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 [강함수의 레드티밍] 2021.12.30 자 기고
전통적 유형 벗어난 리스크 많아져
위기관리 체계 재점검 필요한 시점
위기관리에서 위기 대응보다 사전 준비를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하는 이유는 성공적 위기 대응을 위한 필수 요건이기 때문이다. 은폐, 늦장 대응, 화를 부른 사과, 희생자 무시, 지속적인 부정적 기사 보도, 주가 하락, 운영 업무 마비, 감독 기관의 개입 등 위기 사건·사고 발생 후 나타나는 결과물들은 사건·사고의 위험 수준과 비례하지 않고 사전 준비의 정도와 상관관계가 있다.
팀장을 포함한 C레벨들이 2시간짜리 관련 강의를 들으면 위기관리에 대한 사전 준비가 완료된다고 생각하는 기업이 아직도 많다. 기업들은 위기관리 사전 준비 강의를 요청하며 “새로운 사례를 통해 배우고 싶다”고 한다. 위기관리 사전 준비는 학습(學習) 중 ‘습(習)’에 더 높은 비율을 둬야 한다. 즉 ‘익히는 것’이다. 다른 기업은 어떻게 했는지 살피고 찾아 그 사례를 새롭게 듣는 것이 아니라 기업 스스로 반복적으로 제대로 된 훈련을 통해 습관처럼 익히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위기는 회색지대에서 발생
위기는 지금 발생한 것이 유일한 사례라는 말이 있다. 유사한 사건이라도 그 사건이 미치는 영향은 매 순간 다르다. 위기관리 사전 준비는 모든 사례에 대비한다는 것이 아니다. 조직 내부의 정보를 취합하고 적절한 의사 결정을 내리기 위한 내부 프로세스를 신속하고 명확하게 정립하는 것이다.
언제나 위기는 흑과 백의 경계, 즉 ‘회색지대’에 있다. 법적 책임에서는 벗어나 있어도 여론과 상황적으로 볼 때 기업의 처신은 달라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어떤 사회적 맥락이 형성돼 위기 국면이 지속될 수 있다. 특정 이해관계인의 사옥 앞에서 시위가 벌어질 수도 있다. 바로 이 회색지대와 같은 상황에서 어떤 의사 결정을 할지를 미리 경험하는 것이 위기관리 사전 준비에서 제일 중요한 과정이다. 위험하다고 인지하고 생각하는 정도와 실제 위험 정도에는 차이가 발생한다.
리스크 인식은 매번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지 않다. 오히려 항상 비이성적이다. 위기 상황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의식 통제 밖에서 작동하는 인지 과정의 산물일 수 있다. 리더 본인의 경험에 집중한 나머지 그 경험과 어긋난 사실과 증거의 소리는 비중 있게 살피지 못한다. 위기 상황에서 최종 결정을 해야 하는 리더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현업 부서에서 올라오는 위기 정보와 의견을 살필수록 결정의 오류를 범할까 하는 두려움과 스트레스가 커진다는 것이다.
위기 정보를 다루고 판단하는 프로세스와 프레임워크가 조직 내부에 없고 리더도 위기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훈련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리더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불확실성과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그동안 겪어 보지 못한 이슈를 직면하고 있다.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다양한 이슈가 발생하고 재난재해로 부품이 공급되지 않아 완성품을 생산하지 못하는 일도 생겨나고 있다.
노동과 리더십의 변화에 따른 이슈, 규제·법규의 변경과 강화, 사이버 안전과 공격, 기업에 대항하는 직원 행동주의, 사회·정치적 행동을 요구하는 소비자, 온라인과 소셜 미디어 공격, 젠더와 인권과 같은 다양성과 포용성의 이슈, 루머나 거짓 정보의 확산 등 전통적으로 관리했던 리스크 유형에서 벗어난 이슈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빈번히 발생한다.
지금은 위기관리 체계를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새로운 위기 유형과 메커니즘을 다시 살펴야 한다. 리스크 요인으로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명성 리스크, 조직 내부 구성원의 행동주의, 사회적 감수성 리스크 등이 어떻게 위기로 발생하고 확산되는지를 진단해야 한다.
회사 정책에 대한 직원과 회사 간의 견해 차이, 적절한 공감 행위와 커뮤니케이션 무시, 공정하지 않은 절차, 환경과 기후 변화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행위, 갑질과 부당 행위, 부적절한 언행 등이 기업 비즈니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운영상의 손실을 가져오는 세상이 됐다.
리스크 요인이 위기로 번지는 과정과 확산 경로 및 방아쇠 요인을 리더가 이해해야 회색지대의 위기 상황에 직면했을 때 올바른 위기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