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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오면 히트다 히트할 위스키

세상에 나쁜 술은 없다

by 조이홍

위스키 업계에 약 22년간 종사하면서 다양한 제품들과 만나고 헤어졌습니다. 자식 같은 제품을 세상에 내놓고 잠 못 들었던 날들이 얼마나 많던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아쉽게 묻힌, 너무 시대를 앞서간 까닭에 빛을 보지 못한 제품들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어쩌면 지금 나오면 대박 날 제품일 수도 있고요,라고 멋대로 상상해 보기도 하고요.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이곳은 제가 깔아놓은 판이니 그러려니 해주세요. 앞서 말했듯이 자식 같은 제품들이라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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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15년 박지성 리미티드 에디션


셀럽들이 출시하는 스피릿(술)이 한창 유행인 요즘이지만, 무려 15년 전에 선구자의 길을 개척했던 일명 '박지성 위스키'를 소개합니다. 요즘 시대라면 월드 클래스 손흥민 선수가 위스키를 출시했다 정도의 파급력이라고나 할까요. 운동선수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위스키를 출시하다니,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스포츠 스타와의 협업이었습니다. 그저 돈다발 들고 찾아가 막무가내로 요청했다면 거절당했을 터입니다. 3년 동안 꾸준히 아마추어 축구 리그를 후원하면서 축구계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게 협업 성사의 주요 포인트였습니다. 덕분에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주장을 맡았던 박지성 선수의 '서번트 리더십'을 임페리얼에 투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축구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항상 겸손하며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박지성 선수의 이미지를 로컬 위스키 시장 점유율 1위인 임페리얼에게 심어주려던 시도는 제법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임페리얼 15년은 단지 박지성 선수의 얼굴과 이름만 내건 위스키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스포츠 스타의 얼굴을 제품에 커다랗게 새긴 것부터 화젯거리긴 했지만 말입니다. 여기에는 조금 더 특별한 스토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위스키 원액을 박지성 선수가 직접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맨유에서 활약하는 덕분에 마케팅팀이 직접 영국까지 날아가는 번거로움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전례가 없는 새로운 시도였으니까요. 물론 박지성 선수가 위스키 애주가는 아니었지만, 한국인이 좋아하는 부드러운 풍미와 목 넘김이 좋은 위스키를 선택한 게 우연은 아닐 듯했습니다. 게다가, 붉은 악마를 상징하는 붉은색 보틀과 캡까지 디테일도 어디 하나 빠질 데 없으니 당시에도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 나오면 빅히트할 위스키임에 분명해 보입니다. 아울러 남아공으로 30여 명 규모로 박지성 응원단을 보내기도 했으니 360도 마케팅을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고 부를 만했습니다. 요즘처럼 양지(?)에서 위스키를 음용하는 문화였더라면 엄청난 화제가 됐을 테지요. 시대를 너무 앞서갔나요?


이전 글에도 한두 차례 언급한 바 있지만, 이 제품은 '15년' 숙성 제품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17년' 이상 숙성한 원액들로 만들어진 제품입니다. 스카치위스키법에 따르면 블렌디드 위스키의 경우 블렌딩 하는 원액의 최소 숙성 년수를 기재하게 되어 있는데, 임페리얼 15년 박지성 리미티드 에디션의 경우 최소 숙성 년수가 17년이라는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원래 가격의 70% 정도로 낮춰서 판매하면서까지 이 제품을 출시한 것일까요. 1위 제품의 위상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비밀이 담겨 있는 것일까요. 궁금하시죠? 비밀입니다. '어른들의 일'이니까요,는 아니고 당시로서는 상시 제품이 없는 15년 원액을 수급하는 일이 더 어려워 수급이 용이한 17년 원액을 활용했던 것입니다. 사실 원액 가격 차이는 그리 크지 않거든요. 앗, 이거야말로 사업상 비밀인데..., 아무튼 그렇습니다. 주위에서 박지성 리미티드 에디션을 만난다면 얼른 챙겨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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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끌라 바이 임페리얼


정확히 말하면 에끌라 바이 임페리얼은 위스키는 아니고 석류향이 가미된 리큐르입니다. 알코올 도수 31% ABV로 로컬 위스키 임페리얼 베이스입니다. 스카치위스키법에서 알코올 도수 40% ABV 미만은 스카치위스키로 부를 수 없기에 석류향을 가미해 리큐르로 출시했습니다. 사실 이 제품의 아이디어는 당시 위스키 소비자로 부상하는 여성들을 겨냥해 '여성을 위한 최초의 위스키'를 만들어보자는 데서 시작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역시 어른들의 비밀)으로 위스키가 아닌 리큐르로 출시하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가 없었지요.


요즘 위스키 박람회나 주류 박람회에 가보면 남성보다 여성 고객 비율이 훨씬 높습니다. 연령대도 20~30대가 무척 많아 보였습니다. 제가 한창 위스키 박람회를 준비할 때에는 90% 이상 남성 고객이었고 그것도 대부분 업계 사람들이었는데 요즘은 위스키를 즐기는 소비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세상이 이렇게나 변했습니다. 격세지감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요즘입니다. 취향도 단지 위스키에 머무르지 않고 전통주, 리큐르, 사케 등등 다양한 주종에 관심을 갖습니다. 억대 비용을 지불하고 수차례 컨설팅을 받았지만, 여성이 주류 분야에서 이 정도로 강력한 소비군으로 성장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시장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이 자연스러울 테지요. 흠흠.


에끌라(ECLAT)라는 이름은 '광채'라는 뜻의 불어에서 따온 것으로 패키지 또한 오로라에서 영감을 받은 부드러운 곡선이 특징입니다. 둥근 병 위주인 지금 봐도 매우 세련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격도 450ml 기준으로 36,300원이니 무척 합리적이지요. 2015년 7월 출시했으니 벌써 10년 전 일입니다. 만약 이 제품을 2025년에 출시했다면 어땠을까요. 물론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을 테지만, 왠지 지금 나오면 히트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요.


다음에는 랜드마크와 지역 특산물(오브제)을 디자인 모티브로 활용한 '임페리얼 시티 에디션'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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