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초 작은 미술관을 열며
청천초 아이들과 미술로 만난 지 올해로 오 년째다
1학년 때 만난 채*와 원*이 *민이가 내년이면 최고 학년이 된다. (솜털이 보송보송하던 코흘리개 어린이들이 곧 졸업이라니)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을 돌이켜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누가 어떤 그림들을 그렸는지,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 한가득이다. 청소년이나 성인들과도 그림 수업을 하고 있지만 초등학교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은 특별하다. 아이들의 작품은 언제나 내가 가진 고정관념을 통쾌하게 무너트려 준다. 누가 뭐라 하건 이보다 더 용감하고 자유로울 순 없다는 듯 자신만의 시선으로 작품을 완성해 나간다. 남들이 보기에 잘 그린 그림, 테크닉이 뛰어난 그림에 질투의 시선을 던지는 어른들과는 사뭇 다르다. 이렇게 대조적인 결과를 보여주는 수업을 통해 우리 가 성장하면서 잃어가는 것에 대해 나는 종종 생각한다. 그리고 내 수업을 듣는 이들에게 틈만 나면 이야기한다. 타인을 의식하지 말고 자기만의 고유한 관점을 지켜가라고.
11월 어느 날의 장면 하나가 떠오른다. 오랜 세월 이 학교를 지켜온 느티나무가 겨울을 맞아 잎을 떨어뜨리던 때였다. 그날따라 바람이 몹시 세차게 불었다. 한 아이가 느티나무를 한참 동안 올려다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보고 있었어?”
나무에서 내게로 시선을 옮긴 아이의 표정은 반쯤 넋이 나간 듯했다. 대단히 경이로운 장면을 목격한 이의 표정이었다.
“잎이 떨어지는 게 너무 아름다워서요.”
너도 그걸 보았구나. 낙엽 비가 쏟아지듯 마른 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던 그 멋진 장면을. 우리 곁에 스며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알아볼 수 있는 시선을 너는 가졌구나.
나는 이 어린이가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그려나가리라 믿는다. 때때로 고난이라는 친구가 찾아와도 멈추지 않고 희망을 노래하리라.
‘나는 라파엘로처럼 그리는 데 4년이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데 평생을 바쳤다.’라고 피카소는 말했다. 어린이들은 자신이 느끼는 대로 눈에 담고 날것 그대로 표현한다. 그게 얼마나 사실과 같은지, 색을 얼마나 꼼꼼하게 칠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자라면서 너무 많은 이론과 기법들을 배워버렸고 이런 기준에 맞춰 미술을 못하는 아이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틀에 갇히지 않은 아이들의 관점에서 이 세상은 얼마나 신비롭게 보일까? 모험으로 가득 찬 세상이지 않을까?
자기만의 세계를 오롯이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미술 선생님으로, 어린이의 세상을 소중히 지켜주는 어른으로 나이 들고 싶다. 아이들을 통해 나는 끊임없이 내 안의 틀을 깨부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