어와도 자전거를 비롯해 전기 자전거, 미니 전기차 등이 우도 올레길을 가득 채웠다. 작고 좁은 섬은 많은 사람과 많은 물건들을 토해냈다. 옛 추억을 되살리려 자전거 섬 일주를 시도했지만 일부 구간은 너무 붐비고 사고 위험까지 있어 온통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아이들 안전이 신경 쓰여 불안했다. 역설적이게도 편리함으로 가득 찬 우도는 무척 불편했다.
여전히 우도는 아름다웠다. 홍조단괴로 이루어진 서빈백사는 눈이 부셨다. 우도봉 향하는 오르막길도 정겨웠다. 우도봉 남동쪽 해안절벽에 동안경굴과 그 앞에 검은 해변이라는 뜻의 검멀레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켰다. 동안경굴은 동쪽 절벽에 있는 고래굴이라는 뜻인데 원주민들은 소의 콧구멍을 닮았다고 해서 검은코꾸망이라 부르기도 했다. 해수욕하기 좋은 하고수동해안, 짓궂은 소나기가 쏟아지면 꼭 가봐야 하는 비와사폭포(엉또폭포처럼 비가 와야 볼 수 있는 해안 폭포) 등 우도 절경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그런 절경을 그대로 두고 서둘러 섬을 빠져나와야 했다. 아내도 아이들도 조금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도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없었다. 도망치듯 우도를 빠져나왔다.
어쩌면 우도는 아프다고, 쉬고 싶다고 오래전부터 이야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바람 소리에, 파도 소리에 실어 우리에게 전하려고 했는지도.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오래전 자연과 교감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위로받고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자연과 하나가 되어 가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는 존재다. 여행은 자연으로 한 걸음 다가서서 자신과 세상의 존재를 온몸으로 느껴보는 시간이다. 자연과 공존하지 않으면 인간은 결코 혼자서 행복해질 수 없다. 코로나는 아주 사소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코타키나발루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우도는 그대로 둘 수 없다. 우도가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시간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쏟아지는 별들을 다시 한번 품어보고 싶다. 그곳이 우도면 좋겠다. 여행자를 꿈꾸게 하는, 우도는 자연을 닮은 섬으로 머물러 주길 바란다.
코로나 사태가 일어난 후 계획했던 제주 여행을 취소했다. 유별난 제주 사랑 덕분에 울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한달살이를 통해 경험한 제주의 많은 장소들 가운데 꼭 다시 가보리라 마음먹었던 곳들을 선별해서 '제주에 가고 싶다'라는 글로 담았다. 쓰면 쓸수록 제주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했다. 하루빨리 펜데믹이 종식되어 제주의 바다와 오름을 마음껏 뛰어보고 싶다.
우도 편을 마지막으로 '제주에 가고 싶다'는 끝을 맺는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6개월이 다되어 간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만큼 문장은 좋아지지 않았으나 재촉한다고 되는 일이 아님을 잘 안다. 쓰고 또 써 보련다. 다음에는 한층 나아진 문장들로 독자분들과 만나 뵙게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