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게임을 만든다
'2019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국내 게임 산업 매출액이 14조 2천902억 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국내에서 게임을 즐기는 인구는 70% 이상이 된다고 하죠. 이처럼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늘고 산업의 규모도 날로 커짐에 따라 게임 개발을 업으로 삼으려는 게임 개발 지망생의 숫자도 날로 늘어가고 있습니다. 실제로 2018년 기준으로 현재 게임 업계의 개발 종사자가 약 3.5만 명이라고 합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은 왜 게임을 만들고 있을까요?
혹시 이런 게임기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2020년인 지금은 스마트폰의 보급률 95%를 넘어 쉽게 다양한 콘텐츠에 접근이 가능하지만 약 30년 전인 1990년대의 오락거리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지금과 마찬가지로 만화책 영화 드라마 등이 있었겠지만 게임만큼의 자극적이고 신선한 오락거리는 없었을 겁니다.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은 이야기 속 주인공이 바로 플레이어 자신이라는 점입니다. 다른 콘텐츠는 시청자 또는 독자와 관계없이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게임만이 오직 플레이어의 개입을 필요로 하며 이로 인해서만 진행이 됩니다. 엄청난 몰입력을 가진 게임은 경험하지 못했던 재미를 선사하며, 플레이한 사람들 중 일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도 이런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
재미있는 것을 만드니 분명 그것을 만드는 일도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하죠. 이렇게 뜻이 있는 사람이 '게임'이라는 것을 만들게 됩니다. 자신이 경험했던 재미를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도 경험하길 바라면서 말이죠. 영화를 좋아하는 학생이 영화감독을 꿈꾸는 것과 같죠.
하지만 이런 동기만으로는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왜냐하면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과 동시에 끈기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게임을 만드는 동안 먹고살아야 하니 돈도 필요하죠. 실제로 최근의 중규모 이상의 모바일 게임은 최소 30명 이상의 인력을 1년 이상 쏟아부어야 합니다. 개발비만 몇십억씩 들어가는데 당연히 그 정도의 투자를 할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해야겠죠.
1980년대에 '슈퍼 패미콤', '아타리'와 같은 외국산 게임기의 유입으로 팩맨, 갤러그, 슈퍼마리오, 파이널 판타지와 같은 게임이 점차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90년대에 들어서는 PC 보급과 함께 다양한 PC 게임이 등장하기 시작했죠.
때는 1997년, IMF 사태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렸습니다. 그 중심에 때마침 좋은 유흥거리인 온라인 게임과 PC방이 등장했죠.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의 시간과 돈을 게임에 소비함으로 인해 PC방이 사업이 성행했습니다. 당연히 개발자들과 투자자들은 이렇게 생각했겠죠.
게임은 돈이 된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터넷 보급률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가정에도 많은 PC가 보급되어 게임을 즐기는 사람 수는 더더욱 늘어났죠. 수많은 게임 회사가 만들어지고 그만큼 사람도 많이 필요해졌죠. 이렇게 일반적인 게임 회사의 모습이 만들어지며 월급을 받아서 게임을 만드는 회사원이라는 형식이 업계에 자리 잡게 됩니다.
큰 꿈을 가지고 게임 업계에 뛰어들었으나 현실은 생각과 달랐습니다.
어른들의 사정으로 게임 프로젝트는 엎어지거나(중지 또는 취소) 변경되기 일수였으며, 진행한다고 해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게임의 개발 방향은 주로 돈을 대주신 분(투자자)의 요구에 맞춰져 있습니다. 여기선 일개 개발자의 꿈을 펼칠 수 없었죠.
게임은 기본적으로 많은 사람들과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며 개발합니다. 여러 사람의 생각이 모여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죠. 하지만 의견이 서로 달라 충돌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유한한 일정과 개발비로 진행을 하다 보니 어떻게든 게임을 완성시켜서 세상에 내놓아야 했습니다. 그것이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일정 부분은 타협해야 했죠.
그래도 긴 시간 동안의 노력으로 결실을 맺어 게임을 세상에 내놓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평가받음으로써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게 됩니다. 게임을 개발하게 되는 또 다른 이유와 마주하게 되죠.
물론 회사와 인간관계에 부딪혀 회사를 나오시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안타깝게 게임에 대한 꿈과 열정이 사라져 업계를 변경하기도 하지만 그중 일부는 다시 작은 인디팀 또는 개인이 게임을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이 꿈꿔왔던 재미를 다시 실현하기 위해서 말이죠.
[게임 기획 지원 동기]
평소에 게임을 플레이하며 제가 꾸준히 했던 생각은 단순히 "재미있다"만이 아니라 "이런 시스템, 이런 아이템이 있으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였습니다. 게임을 더 재미있게 만드는 것에 고민하면서 자연스럽게 게임 기획자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게임 기획자는 저를 충분히 매료시킬 만했고, 저는 관련 대학의 학과에 진학해 아마추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학생 시절 자기소개서의 일부를 가져와봤습니다. 저는 꽤 어릴 적부터 게임을 접했습니다. 무려 4살부터 게임을 했으니 굉장히 빨랐죠. 그렇게 성장하며 이미 삶의 많은 부분을 게임이 차지했고 그만큼의 게임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단 하나의 인생게임을 만나게 되죠.
2002년에 일본의 KID사에서 발매된 Ever17 -the out of infinity- 라는 게임입니다. 가까운 미래에 해저 테마 파크가 존재하는데, 그곳에서 사고가 발생해 지상으로 탈출하지 못하고 남게 되면서 벌어지는 각종 이야기를 담은 게임이죠.
일반적인 게임은 특정 캐릭터에 플레이어가 빙의해 아바타와 같은 형태가 되어 캐릭터에 공감하며 사건을 진행하게 됩니다. 플레이어는 해당 게임 캐릭터로써 게임 세상을 살아가게 되죠. 하지만 이 게임은 좀 특이합니다. 플레이어가 게임 내의 특정 캐릭터에 빙의하는 것이 아닌, 게임 바깥의 플레이어 자체로써 존재해야만 사건이 해결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게임 내의 캐릭터들이 내가 조종하고 있는 캐릭터에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 있는 나에게 말을 걸며 나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이 클라이맥스에 나오게 되는데, 그 순간에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의 충격이었습니다. 게임이란 것이 한 개인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이 이 정도로 엄청나구나 싶었습니다. '재미'라는 한 단어로 표현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의 감정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감정을 나도 게임이라는 것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 졌죠.
물론 과거 그리고 현재에 만든 게임에 그만한 감정을 담진 못했지만 그 여정에 있다고 생각하고 믿고 싶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의 게임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마 많은 개발자분들의 마음속에도 숨겨두었던 로망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게임 개발자, 언뜻 보면 굉장히 행복한 직업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것과 하는 일이 일치하기 때문이죠. 그래도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습니다. 다른 직업과 똑같이 다른 사람 돈 받고 일하며, 사람들끼리 머리 맞대고 하는 일 중에 원활하게 돌아가는 일 따윈 웬만해선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그럼에도 사람들은 게임을 만듭니다. 자신만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죠.
삶에 대한 생각을 게임으로 표현해 세상에 이야기하기 위해
회사를 다니며 돈을 벌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특정한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언젠가는 게임으로 대박을 터뜨려 부자가 되기 위해
무언가의 완성이라는 성취감을 위해
자신이 상상한 재미있는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기 위해
등등
당신은 왜 게임을 만드나요?
여러분들은 왜 그 일을 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