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권한은 누구에게 가는가?
리니지라이크 10년 역사상 가장 좋은 쇼케이스였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2026년 4월 출시를 앞둔 넷마블의 신작 솔 인챈트는 쇼케이스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절대신이 원하지 않으면 업데이트는 못 하죠."
게임사가 유저에게 업데이트 거부권을 내준다고. 유료 아이템을 거래소에서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다고. 접속하지 않아도 성장이 진행된다고.
진단은 정확했다. 이 장르가 왜 피로해졌는지를 이토록 명확하게 짚은 게임이 없었다.
문제는 처방이다. 그리고 진단이 정확할수록, 틀린 처방은 더 깊이 박힌다.
미리 말해둔다. 이 글은 넷마블을 나쁜 회사로 결론 내리려는 글이 아니다. 솔 인챈트가 나쁜 게임이라고 단정하는 글도 아니다. 좋은 의도로 설계된 시스템이 왜 구조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운지를 보려는 글이다.
리니지라이크는 욕을 많이 먹는다. 그런데 10년째 살아있다.
이유가 있다. 이 장르에는 다른 장르가 쉽게 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내 캐릭터가 강해지는 명확한 성취감, 길드와 함께 싸우는 대규모 전투의 쾌감, 서버 안에서 형성되는 정치와 권력 구조.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십만 명이 리니지라이크를 즐기고 있다. 재미없는 게임은 절대 이만큼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문제는 장르가 재미없다는 게 아니다. 장르의 재미를 유지하는 구조가 동시에 유저를 착취하는 구조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 모순을 솔 인챈트는 정확하게 봤다. 그리고 해결하려 했다.
여기서부터가 이 글의 질문이다.
솔 인챈트의 신권 시스템은 3단계다. 서버신, 주신, 그리고 전 서버 단 한 명의 절대신. 절대신은 업데이트를 거부할 수 있고 BM 방향까지 선택권을 갖는다.
국회의원 선거를 허용했다고 상상해보자. 단, 출마 자격은 재벌에게만 있다.
절대신 자리를 차지할 유저는 누구인가. 이 장르의 최상위 고래이거나, 넷마블과 계약한 프로모션 BJ다. "운영사 독재"가 "고래 독재"로 교체될 뿐이다. 고래 독재는 운영사 독재보다 나쁠 수 있다. 운영사는 최소한 매출 유지라는 이해관계가 있지만, 절대신 유저에게는 그런 제약이 없다.
절대신이 교체될 때마다 정책이 흔들린다. 전임 절대신의 결정을 믿고 투자한 유저는 그 피해를 떠안는다. 운영사는 한발 물러서서 말한다. "유저가 선택한 겁니다."
책임은 유저에게 분산되고, 실질 통제권은 개발사가 유지한다. 신권 시스템의 가장 정직한 해석이다.
그런데 거래 자유화를 보면, 신권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보인다.
"유료 아이템을 거래할 수 있습니다."
커뮤니티가 들썩인 발언이다. 리니지라이크 역사에서 유례없는 약속이었으니까.
그런데 시장이 열리면 누가 공급을 담당하는가.
나인이라는 재화를 파밍해서 거래소에 올리려면 24시간 최적화된 루트로 사냥을 돌려야 한다. 일반 유저가 퇴근 후 두 시간 사냥할 때, 작업장은 서버 수십 개를 동시에 돌린다. 거래소 공급 측은 작업장이 장악하고, 수요 측은 핵고래가 흡수한다. 일반 유저는 공급 경쟁에서도, 수요 경쟁에서도 구조적으로 진다.
나인과 다이아라는 이중 구조도 문제다. 나인으로도 유료 아이템을 살 수 있지만, 핵고래가 다이아로 거래소를 장악하는 순간 나인의 실질 구매력은 무너진다. "나인으로도 할 수 있다"는 말은 마케팅 언어가 되고, 실제 경제권은 처음부터 핵고래 손에 있다.
"무과금도 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라, "무과금도 참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임"이다.
그리고 이 구조가 만들어내는 가장 치명적인 결과는, 의외로 고래 문제가 아니다.
기존 리니지라이크는 나빴지만 예측 가능했다. 개발사가 공급량을 통제했기 때문에 격차가 벌어지되 설계된 속도로 벌어졌다. 런칭 초기엔 고래와 일반 유저 사이의 거리가 "따라잡기 어렵지만 불가능하진 않다"는 환상을 유지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었다. 그 환상이 중간 유저의 과금 동기였다.
솔 인챈트는 거래 자유화로 그 통제권을 스스로 포기했다.
런칭 직후 핵고래가 뽑기와 거래소 매물 흡수를 동시에 진행하면, 개발사가 수개월치로 설계한 성장 곡선이 몇 주 안에 소진된다. 격차가 설계 속도의 수배로 벌어지는 순간, 차상위 유저들이 먼저 계산기를 두드린다. "못 따라잡겠다." 그들이 빠지면 그 아래 중간 유저들의 경쟁 상대가 사라진다. 경쟁 상대가 없으면 과금 동기도 없다.
사다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핵고래가 사다리 자체를 소유하는 구조다. 개발사는 그 속도를 통제할 수단을 스스로 버렸다.
아스달 연대기를 보자. 2024년 4월 출시 당시 구글 최고 매출 4위를 찍었다. 지금은 매출 순위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업데이트는 계속된다. 서비스 종료가 아니다. 하지만 업데이트가 된다는 것과 의미 있는 매출이 나온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유지비가 나오는 수준의 게임을 장기 서비스 성공 사례라고 부를 수는 없다.
레이븐2, RF 온라인 넥스트, 뱀피르. 패턴이 반복된다. 런칭 초기 폭발적 매출, 이후 급락, 최소 운영 모드 전환. 넷마블 포트폴리오에서 리니지2 레볼루션을 제외하면 진짜 장기 서비스 타이틀을 찾기 어렵다.
이 패턴을 모를 리 없다.
한 가지 사실만 짚어두자. 리니지라이크 장르에서 런칭 첫 달 매출은 전체 수명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현빈 모델료가 수십억이라도 첫 달 수백억 매출이면 이미 회수된다. 광고 투자 규모는 장기 서비스 의지의 증거가 아닐 수 있다. 나머지는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
솔 인챈트가 짚은 문제들은 진짜다.
무접속 플레이와 스쿼드 모드는 진정성 있는 개선이다. 이 장르의 병폐를 이토록 정확하게 진단한 게임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진짜다. 10년째 살아남은 데는 이유가 있다. 리니지라이크는 나쁜 장르가 아니다.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는 장르다.
솔 인챈트가 같은 패턴으로 귀결된다면, 그건 넷마블의 실패가 아니다. 이 장르가 아직 아무도 풀지 못한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는 뜻이다.
그 모순을 처음으로 푸는 게임이 언제 나올지. 그게 진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