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바람

아주 작은 씨앗일지라도

by 바람풀

등이 통나무처럼 딱딱하게 굳어진 느낌, 익숙한 통증이다.

허리디스크 파열이 새해 선물처럼 내 몸에 은혜롭게 내려앉았다. 의료용 온열기를 깔고 바닥에 눕는다. 군불 땐 온돌에 지지는 듯한 짜릿함이 몸 구석구석 전해진다. 며칠간 엎드리거나 누운 자세로 책을 읽었다. 글감이 떠오르면 허공에 노트를 들고 휘갈겨 적었다.


프리다 칼로를 생각했다. 교통사고로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는 치명상을 입고 전신에 깁스를 한 채 꼬박 9개월을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던 멕시코의 화가. 부모가 천장에 설치해 준 거울을 보며 누워서 자화상을 그렸던. 지금의 나와 비할 수 있는 고통이 아니다. 이젠 안다. 며칠 있으면 파열된 디스크는 자연 치유될 것이고 난 언제 그랬냐는 듯 당연하게 직립보행을 하리라는 걸.


누워지낸 지 나흘째 되는 날.

허리를 부여잡고 훌라댄스를 추는 동작으로 화장실을 다녀와 다시 눕는다. 슬슬 식구들 눈치가 보인다. 이번에는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주인공을 생각한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쑥 자신이 거대한 벌레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카프카도 허리디스크로 누워있을 때 이 소설을 구상했을거라 합리적 의심을 해본다.

날 표본으로 만들려는 모종의 음모가 있었으리라. 지령을 받은 거대한 인간이 온갖 잡다구리로 가득한 내 서랍 속에서 압핀을 찾아내 천배쯤 뻥튀기한 다음 내 단전에 내리꽂았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왜? 이대로 며칠 더 누워있다간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다.


맨몸을 드러낸 벚나무 우듬지가 시리도록 퍼런 하늘을 배경으로 조용히 흔들린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는 걸 누워서 지켜본다. 다음 날 아침 TV를 켰다. 마침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 여럿이 앉아 허리디스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핼스트레이너가 나와 복횡근 (배를 감싸는 근육으로 우리 몸에서 복대 같은 역할을 한다)을 강화하는 동작을 보여준다. 일명 ‘데드버그’ 자세로 죽은 벌레가 뒤집힌 모양이란다. 누워서 양팔과 다리를 올려 동작을 따라한다. 은방울꽃이 피었던 어느 봄날, 숲에서 보라금풍뎅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검지손가락으로 배를 쿡 누르던 생태 선생님이 떠올랐다.

-이거 보세요. 가만히 있지요? 죽은 척하는 거예요.

팔과 다리를 엇갈려 쭉쭉 뻗는 자세를 따라하며 손바닥 위에서 냅다 몸을 뒤집고 죽은 척했던 풍뎅이의 귀여운 위장술을 생각한다.


그날 밤에는 ‘척추의 신’이라 불리는 재활의학과 교수님의 유투브 채널을 시청했다. 역시 기본은 바른 자세다. 거짓말처럼 다음날 아침, 직립 보행하는 인간으로 돌아왔다.

누워있는 동안 글을 쓰고 싶어 몸이 달았다. 내 주위엔 온갖 종류의 노트와 스케치북이 산만하게 놓여있다. 도화지를 엮어 직접 제본해서 만든 노트도 여러 권. 채집한 풀과 나무를 관찰해서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는 노트, 몸에 관해 쓰고 그리는 노트, 그림일기만을 위한 노트도 있고 일기만 쓰는 스프링노트도 차곡차곡 싸여간다. 이곳저곳에 묵혀두었던 글들이 아우성친다. ‘글쓰기는 오직 글쓰기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지만 난 자주 무력감에 빠지곤 했다. 무엇이든 계속 써야겠다는 열망이 누워있는 동안 가득 차올랐다.


미지:味知:unknown 아직 알지 못함

나를 미지의 세계로 데려다주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탐험가라는 직업을 갖고 싶을 만큼 낯선 곳에서 나는 설레고 충만해진다.

숨 쉬게 하는 바람, 어디로든 불어가는 바람, 아직 알지 못하는 ‘미지의 바람’. 일단 시작한 글은 나를 어디로든 데려다 줄 것이다. 소설이 될 수도 있고 허접한 일기나 동화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줄 메모일지라도, 더 이상의 자기 검열 없이 일단 써보기로 한다. 비록 작은 씨앗일지라도 물과 빛을 주어 자라게 해줘야지. 뭐라도 결실을 맺게 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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