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동안 아들은 매일 아침 6시 등교해 열공했다. 여름휴가와 추석 연휴도 반납하고 독서실을 다니며 나름 최선을 다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고3이 되어서야 아들은 공부 철이 늦게 들었기에 스스로 더 바짝 고삐를 조였다.
11월 18일 수능 시험일.
아들은 도시락을 챙겨 6시 반에 시험장에 입실했다. 오후 6시가 되어 어둑해진 뒤에야 아들은 시험장을 걸어 나왔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의 시간이 수능 하루를 통해 평가된다는 현실이 엄마로서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의 수능역시 만만치 않았다. 불수능이라고 소문난 2019년만큼이나 어려웠다는 소식이 언론에 자주 보도되었다. 며칠이 지난 후 보조석에 앉아 가던 아들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저 결정했어요. 저 재수하기로 결정했어요.”
고2까지 학업에 관심이 없던 아들은 고3이 되어 미대로 진로를 결정한 후 자신이 진학하고 싶은 학교를 찾아 목표를 정하더니 학업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스스로 아이폰을 폴더 폰으로 바꾸었다. 휴가와 연휴도 전부 반납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아들은 다시 독서실로 갔다 12시 넘어 귀가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스스로 학업에 올인한 적이 없었다. 아들은 자신이 노력한 만큼 만족할 수 있는 성취감을 얻고 싶다고 덧붙인다. 자신이 목표했던 학교가 아니라 점수에 맞춰 진학을 하게 되면 평생을 후회하게 될 것 같다고 그래서 재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재수는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아빠와 함께 이야기를 나눠본 후에 결정하자고 잠시 대화를 보류했다. 남편과 아들과 함께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들의 생각에 우리 부부는 경청했고, 아들은 아빠와 엄마의 의견에 경청해 주었다.
결과적으로 학교보다는 적성에 맞는 과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리 부부는 아들을 설득했다. 작년부터 미술 실기를 준비했으니 마지막 마침표를 찍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만약 성취감에 만족할 수 없는 대학을 가게 되어 아쉬움이라는 결핍이 생기면 나중에 더 좋은 대학원을 진학하거나 외국으로 유학을 가는 것으로 채워가면 되는 것이다.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 재수를 하겠다는 아들에게 나는 아쉬움의 결핍을 나중에 더 큰 에너지로 활용하면 된다고 권면했다.
결핍은 힘이 세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비슷한 시기에 결혼했고, 비슷한 시기에 출산을 해 공동육아를 할 때가 많았다. 엄마가 된 친구들의 모습을 관찰하며 새로운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그녀들은 다양한 환경에서 성장하며 자신이 만족하지 못했던 결핍을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풍족하게 채워주기 위해 지극히 애를 쓴다는 것이었다.
형제가 많은 가정에서 자란 친구는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늘 배가 고팠던 친구는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지극정성으로 챙겼다. 시간과 돈을 가장 많이 투자하는 영역이 아이들의 식사와 먹을거리였다. 다른 친구는 형편이 넉넉지 못해 브랜드 옷을 입지 못한 결핍이 있었다. 결혼 후 엄마가 된 그녀는 아이들의 옷을 유아 때부터 백화점 브랜드로만 입혔다. 가장 많은 돈과 시간을 아이들의 옷을 고르고 입히는 일에 투자했다.
나는 어렸을 때 읽을 책이 부족했다. 부모님의 정서적인 애정결핍도 컸지만 내가 엄마가 된 이후 가장 아쉬웠던 점은 좀 더 많은 책이 우리 집에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아쉬움이었다. 대학 진학에 실패해 원하는 대학을 진학하지 못했던 아쉬움과 책에 대한 결핍을 채우려 나는 활자중독처럼 책을 더 열심히 장만하고 읽게 되었다. 결혼에 준비한 나의 혼수1호도 책이었고, 지금도 우리 집에 가장 많은 공간을 책이 차지하고 있다.
한 분야에 관심이 생기면 관련 서적들을 두루두루 섭렵하는 방식으로 독서를 했다. 임신이 된 후에는 열 달 동안 다양한 육아서를 마스터해 유아기의 독서 커리큘럼을 준비했다. 아들과 딸이 초등 입학 전까지 성장 시기에 맞춰 단계별로 수천 권의 책을 읽어주었다.
아들이 다리가 부러져 병원에 입원했던 한 달도 나는 하루 종일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엄마였다. 대학원 학업을 보류하며 육아를 우선순위 삼은 이유도 내가 경험한 결핍을 아이들에게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의 결핍은 성인이 되어서도 가장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게 만들만큼 아주 힘이 세다. 성장과정에서 충분히 채워지지 않은 아쉬움의 결핍은 콤플렉스가 된다. 콤플렉스는 부정적인 의미이지만 오히려 긍정적인 면도 있다.
콤플렉스는 부족함과 결핍을 끝없이 채우고 싶어 하는 엔진을 가동시킨다. 유년시절 읽을 책이 부족했던 결핍, 대학 진학에 실패했던 결핍은 나에게 끝없는 학구열의 엔진을 가동시켜 주었다.
결혼 후 엄마로, 아내로 살면서도 활자중독처럼 책을 모으고 독서에 매진하며 살아올 수 있었던 것, 대학 졸업 후 두 개의 대학원을 다시 진학해 40대까지 학업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도 결핍과 콤플렉스 덕분이었다. 내 안의 결핍은 40대 후반을 바라보면서도 여전히 새로운 배움에 배가 고프다고 소리친다.
다시 새로운 배움에 머뭇거리지 않고 도전하도록 결핍이 시동을 걸어준다.
“사람은 본디 부족한 존재다.
부자이거나 권력자라고 예외일리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정도가 더 심할 테고
부자들 역시 저마다의 결핍을 안고 산다.
어쩌면 결핍은 우리네 삶의 원형일지 모를 일이다.
결핍을 대하는 태도에서 삶이 갈린다.
어떤 사람은 결핍으로 인해 좌절하지만
어떤 사람은 결핍을 경쟁력으로 승화시킨다.”
《최준영, 결핍의 힘》
아들의 입시는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결과이든 지금까지 뿌린 씨앗들이 열매로 맺어진 것임을 아들이 수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대했던 만큼의 만족스러운 열매가 아닐지라도 그 아쉬움과 부족함마저 포용할 수 있는 아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부탁했다.
아쉬움의 결핍이 여전히 마음에 남게 된다면 그 이후의 도전을 더 거침없이, 더 힘차게 도약하는 에너지로 삼으면 된다고 격려해 주었다. 40대 후반을 지나는 엄마가 꾸준히 학업을 지속해 올 수 있었던 힘이 결핍과 콤플렉스라고 아들에게 고백했다.