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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Sep 30. 2021

너의 이름은…

내 휴대폰에 저장된 아내 이름과 아내 휴대폰에 저장된 내 이름의 온도차

 내 휴대폰에 아내는 아주 오랫동안 '하늘 같은 싸모님'으로 저장되어 있다. 특별한 사연이 담긴 이름이었다. 학교 다닐 때 나는 아내에게 '도서관 자리 맡아주는 좋은 선배'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마치 백 만개의 형광등을 켜놓은 듯 자체 발광하는 수려한 미모를 뽐내던 아내는 복학생인 내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졸업 후 아내에게 끈질기게 구애했다. 아내는 시큰둥했다. 행운과 기적, 그리고 열정과 끈기가 씨줄과 날줄처럼 무수히 교차한 끝에 간신히 결혼에 성공했다. 친구들이 가능성이 제로에 수렴했던 일을 해냈다며 인간 승리라고 했다. 세상에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은 없다는 좋은 선례를 만들었다. 


 호사다마(好事多魔), 좋은 일에는 안 좋은 일들이 따르기 마련이다.


 허니문 기간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매일 싸웠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사소한 이유에서였다.(이 에피소드 중 일부과 브런치북 '너와 나의 연애소설'에 소재로 쓰였다)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던 아내가 어느새 눈엣가시가 되었다.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긴장은 짜증을 낳았고, 짜증은 분노를 낳았으며, 분노는 다시 증오를 낳았다. 증오를 품은 날들이었다. 사랑밖에 몰랐던 가슴에 어느새 날카로운 비수가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썩은 해골물을 마시지 않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음이 내게 왔다. 찾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구하려고 한 것도 아니니 '저절로 왔다'라는 표현이 가장 적확하다. 불교 용어로 말하면 돈오(頓悟)였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꺼이 낮은 곳에 임하기로 했다. 아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늘처럼 받들겠습니다." 그날 이후, 휴대폰에 저장된 아내 이름이 '하늘 같은 싸모님'으로 바뀌었다. 신기하게도 이 날 이후 우리는 단 한 차례도 싸우지 않았다. 사소한 말다툼조차 없었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나는 가끔 아내 앞에 무릎 꿇었던 날을 기억한다. 그날의 날씨, 그날의 공기가 여전히 생생하다. 심지어 몇 시 몇 분이었는지 아내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까지도. 인간은 불과 며칠 전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망각'이라는 진화의 산물을 선물로 받았지만, 아직도 똑똑하게 기억하는 걸 보면 그날이 내 삶에 어떤 이정표나 전환점이 된 게 분명했다. 오랫동안 나는 우리 부부의 사랑과 평화가 그날의 내 일방적인 사과와 아내를 하늘로 받들겠다는 맹세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었다. 외형상 평화 조약이었지만, 실상은 불평등한 강화 조약이었고 그것이 나의 '자기희생'을 통해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에 내심 뿌듯해했다. 돌보지 않음으로 돌보았고 그렇게 우리의 우주를 지켜냈다고.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았고 나를 내려놓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내가 한 일이라곤 그저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었다. 입은 하나, 귀가 둘인 이유였다. 마음속에 담은 말을 입으로 뱉지 않는 대신 아내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야근으로 늦게 퇴근하는 날이 많았지만, 어쩌다 일찍 퇴근하면 아내 손을 잡고 동네 산책을 하며 그날 회사에서 있었던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집 근처 선술집에서 생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고, 주말이면 함께 좋아하는 영화를 보았다. 물론 하지 않은 것도 있다. 아내의 서툰 음식에 대한 솔직한 평가. 그렇다. 미각을 잃었지만 행복을 얻지 않았던가! 우리는 선후배에서 부부가 되었고, 다시 삶이라는 긴 여정의 길동무가 되었다. 때로는 서로의 하늘이 되었고, 때로는 서로의 그늘이 되어 주었다. 


 어느 날 문득 궁금했다. 아내 휴대폰에 나는 어떤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을까?


 오랜 결혼 생활 한 번도 궁금하지 않았던 질문이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찾아왔다. 어쩌면 영원히 열지 말았어야 할 판도라의 상자였을지도 모르겠다. 다소 긴장된 마음으로 아내 휴대폰을 확인했다. 전화번호부를 확인하니 달랑 내 이름 석자 그대로 저장되어 있었다. "하늘 같은 서방님"은 바라지도 않았다. 결혼해서 한 번도 '여보, 당신'이라는 호칭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아내의 이름을 불러주었고, 아내는 '오빠'라고 불렀다. '누구누구 엄마'라고 불리는 건 한 인간으로서 그녀를 지워버리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다. 어렸을 때 우리 어머니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불리는 게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누나 많은 집에 막내로 태어나서 여동생이 없었고 오빠라고 불리는 게 좋았다. 그러니 그저 '오빠'라고 저장되어 있어도 그토록 서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름 석자로 저장되어 있다는 건 왠지 부부 사이, 가족 사이라기보다 공적인 관계처럼 느껴졌다. 하물며 회사 동료는 이름 옆에 직함이라도 붙여주지 않던가! 아내는 '허니'나 '여봉'처럼 닭살 돋는 애칭(별칭)을 부르는 걸 만행(蠻行)이라 여겼다. 그래도 이름 석자로 저장하는 건 너무 하지 않나 싶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지난 십수 년의 결혼 생활이 거짓처럼 느껴졌다 는 아니고 그냥 조금 섭섭했다. 그래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아내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아니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을 해내리라 마음먹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하늘 같은 싸모님'에서 '하늘 같은'을 삭제했다. 통쾌하리라는 기대와 달리 마음 한 구석이 찜찜했다. 그래도 다시 그 단어를 붙이지 못하리라 짐작했다. 오늘도 내 휴대폰 속 아내 이름은 '싸모님'으로 저장되어 있다. 


 그리고 아내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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