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 [강함수의 레드티밍] 22년 3월 18일자 기고
위기 본질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사과문에선 원칙적 표현 기준 고려해야
기업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기업 실무자들은 첫 의사 표명과 사과 메시지를 구성하는 것이 제일 곤혹스럽다고 말한다. 이 곤혹스러움을 느끼지 못했다면 제대로 된 위기에 직면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정도다.
위기관리 담당자는 위기 상황의 원인, 책임의 유무, 중요도 등을 고려해 상황에 따라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위기에 대한 기업의 의사를 표명하기 전에 고려 사항을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사과 주체와 대상은 구체적으로 표현
첫째, 위기 책임성의 정도다. 기업의 잘못으로 발생한 사건·사고인지, 기업 내부 구성원으로 인한 것인지, 재난 재해와 같은 불가항력의 상황인지, 기업 조직 체계와 연관은 없는지 등을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이때 직접적인 위기 원인이 아니더라도 정황적으로 피해 발생에 영향을 미친 요인이 무엇인지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 사건·사고가 발생해 기업이 관련됐다고 인식되는 순간 모든 책임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없다는 시각이 중요하다.
둘째, 법적 책임 여부다. 사건·사고로 인해 발생한 위기의 범위, 규모, 피해 정도, 원인과 법적 기준이나 적용 범위, 해석 범위는 언제나 일치하지 않는다. 법적 책임이 작다고 해서 위기 파급력이나 영향력이 작다고 할 수 없다. 반대로 법적 책임이 크다고 해서 법적 대응에만 신경 쓰고 이해관계인의 인식 상황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셋째, 여론의 동향을 살펴야 한다. 이는 이해관계인의 인식과 연결되는 영역이다. 일반 대중이 위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인식하는지 알 수 있다. 통상적으로 여론의 흐름을 언론의 취재 내용·범위·인식 등을 통해 파악하고 대응하게 되는데 범주를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
위기가 발생한 주체, 기업의 위기 이력 또는 기존의 명성의 수위를 포함하는 것이다. 작은 사건·사고일지라도, 책임이 크지 않더라도 과거의 행동과 평판이 연결돼 여론이 더욱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의 기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위기에 대한 대응 커뮤니케이션 방향을 설정하고 의사 표명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상황 파악에 따라 방침이 정리되면 언어를 통한 위기 커뮤니케이션에 돌입한다. 공개 사과는 언어의 맥락에 따라 전달되는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공개 사과할 때는 다음과 같은 원칙적인 표현 기준을 고려해야 한다.
먼저 무엇이 잘못인지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 사과하는 주체는 자신이 어떤 행동 규범을 어겼는지 분명하게 밝히고 그 행위를 명시적으로 자책하거나 유감이라고 표명하면서 구체적인 사안을 언급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무엇이 잘못인지 언급하지 않고 사과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상황에 떠밀리거나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판단으로 어쩔 수 없이 사과한다는 의미로 보일 수 있다. 무엇에 대해 사과할 것인지는 결국 위기의 본질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고 사과의 수용성을 높이는 일이다. 이때 잘못은 사건·사고 자체의 원인이나 책임에 대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편적인 가치를 지키지 못했거나 피해자의 자존심이나 명예를 훼손했거나 위기가 가져오는 상황적 맥락을 고려해 잘못의 대상을 살펴볼 수도 있다.
사과의 주체와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도 중요하다. 누가 누구에게 사과하는지 사과해야 하는 주체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우선적으로 사과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2014년 12월 발생한 ‘땅콩 회항’ 사건 당시 대한항공이 발표한 첫 사과 성명문을 보면 기업이 국민에게 사과하고 있다.
위기 피해자가 있다면 피해자에게 사과해야 한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당사자는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 사과하는 행위는 사과를 요청하는 것이지 사과에 상호 작용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가 받아들이고 화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기업이 말하고자 하는 관점에서 한 걸음 물러서야 한다. 이슈가 제기될 때 기업은 대응 논리, 자기 합리화, 사실 관계와 정황에 대한 근거 정보를 취합한다. 부정적인 이슈가 발생했다는 점에 대해 사과하더라도 문제가 되는 핵심 주제에 대해서는 변론이나 정당화를 위한 논리를 기술한다.
문제는 그 변론이나 정당화 내용이 기업이 ‘말하고자 하는 바’이지만 이해관계인들이 ‘바라는 바’가 아닌 것이 많다는 것이다. 기업은 자사의 피해나 손실을 최소화하거나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이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논리와 내용을 바탕으로 성명문을 발표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이슈를 확대하고 위기 손실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원하는 것, 말하고 싶은 것을 그들이 원하는 것, 말하고 싶은 것과 연결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해관계인의 관점에서 어떤 지적과 비판이 나올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사과의 기술 강함수의 레드 티밍 │ 매거진한경 (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