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라떼는 말이야…' 좀 구시렁거리려 합니다.
그간 쓰려고 했으나 쓰지 못한 글들이 제법 많습니다.
'언어와 문장의 쓰나미' 속에서 글보단 행동으로 보여주자 싶었습니다.
더군다나 새해에는 '문학'이라는 본질에 더 집중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브런치에 결국 이런 내용을 첫 글로 선보입니다.
마음이 편치는 않습니다.
군 시절 보직이 '작전병'이었습니다.
본부 중대 소속으로 대대 지휘통제실에서 근무했습니다.
작전병이란 말이 왠지 멋져 보입니다만, 실상은 문서병 혹은 워드병이었습니다.
'작전계획 OOOO'을 만들고, 상급 부대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 주된 업무였습니다.
K-2 소총을 드는 대신, 컴퓨터 자판기가 무기였습니다.
대대장과 작전장교가 지시한 일을 처리하느라 야근을 밥 먹듯 했습니다.
당연히 낮 시간대에는 취침할 수밖에 없었더랬습니다.
야근이 많던 본부 중대에서도 '열외'를 가장 많이 한 병사가 바로 저였습니다.
후임병 중에 '교육'을 담당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교육계라고 불렀습니다.
주간, 월간, 연간 병사들의 '교육 훈련'을 계획하는 것이 이 후임병의 주된 업무였습니다.
병사 각자의 보직에 맞는 교육 훈련을 계획할 뿐만 아니라,
행군, 각개전투, 사격 등등 다양한 훈련을 마련했습니다.
작성된 훈련 일정은 하급 부대(중대)에 명령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중대 병사의 하루하루 일정이 이 후임병에게 달려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후임병과 함께 야근을 했습니다.
한창 문서 작업을 하는데, 후임병이 별안간 묻습니다.
"홍병장님, 다음 주 본부 중대 교육 훈련 있는데 뭘 하면 좋을까요?"
본부 중대는 일반 중대와 달리 교육 훈련이 많지 않습니다.
늦여름이지만 아직 무더위가 기승부릴 때였습니다.
조금이나마 몸이 편한 훈련을 받는 게 어떨까 하는 의도가 담긴 질문이었습니다.
늘 열외 하던 터라 제가 교육 훈련에 참여할 확률은 제로에 수렴했습니다.
머릿속에 나쁜, 아니 기특한 생각 하나가 번쩍였습니다.
"요즘 애들 체력이 시원치 않은 것 같은데, 오랜만에 각개전투 한 번 어때? 야간 행군도 좋고."
"진짜요? 애들이 싫어할 텐데...."
"군인이 싫은 게 어딨어. 그리고 어차피 한 번은 해야 할 건데 일찍 하면 좋지."
결국 그 주에 각개전투와 야간 행군이 모두 잡혔습니다.
본부 중대 교육 훈련치고 다소 이례적인(힘든) 일정이었습니다.
느슨해진 본부 중대원들이 모처럼 참된 군인으로 거듭나길 바랐습니다.
열외 당해야 할 운명에 한숨을 토하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각개전투와 야간 행군 모두 참여했습니다.
작전 장교가 "홍병장, 요즘 체력이 영 시원치 않아. 이번 주는 교육 훈련 좀 참여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방백처럼 읊조렸기 때문입니다.
군대 다녀온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각개전투와 야간 행군은 정말, 정말, 정말 힘든 훈련입니다.
작은 산 전체가 각개전투장입니다.
몇 번을 뛰어 오르내려야 하고, 포복으로 이동해야 할 때도 많습니다.
온몸에 퍼런 멍이 드는 게 너무 자연스럽습니다.
야간 행군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습니다.
꾸벅꾸벅 졸며 영원히 도착할 것 같지 않은 목적지를 향해 걷고 또 걸어야 합니다.
그것도 대부분 산길입니다.
분명 내 다리인데 남의 다리가 됩니다.
가끔은 걷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게 됩니다.
앞에서 걸어가는 전우의 흐릿한 실루엣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교육계의 훈련 계획 한 줄이 병사에게 끼치는 영향을 말입니다.
그토록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일에 함부로 끼어들면 안 되는 거였습니다.
지난주의 저를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릅니다.
군대란 그런 곳입니다.
상명하복, 명령은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의미 없는 명령은 없으며, 사심이 끼어들면 안 됩니다.
한 줄의 명령에도 수많은 병사의 일상이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명령하는 자는 명령의 무게를 책임져야 합니다.
명령은 한 줄의 문장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